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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극복하기 힘든 기억

작성자
Personacon 밝은스텔라
작성
16.02.19 18:24
조회
1,528

저는 한 번 겁먹어 버린 일은 극복이 잘 안 되나 봅니다.


옛날에요. 저는 거의 매주 1호선 용산역을 이용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에는 1호선을 타려면 용산 전자상가 안을 통과를 해서 올라갔다가 다시 계단으로 내려가야 했거든요. 그런데 역 자체도 그렇고, 전자상가에도 돌아다니는 여자 사람이 없었어요. 정말 보기 힘들었습니다. 판매자도 그렇고 행인도 다 남자 사람들이었던 시절이었는데.. (요즘은 어떤지 몰라요) 


그 시절에 제가 막 스무 살이 될까 말까 하던 시절이었는데 그 용산 전자상가가 제게는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어요.


전 정말 남방 쪼가리에 청바지. 그렇게만 입고 다니는 스타일로, 화장도 안 하고 머리도 쇼트커트에 푸석푸석. 전혀 아가씨 분위기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그곳을 지나려고 하면 거기 입점해 있는 모든 가게의 직원들이 다 한마디씩 하는 거였어요.


손가락으로 딱딱 소리도 내고 휘파람도 삑삑 부르고. 하면서 "언니! 언니 어디가! 물건 좀 보고 가!" "언니! 차라도 한잔하고 가!" “언니! 뭐 찾아? 우리 집에 다 있어!" "언니! 바빠?" 등등....


그 왜, 바이오 하자드 게임 보면 벽에서 손이 나와서 손으로 아우성치는 코스도 있어요.. 마치 그런 코스를 지나는 것 같았지요. 지금 생각하면 아무도 절 해치지 않았는데요. 하지만 그 아우성 속을 뚫고 걸어간다는 게 그 시절에는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릅니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무서웠었는데…. 문제는 그때 겪었던 공포가 지금도 극복이 안 되어서요. 용산= 엄청나게 무서운 곳. / 이라는 인식이 사라지지 않아요.


그래서 그간 기계식 키보드 알아보면서 모두 직접 가서 타건해 보면 좋다고 감사한 의견을 주시지만 도저히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도저히. 도저히...  지금은 뭐, 가 봐야 누구 하나 절 쳐다보는 사람도 없을 텐데 말이지요. 그런데도 용산 전자상가를 떠올리기만 해도 손끝이 싸늘해질 정도로 무섭답니다. 사람의 기억이 그렇게 신기한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은 고민 고민 끝에 결국 타건 한 번 안 해보고 운에 맡긴 갈축을 질렀어요.


건초염이 있는 손가락에 좋으라고 적축과 흑축을 끝까지 고민했어요. 하지만 많이 알아본 결과, 적축이 키압은 너무 적어서 누르는 것은 편하게 느껴지지만 키압이 적은 탓에 다른 축보다 바닥을 치는 충격이 상대적으로 강하다고 하네요. 손가락 아픈 사람에겐 그걸 무시할 수 없다고요. 하지만 흑축은 원하는 모델에는 안 나와 있고 누르는 것 자체가 무거우면 그것도 사실 장시간 작업에는 손에 무리가 오겠다 싶어서 갈축으로 선택했어요.


물론 한 번 가서 타타타타 쳐 보면 전혀 다른 세상을 볼 거라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후덜덜덜 겁이 나서 결국 운에 맡기는 이 상황이 참 한심하면서도 딱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사람이 상처를 주고받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오늘따라 강하게 들었습니다. 한 번 받은 상처나 공포의 기억은 참 극복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늘은 옛 기억과 키보드 문제로 그런 결론에 이르렀어요.


내가 싫은 건 남에게도 하지 말자. 간단하지만 사실 실천은 어렵죠. 특히나 온라인 세상에서는 싸움도 잦고 험한 소리도 자주 오가잖아요. 끼어들지는 않지만 지켜보면 참 무섭더라고요. 하지만 멘탈이 강한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세상엔 그런 분위기에도 무서움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고, 또 보기에 따라서는 별것도 아닌 그 무서움을 극복 못 하는 사람도 있고요. 그런 걸 생각하며 저는 앞으로 많은 걸 양보해야겠다. 싶었어요. 저를 겪은 사람들이 두고두고 떠올릴 때마다 무서워하지 않게 말이지요.


아무튼 감으로 주문했지만, 그 체리 3497갈축이 아픈 제 손에 잘 맞았으면 좋겠어요. 물론 가장 좋은 건 손을 혹사하지 않고 많이 쉬어주는 것이겠지만요.


으핳핳핳... (쉴 수가 없잖앙~)


Comment ' 16

  • 작성자
    Lv.52 하이텐
    작성일
    16.02.19 18:51
    No. 1

    스텔라님이 소프트한 예를 드셨는데 이 세상에는 참 어마어마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누군가는 그런 사건에 휩싸여 고통받고 있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밝은스텔라님처럼 생각하고 산다면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이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있는 거 같습니다.
    우선은 나 자신부터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겠죠. 동감합니다.
    그리고 저도 갈축이라는 것을 써보고 있습니다. 제 꺼는 한성키보드네요. 귀찮아서 그냥 주문했는데 키감은 그럭저럭 맘에 드네요ㅎㅎ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밝은스텔라
    작성일
    16.02.19 18:57
    No. 2

    그러게 말입니다. 정말 세상에는 어마어마한 일들이 일어나고 힘 없는 사람들이 무참하게 희생되고 그렇죠.. 마음이 너무 아프지만, 그럴수록 더더욱 내가 먼저 잘 하자. 하고 마음을 먹어 봅니다. 제가 그렇게 힘들어 하는 사람들의 구세주는 될 수 없어도, 적어도 제 주변만큼은 온화하게 할 수 있겠지.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입니다. // ㅎㅎㅎ 갈축* 저도 물건이 잘 왔으면 지금 한별 갈축을 쓰고 있었겠죠. ㅎ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2 흑색숫소
    작성일
    16.02.19 18:52
    No. 3

    예전 청계천이나 용팔이의 고향은 남자사람에게도 무서운 곳이었죠 ㅇㅅㅇ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밝은스텔라
    작성일
    16.02.19 18:58
    No. 4

    ㅇㅅㅇ) ㄷㄷㄷㄷ 그렇죠. 청계천도 그렇고 예전엔 서울역 일대도 흠좀 무서웠어요... ㄷㄷㄷㄷ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6.02.19 18:52
    No. 5

    미움받을 용기 한번 읽어 보세요.
    책 하나 읽는다고 뭐가 확 바뀌고 그렇지는 않겠지만, 책 자체가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해주는 이점이 있고 재미도 있을 겁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밝은스텔라
    작성일
    16.02.19 18:59
    No. 6

    아. 그거 2년 전인가? 출간 되자마자 읽었답니다. 그리고 뭔가 중대한 결심을 했고, 이후 제 인생이 바뀌었어요 ;; OTL 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6 시스나에
    작성일
    16.02.19 18:56
    No. 7

    성희롱이네 잡것들. 부산에 살아서 용산에 딱2번 가봤는디 히빠리가 심하긴 한데 귀찮은 정도였는데 여자한테는 그런식으로 했나보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밝은스텔라
    작성일
    16.02.19 19:01
    No. 8

    아, 그 시절에는 그런 일로 성희롱이다 이런 개념이 아예 없었던 것 같아요. 다들 서로 경쟁하듯 웃으면서 휘파람을 불며 "언니 싸게 줄게!!!" 하고 장난을 치는.. 그런, 장난의 차원이었나봐요. 하지만 정작 그 틈바구니에 떨어진 한 마리 여자사람은 후덜덜덜덜덜덜......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1 무순
    작성일
    16.02.19 19:49
    No. 9

    용산무섭죠..요즘은 명동화장품쪽도 호객이 심하더라구요.
    중국인여성이 지나가는데 여성점원이 팔을 잡고 강제로
    가게안으로 끌고 들어가는 장면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기계식키보드 타건은 용산전자상가 말고도
    4호선 신용산역 지하상가쪽에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미 구매하셨으니 늦었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밝은스텔라
    작성일
    16.02.19 20:06
    No. 10

    ㄷㄷㄷㄷ 그 시절의 용산은 상가도 무서웠지만 밖으로 나가면 적십자 아줌마도 무서웠다는요.. 그냥 피 뽑는 버스에 막 끌고 들어가려고 하고;; ㄷㄷㄷ 무튼 작년에 명동 갈 일 있었는데, 전 관광객 분위기가 안나서 그런지, 로드샵 물건 들고 가격 살펴보고 해도 캐무시... ㅋㅋㅋ 어휴.. 다들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왜 그리 이미지를 생각 안하는지;; 무튼, 4호선 정보는 감사합니다. 잘 기억해 두었다가 언젠가 다음 기회가 있다면 참고할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지드
    작성일
    16.02.19 19:56
    No. 11

    괜히 용산던전이겠습니까.. 많이 축소된 지금도 지나가면 호객 심합니다. 예전엔 잡아채기도 했던거 생각하면 말만 하는 지금은 좀 낫지만.. 여전히 혼자 지나가긴 무서운 곳입니다..ㄷㄷ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밝은스텔라
    작성일
    16.02.19 20:07
    No. 12

    ㄷㄷㄷ 용산던전이라는 말도 있는 거군요;; ㄷㄷ 요즘도 산 새 울고 꽃 피는 평화로운 분위기는 아닌가봐요. 어휴... ㄷㄷㄷㄷㄷ "손님. 맞을래요?" 라는 명언(?)이 괜히 나온 게 아닌듯... ㄷㄷㄷ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6.02.19 20:01
    No. 13

    저는 이상하게도 갈수록 감정이 둔감해지는 걸 뜬금없이 깨달을 때 소름이 쫙... 그리고 다음날에는 평상시에 겪는 것처럼 그냥저냥한 기억으로 남게되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밝은스텔라
    작성일
    16.02.19 20:08
    No. 14

    우와... 면역력이 강하신가봐요. 존경스럽습니다;; ㄷㄷㄷ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6.02.19 21:00
    No. 15

    부작용이라면 갈수록 감정을 느끼는 요인이 제한적으로 변해간다는 것이려나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숫자하나
    작성일
    16.02.19 23:42
    No. 16

    트라우마란게 남들이 보기엔 대수롭지 않아도 그걸 격는 자신에겐 엄청 높은 벽이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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