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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은 검의 무덤을 스쳐지나가 한 무더기의 백골 알페서 걸음을 멈추었다. 여인은 부드럽고 완고한 손짓으로 쌓여있는 뼈 무더기에서 해골 하나를 골라 집어내었다. 해골의 머리에는 굵은 금속화살하나가 박혀 이었다. 반쯤 끊긴 은색 서클렛이 금속 화살위에서 춤추듯 흔들렸다.
"스워드의 군주, 아렌 스워드"
여인은 한 음절 한 음절 끊어 말했다.
"내 사랑하는 남편, 사촌오라버니."
여인의 검은 눈동자가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새벽의 왕이여, 명검 울란의 주인이여.
황혼의 땅으로 진격했던 때가 생각나는가?
창대에 매단 깃발이 동쪽으로 휘 날리고, 말머리가 서쪽으로 향했을때, 그대는 혹시 알지 못했는가?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음을?
무심한 하늘아래 사정없이 땅을 채찍질하고 조롱했던 그대가,
어찌 그것만큼은 알지 못했던가?
그토록 현명하고 아름다웠던 그대가, 지금은 이렇게 싸늘하게 누워있구나.
그대라는 사람이 정말로 존재했었는지 사람들조차 의문을 품고 있는데, 내가 받은 상처와 모멸도 처음부터 없었던 것인가?
그러나 지금, 그대의 아내이자, 에스메릴의 주인인 나, 시스는 말한다.
그대처럼 아름답고 당당한 풍모를 지녔던 자도 한줌 흙이 되는 건 한 순간이라고."
시스는 해골을 머리위로 높이 들어 올린 다음, 사정없이 땅을 향해 내동댕이쳤다.
파사삭. 해골은 마른 낙엽이 부서지는 소리를 내며 흩어졌다. 때마침 불고 있던 바람이 흙과 뒤섞여 있던 하얀 뼛가루를 허공으로 흩뿌렸다. 서클렛과 화살만이 바닥에 뒹굴었다.
여인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뒤돌아섰다. 여인의 긴 소매가 팔락거렸다. 그때까지 지켜보기만 하던 까마귀가 냉큼 서클렛을 물어 올리고는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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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물감저 목련의 나라 中
서장부터 압박인 작품입니다. 지금도 벅차네요 휴.
가벼운 것보다 무거운 것을 좋아하고 한번 읽으면 정독 하시는 분들께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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