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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작성자
Lv.23 달디단
작성
16.03.24 09:29
조회
1,531


 이미 궁궐로 진입한 병사들은 항복하는 적들과 대항하는 적들을 구분해 처리하는 일을 시작했다.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는 적들의 목에는 칼이 꽂혔고, 재빨리 머리를 조아려 항복을 표하는 적들의 등에는 창이 꽂혔다. 항복하는 척 하면서 아군의 뒤를 노리는 놈들 때문에 항복하는 놈들도 살려둘 여유가 없었다. 단순한 진압작전이라면 항복하는 적들을 수습할 여유가 있었겠지만, 지금 적의 궁궐내부로 침투한 병사들의 임무는 특정인물에 대한 생포 작전이었다.


 궁궐 바깥의 성에서는 아직도 대규모전투의 흔적이 사라지지 않았고, 병사들의 창검이 서로의 신체일부를 잘라내는 소음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성 밖에서의 전투가 아직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특별한 임무를 갖은 병사들이 궁궐 내부로 진입을 시도해야 했었다. 


 병사들의 조직적인 움직임은 많은 훈련과 실전경험으로 다져진 노련한 병사들이란 걸 알 수 있게 했다. 전투가 끝이 보이기도 전에 적의 궁궐내부로 진입을 해야 하는 병사들이었으니, 그들의 살상능력이 매우 출중하리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궁궐내부에서의 저항은 생각보다 약했다. 빠른 진압을 통해 생포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특별히 선발된 병사들이긴 했지만, 적들의 궁궐내부에 호위 병사들의 저항은 생각보다 미미했다. 적들은 성벽에서의 전투에 사활을 걸고 있었던 것 같다. 쓸 만한 전사들은 죄다 성벽을 지키는데 투입되어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일반적인 경호병사수준의 가벼운 갑옷을 걸친 병사들 몇몇이 길을 막긴 했었지만, 이 시점에 궁궐내부까지 진입한 병사들의 무력을 감내해내지는 못했다. 



 최종목적지에 다다른 병사는 문을 박차고 진입을 시도했다. 상당히 실력 있는 명인이 만들었을 게 분명한 화려한 무늬의 문짝이 박살나며 괴로운 신음을 쏟아냈다. 화려한 커튼과 고급스러워 보이는 자기들로 이뤄진 내부 장식을 보니, 제대로 찾아온 게 분명했다. 병사는 시야를 가리는 고급스러운 비단커튼을 재빠르게 칼로 찢어 걷어냈다. 생포해야 할 대상을 빨리 찾아내야 했다. 


 아담한 체구의 가녀려 보이는 여인이 막 스스로의 목을 매달려고 애쓰는 중이었다. 말 그대로 애쓰는 중이었던 게, 그녀는 자신이 목을 매달기 위해 만들어 놓은 매듭에 턱을 걸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작은 그녀의 체구로는 높은 천장에 매듭을 만들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마도 어떤 받침을 이용해 매듭을 설치하고는 목을 매달려는 시도를 하는 것 같았다. 


 병사는 싱거운 웃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냥 지켜보고 있으면 그녀는 곧 어렵게 만든 매듭에 턱을 걸 수 있을 것 같았다. 재빨리 뛰어간 병사는 칼을 휘둘러 매듭을 끊어냈다. 결과적으로 그녀를 구할 수 있기도 했지만, 그녀는 끊어진 매듭과 함께 바닥에 내동댕이쳐져야 했다.      


 내동댕이쳐진 그녀는 상당한 아픔을 느꼈던 것 같다. 칼을 휘둘러 매듭을 끊어내고 사뿐히 착지한 병사는 고통스러워하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려고 했다. 하지만 품에서 작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단도를 꺼내는 그녀의 팔목을 걷어차야 했다. 그녀는 목을 매달려는 시도가 실패하고 단도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하고 있었다. 그녀의 팔목을 걷어차 단도를 멀리 날려버린 병사는 세차게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 


 그녀는 단지 걷어차인 팔목이 아파서 볼을 부풀렸을 뿐이었지만, 병사의 시선에는 단도를 빼앗긴 그녀가 혀를 깨물려고 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녀의 뺨을 시원하게 갈긴 병사가 그녀가 혀를 깨물지 못하도록 입안에 병사의 손수건을 쑤셔 넣으려다, 그녀의 표정에서 억울함을 발견했다. 



 “죄송합니다. 전 혀를 깨무시려는 줄 알고...”


 “죽여주세요!”



 병사는 다시 손수건을 그녀의 입안으로 쑤셔 넣어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했다. 하지만 곧 그녀가 쉽게 스스로의 목숨을 끊을 만큼 용감한 여인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진작 목숨을 끊으려면 단도 끝을 명치 아래로 깊숙이 쑤셔 넣었어야 했지만, 겁이 많았을 게 분명한 그녀는 목을 매달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 아마 병사가 단도를 걷어차 내지 않았더라도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지는 못했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자, 병사에게 뺨을 세게 맞아서 조금 붉게 부어오른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지나친 강경진압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안쓰러운 감정도 생겼다. 



 “공주님 괜찮으십니까?”


 “생전처음으로 세차게 뺨을 맞아서 머리가 울리는 것 말고는 괜찮아요. 저를 좀 죽여주시겠어요?”



 고개를 갸웃거린 병사는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고 믿었었다. 하지만 그가 걱정했던 공주는 정신을 차리고 있지 못한 게 아니었다.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있었고, 적국의 병사에게 존칭을 사용하며 원하는 바를 이루고 싶어 하고 있었다. 병사는 그런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자신의 궁궐이 박살이 나고 밖에서는 무시무시한 살육이 일어나는 중에도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는 그녀가 놀라웠다. 역시 왕족은 뭔가 다르다는 생각도 들었다. 


 포박을 하는 게 맞는 행동이겠지만, 병사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연약해 보이는 그녀가 누군가를 제압해내는 행동을 시도하는 모습은 상상할 수 없었고, 그저 칼을 겨누기만 해도 죽여주기를 바라며 칼에 달려들 것 같았다. 그래서 병사는 칼을 칼집에 꽂아 넣고 공주를 일으켜 세웠다. 



 “전 공주님을 생포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병사님은 모든 명령을 완벽하게 수행하시는 편인가요?”


 “그러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실수도 하실 테고, 가끔은 실패도 하시겠죠?”


 “그건 왜 물으십니까?”


 “지금 절 죽이고, 실패했다고 알리세요. 제 저항이 심해서 어쩔 수 없이 죽였다고 하세요!”   



 공주는 병사에게 어쩔 수 없는 사고로 그녀를 생포하는 명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더불어 그녀의 목숨을 버리고 싶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아름답고 고귀한 공주가 스스로의 목숨을 이토록 버리고 싶어 하는 모습에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공주를 생포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는지 설명해주고 싶었다. 


 왕족은 왕족이었다. 병사와 같은 소모품들의 생사와 명령에 대한 중요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의 의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높으신 존재들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왕족들은 그런 존재였다. 


 병사는 손가락을 내밀어 공주의 이마를 콕 찍어 밀었다. 공주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뒤로 조금 밀려났다. 



 “제 손가락 하나로도 공주님을 제압할 수 있습니다. 공주님의 저항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전 제 상관의 명령을 완벽하게 수행할 생각입니다.”


 “병사님! 병사님의 능력을 무시한 게 아니에요! 전 병사님 상관의 노리개가 되고 싶지 않아요! 저 같은 여자애가 남자들의 노리개가 되는 모습을 보고 싶으셔요!”       


 “착각하고 계신 겁니다. 공주님은 누구의 노리개도 되지 않습니다. 제 상관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공주님은 포로의 신분으로 앞으로의 전쟁의 협상에 중요한 역할을 하실 겁니다.” 


 “제가 포로요? 우리나라는 이제 끝이에요! 제가 어떤 포로의 가치가 있겠어요!”


 “저희와 분쟁중인 왕국의 왕이 공주님을 사랑합니다.”


 “전 그를 사랑하지 않아요!”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공주님. 언제나 세상은 내가 누굴 사랑하는지 보다 누가 날 사랑하는지가 중요합니다.”



 공주는 입을 닫았다. 일개 병사에게 사랑의 가치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지 않아서 그러지는 않았다. 병사의 말처럼 자신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주제에 포로를 공주라고 불러주고 있었다. 아직 자신은 공주로 대접받고 있었고, 여느 포로와 같이 포승줄로 묶여서 끌려가고 있지도 않았다. 단지 그 병사의 개인적인 판단으로 포승줄에 묶이지 않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병사의 상관은 공주를 생포한 병사에게 크게 포상하고 공주에 대한 감시를 맡겼다. 공주는 감금된 상태이긴 했지만, 그녀의 품위를 지키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도움을 주는 일을 맡았다. 전쟁을 치루는 통에 시녀를 구해오기도 어려웠고, 혹시 모를 돌발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차라리 노련한 병사가 괜찮았다. 



 언제나 최전선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에 투입되던 병사에게 한가로운 일상이 시작되었다. 공주에게 전해질 식사를 책임지고, 갑작스런 심경변화로 인해 다시 자살을 시도하는 걸 막는 것이 임무였다. 누군가 공주의 식사에 독을 탈 걱정도 없었고, 공주가 다시 자살을 시도할 것 같지는 않아보였다. 그래서 병사는 한가로이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일이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오랜 기간 전장에서 활약하느라 읽지 못했던 서적들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절대로 전쟁을 겪어본 것 같지 않은 작가가 쓴 전쟁소설은 재미있었다. 병사의 입장에서는 상상조차 어려웠던 애틋한 사랑이야기는 지루했었다. 그렇게 공주를 감시할 수 있는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공주가 병사에게 말을 걸었다. 



 “병사님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나요?”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왜요?”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데는 이유를 설명하고 싶지 않다는 것도 포함됩니다.”


 “하루 종일 그렇게 앉아 계시면 심심하시잖아요?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으세요?”


 “이 책은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조금 전에 하품을 하셨어요.”


 “제가 그랬습니까?”


 “무척 지루하고 심심하다는 표정이세요.”


 “전 공주님을 감시하는 일도 전투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랬는데요?”


 “하품이 나왔습니다.”


 “어머 그거 농담이시죠? 재밌네요. 저와 대화를 나누면 안 된다는 명을 받으셨나요?”


 “아닙니다. 어떤 대화를 나누고 싶으십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있냐는 질문에 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으셔요?”


 “제가 사랑했던 고향의 그녀가 최근에 어떤 놈팽이 놈에게 시집가서 애를 낳다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죄송해요”


 “아닙니다. 농담이었습니다. 방금 읽던 책의 내용을 이야기 했습니다.”


 “재미있으세요?”


 “제가 하품을 했다고 하셨습니다.” 



 병사는 결국 공주와 많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공주의 집요한 노력으로 병사는 그가 사랑했던 고향의 그녀에 대한 이야기도 꺼내게 되었다. 공주는 병사에게 많은 이야기를 듣기 원했고, 병사는 사촌조카가 몇 년 전에 우물에 빠졌다가 죽을 뻔 했었다는 이야기까지 꺼내야 했었다. 


 공주는 자신의 처지를 잠시라도 잊고 싶은 마음에 시도한 일이었지만, 병사와의 대화에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왕족들과는 다른 삶에 대한 이야기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두 사람은 식사시간도 잊은 채 이야기를 나눴고, 달이 하늘 가운데에 걸린 줄도 모르고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한참을 이야기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던 병사는 문뜩 자신의 이야기만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공주는 끊임없이 병사에게 질문했고 병사는 그가 살아온 모든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 것 같았지만, 공주는 자신의 이야기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병사는 공주와의 기나긴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 그녀가 포로라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공주님은 왜 자신의 이야기는 하지 않으십니까?”



 공주는 슬프게 미소 짓다 참지 못하고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다. 공주의 눈물을 보고나서야 병사는 공주가 포로이고, 자신은 공주를 감시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한번 흘러내리기 시작한 공주의 눈물을 멈추지 않았다. 병사는 미안한 마음에 손수건을 꺼내 공주에게 건넸다. 손수건을 건네받은 공주는 병사의 손을 잡았다. 


 부드러운 공주의 손이 병사의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어쩔까 고민하던 병사는 공주를 잠시 안아주기로 했다. 공주는 병사의 품안에서 더 울기로 했다. 



 밤이 깊어졌고, 병사와 공주는...





 안알랴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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