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한담

연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합시다.



작성자
Lv.1 고래비
작성
08.10.31 23:30
조회
398

그 카페는 아주 평범한 곳이었다.

높다란 건물들 틈에서 슬쩍 얼굴만 내비칠 정도로 작은 그 카페는 회색빛 빌딩 사이 조그마한 골목에 숨 쉬고 있었다. 그다지 인상적인 면은 없었지만 딱 한 가지를 꼽으라면 간판을 제외한 모든 벽은 어둠같이 새카만 색이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새카맣다는 것은 검은 대리석처럼 윤기 나게 빛나는 검은빛이 아니라 빛조차 반사되지 못할, 그 모든 것을 집어 삼켜버릴 것 같은 순수한 ‘검은색’을 말하는 것이다.

‘카페 스틱스’. 이 새카맣고 조그마한 입방체 모양의 건물 이름이었다. 저승의 강물이 카페 이름이라니. 절로 조소가 흘러나왔다. 투박한 고딕 채인 간판은 카페의 나이를 대변하듯 군데군데 녹슬어 있었다.

아무 장식도 되지 않은 유리문을 열자 은은한 커피향이 내 코를 맴돌았고 문 위에 달린 방울이 딸랑거리며 내가 이곳의 문을 열었음을 카페 안의 누군가에게 알려 주었다. 그 카페는 20평 남짓한 크기였고 투박한 겉모습만큼이나 인테리어도 꽤나 수수했다. 옅은 갈색 벽지와 세 네 개 정도의 테이블, 깜빡거리는 벽걸이 텔레비전만이 카페의 유일한 조형물이었다.

“카페 스틱스에 오신 것을 환영 합니다. 음료는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그 때였다. 내가 그녀를 본 것은.

이 카페의 유니폼처럼 보이는 옷을 걸친 그녀는 척 보기에도 매우 아름다웠다. 어깨를 가볍게 덮는 긴 생머리와 하얀 눈 같은 피부, 그리고 균형 잡힌 몸매에 난 나도 모르게 시선을 빼앗겼다. 내가 남자여서 그럴지도 모르지만(변명처럼 들릴 것이라는 것쯤은 나도 안다) 그녀의 눈을 보는 순간 난 그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의 눈을 바라보는 순간, 전혀 이상할 것 없었던 카페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들이 쉼과 동시에 날카로운 냉기로 바늘마냥 폐부를 찔러대는 이 공기에 절로 숨이 막혔다. 그녀의 눈은 외모만큼이나 아름다웠지만 섬뜩하리만큼 싸늘했다. 눈을 도려내고 그 안에 얼음덩이를 심었다고 해도 믿을 것만 같았다. 난 그녀의 눈에서 피어오르는 냉기 때문에 도저히 시선을 마주칠 수 없었다.

“음료는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녹,녹차…”

내 몸을 엄습하는 처절한 냉기는 본능적인 두려움을 이끌어냈고 이제는 혀조차 얼어붙었는지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머릿속이 텅 비어 생각나는 대로 지껄였다. 난 시선을 피하며 말을 더듬는 것이 예의가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허나 이런 나의 무례한 태도는 상관없는지 여인은 말없이 나를 테이블로 인도했다. 곧 여인은 쟁반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옅은 녹차를 가져왔다.

여인이 건 낸 녹차는 매우 향이 좋았다. 싸구려 티펙이 아닌 진짜배기 녹차 잎을 쓰는 모양이었다. 입에 감도는 풋풋한 녹차 향과 온기로 경직 됬 던 몸이 점점 풀려갔다. 카페 안에 감도는 냉기는 이제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녀는 이렇게 녹차를 마시는 나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조용히 카페 구석에 세워진 첼로를 일으켰다. 암갈색으로 윤기 있게 빛나는 첼로는 그녀의 몸통과 비슷했지만 여인은 꽤나 오랫동안 첼로를 연주해 본 듯 별 어려움 없이 첼로를 일으켰다. 그녀의 손에는 어느 세 길다란 첼로 활이 들려져 있었다.

이윽고 시작 되는 현과 활의 마찰. 그녀가 만들어내는 음악이 작은 카페를 가득 매웠다. 난 마시고 있던 녹차를 테이블에 내려놓고서 정신없이 그 음악에 빨려 들어갔다. 뭐라 표현하기 힘들 만큼 아름다운 음악이었다. 그렇게 내가 음악에 빨려들자 여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내 눈에는 네가 마지막으로 흘린 눈물이 흘러내린다.

내 코에는 네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숨이 머문다.

내 귀에는 너의 절규가 들린다.

내 혀에는 너의 슬픔의 쓴맛이 느껴진다.

내 심장에는 네가 흘린 피가 흐른다.

내가 노래 할 때, 사슬은 스러지고

내가 춤출 때 너를 가둔 모든 것은 사라진다.

눈물 어린 그 기억 속의 갇힌 영혼이여,

가득한 불길 안에 다시 거듭나라.

떠도 는 이여,

갈길 잃은 이여,

자신이 누군지를 잊은 이여,

발걸음 멈추고 강을 다시 거슬러 오는 이여

난 오늘도 그대를 위해 연주 한다

신을 향한 믿음도

눈물 섞인 동정심도

거룩하다 여기는 삶의 이유도

그 어떤 것도 들어 있지 않는 연주를

멈출 수 없는 연주를

숨 쉬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언제나 계속한다.

첼로 연주만큼이나 훌륭한 노래였다. 여인은 첼로 활을 가지런히 내려놓고서 나를 바라보았다. 처음 봤을 때는 오금이 저렸던 그녀의 눈이 지금은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내게 이유를 알 수 없는 기묘한 눈빛으로 물었다.

“손님은 귀신을 무서워하시나요?”

어쩌면 어이없을지 모를 질문.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뭔가 거역하기 힘든 힘을 가지고 있었다. 난 자의인지 타의인지 모르지만 가벼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하하…네. 귀신이라면 딱 질색이에요. 공포영화도 못보고 무서운 이야기도 못 듣죠. 어렸을 땐 혼자서 화장실도 못 갔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바보 같은 내 대답에 여인은 내 말에 살며시 미소를 얼굴에 띄었다. 내 이야기가 재밌다는 건가? 저런 미인이 내 말을 듣고 웃으니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이미 아까 느꼈던 한기는 어디론가 사라진지 오래였다. 여인은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전 사람이 무서워요.”

나로선 이해 할 수 없는 그녀의 말에 난 다시 되물었다.

“사람이라면…산 사람 말하시는 건가요?”

“네.”

그녀는 아까보다 눈에 띄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전 살아있는 사람이 무서워요. 추한 이기심과 끝도 없는 욕심으로 똘똘 뭉쳐 우리가 말하는 소위 ‘귀신’이라는 존재를 만들어내는 산 사람이 너무나 무서워요. 귀신이라는 존재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사람을 죽이거나 상처 주는 일은 하지 않거든요. 오직 지구상에 사람이라는 존재만이 욕심을 위해 자신과 같은 사람을 죽이죠.”

이런 말을 하는 그녀의 눈망울은 촉촉이 적셔져 있었다. 그녀가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하는지는 나로서는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녀가 살짝 자신의 눈물을 닦자 흑수정 같은 눈동자에 다시 싸늘한 불빛이 서렸다.

“그럼 들려주실래요?”

“네?”

아까의 영문 모를 질문에 이은 또 다른 이유 모를 질문. 도대체 무슨말을 하는지 몰라 내가 의문을 표하자 여인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내 귓가에 속삭였다.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그녀의 눈빛의 냉기를 그대로 이어 받은 듯 한 싸늘함이 그녀의 목소리에 서려 있었다.

“당신이 이곳에 온 이유, 바로 당신의 원한을…!”

그녀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머물자 난 그때서야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더불어 내 심장이 더 이상 뜨겁게 쿵쾅거리지 않는 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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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스틱스>. 홍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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