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물들여진 붉은 빛 검날.
그 끝에 짓이겨진 머리 하나를 꽂았다.
마왕 제로스의 더러운 머리를……!
정확히 10년 전이다.
세상의 끝에서 끝까지 모두 어둠으로 물들여져 있을 것만 같은 세계. 죽어서도 평안의 안식을 취할 공간조차 보이지 않는 곳.
그 어느 누구도 경험해 볼 수 없었던 그 곳!
마계의 중심에 우리 블랙 나이트가 있었다.
사방이 휑하다.
예전이라면 나의 곁을 가득 메웠을 자랑스런 블랙 나이트.
그 중에 남은 것은 나를 포함해 단 103명 뿐이었고, 나머지는 차가운 대지에 몸을 뉘였다.
"기다려라."
언제고 반드시 돌아오겠다.
그때는…… 너희 모두가 다시 나의 곁에 서 있을 것이다!
"돌아간다."
이제야 돌아간다.
내가 살던 옛 땅으로.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밤하늘의 달빛이 나를 비춘다.
하지만, 여기는 10년 전 내가 마지막으로 밟고 있었던 땅이 아니다.
모든 것이 변했고, 달라졌다.
울고 싶었다.
그러나 저 불모의 땅에 5천이 넘는 부하들의 피를 뿌려두고, 나는 이 세상의 땅을 밟았다.
나를 매섭게 몰아친 피바람에 감정은 이미 잃은 지 오래였다.
울고 싶어도 흘릴 눈물이 없고, 웃고 싶어도 웃을 감정이란 없다.
블랙 나이트!
너희들이 그렇게도 밟고 싶어 했던 인간의 땅!
내가 밟았다.
너희들의 열망을 발판삼아 이 땅을 다시 밟았다.
그래, 이 세상아.
내가 돌아왔다.
나, 흑태자 레이온 라파엘이 돌아왔다!
<언젠가 돌아오리라 믿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레이온 라파엘. 당신을 기억하며.
제국력 144년 2월 3일.>
비문을 보며 냉소를 흘렸다.
내가 전장으로 출정하던 날은 눈이 내리던 제국력 54년 1월 9일.
그런데 이 비문은 144년에 적은 것이라 한다.
90년의 괴리.
그리고 나는 이 세상에 동상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모두 똑똑히 들어라.
내 이야기는 지금부터가 진정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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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간지에 휩쓸리고픈 분들께.
<작연란 린(璘) - 흑태자>
ps.
한번 보면, 끝까지 질주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심장 안 좋으신 분께는 비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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