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피아에서 별 볼일 없는 졸작을 하나 연재하고 있는
CATREADING 이라고 합니다.
취미삼아 쓴 소설(이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운 졸작)을,
아내가 재밌게 읽어주고는 "내가 보기엔 재밌으니까 어디다
한번 올려봐요"라고 해줘서 문피아까지 오게됐습니다.
그런데 정말 천운이 따랐는지, 제가 보기에도 놀랄 정도로
많은 분들이 글을 읽어주셨고, 또 하루하루 조회수 10위 안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할 따름이지요.
그리고 그렇게 많은 분들이 읽어주신 덕분에, 놀랍게도 출판사
에서 저에게 연락을 해주셨습니다. 한번 정식으로 출간글을 써볼
생각은 없냐고 해주셨습니다.
저는 아내와 상담한 뒤에, 처음에는 취미삼아 글을 썼지만
한번쯤은 정식으로 써보는 것도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출판사에 한번 해보겠다고 답변을 드렸지요.
그 후, 저는 혹시 지금 문피아에서 연재하고 있는 졸작이
출판되는 건가, 하고 생각했는데...출판사에서는 그건 힘들겠다고
답변을 주셨습니다.
왜 힘드냐면...제가 쓴 판타지에는 [드래곤]이나 [엘프]같은게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주인공이 드래곤의 환생이고
현대에서(제가 쓴 것은 현대물입니다) 힘을 쓰는 이야기라면
더 좋았을 거라고 해주셨습니다.
저는, 판타지에 꼭 드래곤이 등장해야하는 건가(심지어 현대물인데),
싶었지만, 출판사에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주말을 이용하여 다시 한 편의 글을 써 봤습니다.
이번에는 중세 판타지로, 제가 좋아하는 게임 [창세기전]처럼
서양식 판타지에 적당히 동양식 요소를 섞어 글을 써 봤습니다.
사실 제가 쓰고 싶었던 것은, 조금 흔치 않은, 약간은 특이한 형식의
판타지였지만, 출판사에서 원하시는 것은 중세 판타지인 듯 하여
조금 부득이하게나마 궤도를 수정한 것 입니다.
아무튼 그렇게 쓴 중세 판타지(동양식 요소가 가미된)를 들고
출판사에 글을 보여드렸습니다. 이런 식의 글이면 괜찮겠냐고 물어봤죠.
그런데 이번에도 부정적인 답변을 들었습니다. 물론 제가 글을
잘 쓰질 못하니 부정적인 답변을 들을 수 밖에 없을수도 있지만,
제가 들은 답변 내용은...
먼저, 주인공들이 쓰는 마법이 이상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동양식 요소를 첨가하고 싶어서 마법 중에 [찬바람(냉기마법)]이니 [불꽃(화염마법)]처럼 우리말로 된 마법을 넣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출판사에서는, 이런 마법은 독자들이 익숙하지 않으니
[헬파이어]나 [파이어볼]로 대체해야한다고 하셨습니다. [헬파이어]는 척봐도 뭔지 알지만 [불꽃]은 척보면 뭔지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불꽃]이라는 이름도 그렇고 [불길을 뿜어냈다]라는 표현도 나오니 이게 뭔지 모를리 없다, 심지어 판타지를 전혀 모르는 제 아내도 이해한다...고 말했지만, 출판사에서는 [요즘 독자들은 익숙한 표현을 좋아합니다]라는 식으로 [헬파이어]이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뭐 이런 문제는 사실 명사 단어 하나의 문제이니, 저는 크게 개의치 않고 그냥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불꽃]이 [헬파이어]가 된다고 해서
전체 내용이 바뀌는 거는 아니니까요.
그런데 이번에는 출판사에서 제가 구상한 내용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게 뭐냐하면, 저는 개인적으로 주인공이 굉장히 고생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매번 성공하고 매번 싸움에 이기는 주인공보다는, 실패도 하고 패배도 하면서
아주 조금씩 깨달아가는 주인공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중세 판타지를 쓰면서도 그런식으로 구상했지요. 그런데
출판사에서는 [주인공은 강해야하고 성공해야합니다]라고 아주 단정적으로
말씀해주셨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주인공의 외모에 대한 묘사가 많아야 합니다]라고
하시는 말씀이셨습니다. 즉, 주인공은 굉장히 멋져야 하며, 그런 주인공에
대한 묘사가 소설 내에 많을수록 좋다는 말씀이셨습니다.
게다가 저는 처음부터 반전에 대한 복선을 깔아두고, 후반에 들어서서
그 반전이 밝혀지는 식으로 내용을 전개하고 싶었는데, 출판사에서는
[독자들은 그렇게 기다려주지 않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처음부터 그냥
모든 설정과 내용이 알기 쉽게 다 드러난 상태로 진행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고민했습니다. 말하자면 출판사는 저에게 그냥 [중세 판타지]를
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인공은 강하고 성공해야 하고, 그런 주인공에 대한 멋진 묘사가
많아야 하며, 어려운 복선이나 내용 전개는 없어야 하고, 마법이나
무기들은 기존 판타지에 나왔던 그대로 똑같이 써야한다는 말 입니다.
2,3일간 고민한 끝에, 저는 그냥 프로 작가는 포기할까 합니다.
저는 돈을 벌려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비록 졸작이고 내용도 엉망이지만, 제가 재밌게 쓸 수 있고
또 저의 아내가 재밌게 읽어주는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저의 처음 동기(글을 쓰는 동기)가 엉망이 된다면,
저는 재밌게 글을 쓸 수도 없고 더 이상 글을 쓸 이유도 없습니다.
어쩌면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릅니다. 출판 제의를 받은 것도 감지덕지인데, 그냥 현실과 타협해서 글을 쓰는게 좋지 않을까...
저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돈을 벌려고 글을 쓴게 아닙니다.
이직 기간에 잠깐 시간이 나서, 취미삼아 쓴 것에 불과합니다.
저는 [양산형 판타지]라는 말을 요새들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양산형 판타지]에 대해 비판하시는 것도 보았습니다.
하지만...저는 이제 힘이 빠집니다. 애초부터, 글을 출판하기 위해서는
좋든 싫든 어느정도 그 [양산형 판타지]의 요소가 필요했던 것 입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저의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양산형 판타지]의 요소를 넣고도 얼마든지 재밌고 특이한 글을
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그렇게 쓸 수 있는 분들도 많으실겁니다.
하지만...저는 그렇게 하기 싫습니다.
결국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그런 식으로 소설을 쓰기 싫으면
제가 떠나는 수 밖에 없지요.
다행히 저는, 어디까지나 취미 삼아 글을 썼던 것 뿐이니
조금 미련이 생기긴 하지만 그만둬도 별로 상관없을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전 프로 작가는 그만둘까 합니다.
이상...주말 동안 저를 괴롭힌 고민에 대한 길고 긴 푸념이었습니다.
혹시 이런 긴 푸념 읽어주신 분들이 계시다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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