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판타지나 무협의 요구 사항에
'개연성'이 거의 필수처럼 나타납니다.
아니, 사실상 소설적으로 그게 당연하긴 하죠.
하지만... 요즘은 너무 집착하고 있다는
느낌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수준높은 독자들이 개연성이 없는 부분을 짚어내고
개연성을 요구하다보니, 작가들 역시 개연성에
너무 집착하지나 않나... 싶기도 하네요.
제가 처음 썼던 소설은 역시 상당히 엉성하고
개연성의 개자로 찾아볼 수 없던 졸작이었습니다.
때문에 개연성 없는 전개로 상당히 비판을 많이 받았죠.
그래서 리메이크로 두 번째 소설을 쓰면서, 그러한 개연성에
굉장히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
일곱번째기사의 최근 연재분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거기에서 어떠한 러브레터를 예를 들며
'자신의 사랑에 대한 증명을 증명하려고 하고 있다'라는
글귀가 나옵니다.
제가 바로 그 꼴이 났지요.
어떠한 사건의 개연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개연성을 만들고
그 개연성의 개연성을 만들고, 또 그 개연성의 개연성을
만드는... 그야말로 무한의 고리.
개연성의 개연성의 개연성의 개연성의 개연성이 되어버린
황당한 일이 일어난거죠.
나중에 되니 개연성만 잔뜩 있지 스토리나 내용이나 주제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종내에는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싶었는지 스스로도 잊은 채, 그저 개연성을 증명하는 것에
몰두해서 소설이라는 것을 써버렸습니다.
나중에 그걸 깨달았을 때, 이미 한참을 와버렸고
결국 허겁지겁 완결을 냈지만
완전 개연성 파토난 소설을 또하나 이 세상에 탄생하게 만들었죠.
개연성이란 것은 아무리 찾아도 끝이 안 보이는 물건입니다.
어떠한 일에 개연성을 만들면, 그 개연성의 개연성을
만들어야하고, 또 그 개연성의 개연성을 만들어야만 합니다.
개연성이란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하는 것과 똑같죠.
지금 눈앞에 있는 닭이 있다고 칩시다.
그 닭은 전에는 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알은 어떤 닭이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 닭도 알이었고, 그 알은
또 다른 어떤 닭이 낳았습니다.
이렇게 거꾸로 거슬러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봤자
아무것도 안 남죠.
오히려 지칠 뿐.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뭐, 개연성에 너무 집착하지는 말자... 정도일까요?
물론 개연성이란 존재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없으면 나쁘죠.
다만, 거기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진짜로 중요한 것,
좀 더 근본적인 것을 잊지는 말았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ps. ...랄까 왜 인체연성은 안 되고 개연성은 되는 겁니까?(의불)
ps2. ...랄까 그래서 브레이브는 개를 연성해서 밥 말아먹었냐하면 할 말이 없군요.(의불)
ps3. ...랄까 그런 짓을 하는 인간은 너 밖에 없다라고 말하면 또 할 말이 없군요.(의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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