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상이라 해도 좋을만큼 눈팅과 댓글만 근근히 달아가는 접니다만, 문피아에 접속해서 훌륭한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은 비단 저만의 낙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간혹 뛰어난 글임에도 잘 알려지지 않는 글들을 보면 아쉬운 마음이 들기 마련입니다.
때때로 수작을 발견하더라도, 못난 글솜씨로 추천을 잘못할까 겁내기도 하며 바쁘다는 핑계로, 귀찮다는 이유로 종종 추천글을 회피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마음을 더 이상 뒤로 할 수 없고 다른 분들에게 이렇듯 좋은 글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추천해봅니다. 제 주관 위주의 추천글이기도 하고 어느 정도 미리니름도 있으니 유의해주세요.
훼스타님의 에네트 헤센느에서는, 아직 대륙에서는 마법이 크게 발달되지 않아 막 기틀을 잡아가는 중입니다. 마법사의 수도 적고, 학문적 체계도 제대로 잡히지 않았습니다. 먼치킨과는 다소 거리가 멀지요.
작중 초반에 옴니버스의 형식을 띄었지만 에네트라는 한 여성 마법사가 주된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 그녀가 지고한 마법사라고 할 수는 없지만, 용기와 지혜로 그녀 앞의 시련들을 극복해가는 마법사이지요. 마음 여리기도 한, 참한 아가씨로 애틋한 여인이지요.
또한 그녀는 마법사이기도 하지만, 운명의 여신의 딸이기도 합니다. 그녀가 가진 반지로 하여금 그녀는 여신의 힘을 사용할 수 있지만 워낙 거대한 힘이라 그녀 본인의 정신력으론 제대로 다루기 힘든데다 본인에게 부담이 되는, 양날검과 같은 힘이기도 합니다.
이야기는 전쟁터에서 시작되는데 국경이 이미 확실한 상태에서 제국이 왕국을 침공해오고, 왕국은 저지하기 위해 파병합니다. 에네트는 왕국군에 종사하는 마법사구요. 그러나 전쟁터에서 시작한다 해서 암울한 분위기의 글은 아닙니다. 훼스타님의 글은 담백하게 진행되지요. 지나치게 화려하지도, 격정적이지도 않은 글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종일관 지루하다거나 밋밋한 글이 아닙니다.
담백하고도 유유한 가운데 조용히 타오르기도 하며, 잔잔하게 글의 분위기를 표현하는 매력적인 글입니다.
제국군에는 기네샤라는 한 마녀가 합류하게 되는데 공교롭게도 그녀는 과거 에네트와 함께 수학했던 촉망받는 마법사였지만 타락하여 마녀가 된 여자입니다. 아름답지만 악랄하고, 잔인한 여인으로 에네트와는 반대 성향을 지니고 있지요.
에네트와 이 기네샤의 갈등에 초점이 맞춰진 채로 사건이 흘러갑니다. 비단 단순한 대결 구도가 아닌 여타 사건을 갖추었는데, 유장하게 이어지는 문체는 결코 서두르는 법 없지만 그만큼 독자로 하여금 천천히 빠져들게 만들지요.
처음에 다소 지루하게 여겨지실 지도 모르고, 통쾌한 글을 기대하셨다면 실망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한 번 읽고, 다시 한 번 읽고, 두 번 읽으시다 보면 어느 새 글 속에 녹아드시는 것이 느껴지실 겁니다.
훼스타님의 에네트 헤센느 -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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