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문피아 베스트를 기웃거리다 보면 볼게 없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물론 이건 제 기준이겠지만, 이런 생각이 든데에는 요즘 유행이되서 나오고 있는 작품 설정에 있습니다.
1, 환생, 회귀 문제에 대해서
환생이나 회귀물은 예전에도 존재했습니다. 보통 환생이나 회귀하는 인물들을 보면 원한이나 세계의 멸망으로 인한 회귀가 많습니다. 그리고 회귀에는 어느정도는 납득할 수 있는 이유가 붙어야 합니다. 하지만 요즘 소설들을 보면 이런 문제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 회귀물이라 하면 차원의 어그러짐, 신의 농간, 능력의 발현 등등 다양한 이유를 붙여서 그 문제를 합당화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차에 치여서 회귀하거나 잠자다가 회귀,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회귀 등등 아무 이유없이 회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회귀라는게 과학정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소설의 진행을 위해서 특별하게 인정되는 현상이니 만큼 어느정도 적절한 이유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후회로 회귀한다면 이 세상은 과거로 회귀하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을겁니다. 주인공이니까 특별해. 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글을 읽는 독자 입장에서는 회귀의 이유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행위가 거북하게만 느껴집니다. 그런 글이 합리적으로 흘러가는 걸 기대하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보통 회귀를 하면 1,2년 단위로 하지 않습니다. 10년 15년..등등 10년 단위로 회귀하곤 합니다. 그리곤 말하죠 과거로 돌아왔다. 라고. 전 이런 문제를 가진 소설들을 많이 봐왔습니다. 여러분은 10년 전 사건은 생생하게 기억하십니까? 전 아직 30대임에도 불구하고 20대 초반일들이 드문드문 기억이 납니다. 이 기억이 정확할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억은 시간이 지날 수록 변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회귀의 주인공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날을 기억합니다. 딱히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상과없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보고 회귀했구나 라고 생각 한 뒤, 돌아가신 부모님을 뵙고, 미운 여동생을 보고 눈물한번 흘려준 뒤 수업을 들으러 가면 되니 말입니다. 담담하게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도 문제지만, 특별한 날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당연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글을 볼 때면 그날은 글이 정말 읽기 싫어지게 됩니다.
환생의 문제는 회귀와는 다릅니다. 이유를 붙일 필요가 없다. 환생의 원인은 죽음 뿐 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환생은 회귀보다 좀 더 편하게 사용 할 수 있는 스토리 입니다. 하지만 환생물은 회귀물 보다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우선 어린 시절을 그려야 합니다. 누구보다 빠른 성장, 성숙한 매력으로 주위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습니다. 하지만 그뿐입니다. 어린 시절이 지나가고 성인이 된다면 그 사람은 더이상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평번한 사람이 환생을 한다고 해서 현대에서 환생한 이상 매워둔 마법도, 무술도 없습니다. 다시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갈 뿐이죠. 단지 과거를 알 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환생물은 회귀물보다 드물고, 연중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 그 이유는 아무 설정없이 어른스러운 아이가 재밌겠다 라고 생각하고 써 내려간 작가들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 준비없이 하루하루 써 나가다 보면 주인공은 어느새 평범한 청년이 되있습니다.
2. 게임, 현대 판타지에 대해서..
게임이라는 특정한 설정 상 가장 잘 어울리는 배경은 현대입니다. 무협에서 게임의 설정을 쓰기는 어렵습니다. 잡을 몹스터가 없기 때문에죠. 현대는 몬스터가 있습니다. 설정이 그렇습니다. 전 게임판타지를 보면서 항상 이런 생각을 합니다. 왜 항상 직업은 정해져 있는가. 레벨은 왜 존재하는가. 스킬경험치라는게 필요한 것인가. 도대체 능력측정기는 어떻게 만든 것인가.,,이외에도 많은 의문을 가지지만 보통 이정도 의문을 가집니다. 전 게임 설정을 좋아합니다. 평범했던 사람이 능력을 받고 자신의 능력을 키우는 것도 좋아합니다. 그런데 왜 게임 판타지는 항상 레벨로 나누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합니다. 요즘 이세계를 기준으로 하는 판타지는 찾아보기 드뭅니다. 그곳에서는 현대 게임처럼 빠르게 강해지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검술도 전문가에게 또는 실전으로 배워야만 합니다. 능력을 키우려면 연공법도 배워야 하죠. 현대 게임판타지에서 스킬로 쓰다보면 늘어나는 기술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대 게임판타지를 보면 대부분이 비슷합니다. 그러다 보니 직업도 몇 가지로 나뉘게 됩니다. 항상 힐러는 귀중한 자원이되고 딜러 탱커는 힐러의 비위를 맞춰줘야 합니다. 이렇다 보니 어느 소설을 보나 비슷한 설정으로 가게 됩니다. 결국 마지막은 세계의 멸망을 막아야 합니다. 남이 하던 설정을 따라하다 보니 주인공은 특별함에도 그걸 읽는 독자 입장에서는 평범하기만 합니다. 아무도 따라하지 않은 방법으로 몬스터를 잡았다고 하지만, 그 방법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전 게임을 좋아합니다. 게임을 하다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시스템의 오류를 이용해서 시상천외한 방법으로 사냥하는 사람도 봐왔고, 튜토리얼에서 이길 수 없는 상태를 몇 시간에 걸쳐 이기는 사람도 봤습니다. 세상을 넓고 사냥방법은 많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고민하지 않고, 작품을 연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인공의 방법만이 최초일 뿐입니다. 그런 소설들은 결국 연중을 하게 됩니다. 완결까지 갈 수 있는 설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천재인 주인공은 없습니다. 다만 시스템의 힘으로 남보다 강해지는 주인공만 존재할 뿐입니다.
전 사실 환생 회귀 게임 현대 물을 좋아합니다. 너무 유행이 되서 식상하다 란 말이 있지만 과거에는 무협, 전통 판타지 뿐이었습니다. 그런 소설들도 재밌었지만 새로운 설정이 나오면서 그 색다른 재미에 빠져 찾아 읽고는 했습니다. 사실 식상하기로는 현대판타지보다 무협, 전통판타지가 더 식상합니다. 더 오랜 시간동안 소설시장을 점유해왔고 현재도 유지하고 있습니다. 현대판타지는 단지 몇 년 뿐입니다. 왜일까 생각해 봤습니다.
이유는 제가 이 글을 쓴 이유와 상통합니다. 설정을 하지 않는다.
전 중학교 때 소설을 처음 접했습니다. 판타지 소설 첫 페이지에는 지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나라 지역 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는 작가의 설정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판타지가 처음인 독자들을 위해서 자세한 설명을 적어놓고 독자들은 그것들을 보면서 세계관을 이해했습니다. 그게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작가들을 동경해 처음 소설을 쓸 때도 소설을 쓰기보단 설정을 하는데 시간만 보냈습니다. 결국 소설은 한 줄도 쓰기 어려웠습니다. 소설의 설정이란 건 내가 신이돼서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어린시절의 전 능력이 부족해서 항상 설정만 하곤 했습니다. 현대판타지로 넘어오면서 모든 걸 설정할 필요는 없어졌습니다. 현대가 배경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세계관을 용어를 설정 할 필요가 없어졌다라는 건 아닙니다. 현대가 소설이기 때문에 좀 더 세밀한 설정이 필요해졌습니다. 하지만 요즘 작가들은 설정하기를 거부합니다. 이런 현상이 소설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길을 걷다 넘어지는 데에도 이유는 존재합니다. 완벽한 이유는 필요없습니다. 합리적인 이유라면 독자들은 이해하고 넘어갑니다. 전 소설을 쓰는 작가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독자들은 합리적인 이유를 원합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데도 이유가 있습니다. 합리적인 글을 써달라.
전 작가님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능력자들의 레벨 능력을 측정하는 측정기는 어떻게 존재하는 겁니까? 이게 합리적이 물음이고, 이런 설명이 가능한 글이 합리적인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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