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무협을 써 봅니다. "묵환"이라는 글입니다. (정연에 있습니다)
'멍든곰'님과 '패왕의알'님이 쓰신 글을 읽고 문득 "무협이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묵환'은 지금 게재된 분량(A4 약 90페이지)의 세 배 쯤 써놓은 상태입니다. ("비축분 풀어라!"고 하지 말아 주십시오. 저두 먹구 살아야 합니다. 흑흑)
처음 쓸 때에는 마음 한 구석에 "까짓, 무협 쯤이야!"란 교만한 생각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쓸 수록..어렵다는 것을 느낍니다. 욕심을 버리면 (들어가는 노력에 비해 수입이 작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버리면) 얼마든지 노력을 퍼부을 수 있습니다. 점점 더 어려운 것은, 노력을 퍼 붓는 것이 아니라, "무협이 무엇일까?"란 문제입니다. 보다 정확하게는 "나에게, 무협이 무엇일까?"란 문제입니다.
무협은 쓰는 사람, 읽는 사람마다 그 원하는 바가 조금씩 다를 것입니다. 쓰는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나의 무협은 무엇일까?"란 문제가 되고, 그 다음 문제는 "나의 무협을 사람들이 좋아 할까?"가 됩니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찾을 수 있으면서도 '내 색깔', '내 의미'를 가지는 무협을 깎아 나간다는 게...에고...휴...장난이 아니라는 느낌입니다.
멍든 곰 님이 언급한 '반지의 제왕'을 생각해 봅니다. 그게 아마 1960년대에 나온 책이지요. 옥스포드 영문학 교수였던 톨킨이 썼지요.
(톨킨은 작년인가, 엘비스 프레슬리를 젖히고 '사후에 후손에게 인세를 가장 많이 벌어주는 사람'으로 꼽혔습니다.)
톨킨은 문헌학자(philologist)였습니다. '문헌학자'라고 하면 잘 느낌이 안 옵니다. 우리가 쓰는 말로는 '금석고문학자'였습니다. 말하자면 고전 그리이스 어, 라틴어,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수메르 어 같은 양피지, 점토판, 돌, 금속에 새겨진 문서를 읽고 해독하는..그런 이상한 사람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 사람이 1960 년대에 반지의 제왕을 썼지요. 아마 그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해괴한 '대중' '읽을거리'였다라고 봅니다.
한마디로 무협을 쓰는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생활도 해야 하고(수입도 있어야 하고), 한편으로는 양을 채워 내기도 해야 하고, 한편으로는 '자기 색깔'을 만들어 내야 하고, 한편으로는 독자를 잡아 낼 수도 있어야 합니다.
이 점에서 저 역시 약간은 비관적입니다.
이 모든 것을 동시에 만족한다는 것은...정말...어렵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러나, 제 경우에는, 적어도 '세 번'은 시도 해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저의 이런 뜻이 조금 내비쳐졌었는지, 언제인가 이 공간에서 매우 심각한 독자 분께서 "잠산의 묵환 같은 것은 출판사가 반드시 찍어야 한다!"라고 열변을 토해 주셔서 낯이 뜨거웠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 독자분을 배반하지 않으면서, 대중성을 확보한다는 게...쉬운 일은 아닙니다.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가지는 작품...백 오십 만 장르 독자 분 들 중에 최소한 오십 만에게는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줄 수 있는 작품...
그 오십 만이 흔히 '고딩/중딩'이라 불리우는 층이어도 좋고,
혹은 저 같은 늙수그레한 중년 남성이어도 좋고,
혹은 무협의 남성성과 섬세한 여성성의 결합을 꿈꾸며 무협지를 찾아 헤매고 있는 이십 대 여성분이어도 좋습니다.
모든 독자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어느 한 독자층이라도,
그 독자층이 원하는 재미/의미를 저 역시 재미/의미로 느끼는 것.
그 것이 정말 어렵지만..
재미/의미가 있는 과제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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