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무협을 개척하는 작가 분에게 찬사를 보내면서
제가 이글을 쓰는 이유는 무협을 사랑하는 독자이기에 쓰는 글입니다. 10대 후반부터 무협소설을 읽어보지 않은 대한민국 청소년이 거의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사랑을 받는 장르입니다.
꿈과 상상의 나래를 키우는데 무협이나 판타지 소설만큼 좋은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열심히 무협과 판타지 소설을 읽고 있습니다.
서술은 이정도로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무협의 시대적인 배경에 대해서 한마디 하고 싶군요. 황궁 무협이나 관가 연결된 무협의 주 무대는 상당수의 작품이 명나라에 영락제를 기본으로 이야기를 쓴 작품이 많다는 겁니다.
사실 한국사를 본다면 태종 이방원이 형제를 숙청하고 왕권을 획득하는 과정을 드라마틱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같은 시기의 명나라에서 영락제도 조카를 폐위시키고 황권을 잡는 것은 이야기를 만들기 무척이나 좋은 소제로 애용되고 있습니다.
상당수 작가 분들이 이 시대를 배경으로 소설을 쓰고 출판해서 널리 팔린 책도 많습니다. 역사지식이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라서 영락제를 쓰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더 이상 영락제를 배경으로 쓰는 것을 조금 자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먼저 중국인들의 역사적인 평과를 본다면 영락제는 결코 영웅이라고 묘사하는 것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겁니다. 드라마나 소설에서도 영락제를 모리배로 격화시켜서 나오는 것을 있어도 영웅으로 미화하는 것은 없다는 겁니다.
한국사를 본다면 세조가 조카를 폐위시키고 왕권을 획득하는 과정과 같은 과정을 겪은 것이죠. 태종 이방원은 상당히 다른 인물이라는 겁니다. 태종은 태조가 왕위에 있을 때 겁도 없이 왕자의 난을 일으킨 인물입니다.
그런데 영락제는 어떻습니까. 눈치만 살피다가 형제들이 거세당하고 황권이 약화되자 기다렸다는 듯 조카를 몰아낸 것이죠. 일정부분 살아남기 위해서 행동한 것도 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인은 그를 기회주의자 또는 모리배를 묘사한 게 역사적인 인식이라는 겁니다.
세조가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해서 공신들에게 괄시를 당하듯 영락제도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해서 내부를 수습하기 위해서 외부로의 침공을 주도한 인물이죠. 여전히 세력이 강성한 원나라 세력을 공격한다고 국력을 낭비하고 남만을 함성을 건조하고 정벌을 추진하면서 또한 엄청난 국력을 낭비하게 됩니다.
그의 사후에 명의 국력이 급속도로 쇠락한 것도 모두 그가 정통성이 없다는 것에 기인합니다. 모두 원정자체도 다 실패로 끝난 것이죠. 그 후속조치로 장성을 다시 쌓고 남만원정의 실패로 쇄국정책을 고수하면서 명나라로 운항하는 화물선을 운항을 모두 막아버리면서 명나라는 점점 더 고립되었습니다.
역사적인 평과는 냉정해야 합니다. 명나라의 영락제는 효웅을 될 수 있어도 영웅이라고 불릴 수는 없습니다. 솔직히 중화사상의 표본과도 같은 인물이 아닙니까. 중국사를 살펴본다면 중화사상이 대두된 적이 한번도 없다는 겁니다.
중화사상이라는 게 본토를 잃어버리고 대만으로 망명정부를 구성하면서 자기만족을 하기 위해서 만든 허상이라는 겁니다. 그 허상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뿌리 깊은 반공주의자인 김용이라는 작가가 쓴 소설이 중화사상을 미화하고 있습니다.
그의 소설 영웅문(번역 소설 명) 가장 위대한 정벌자라고 할 수 있는 칭기즈칸을 영웅이라고 칭할 수 인물로 격화시키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게 곽정이라는 주인공이 인물이 칭기즈칸 구하는 대목이나 부마로 삼으려고 하는데 황용이라는 여인과 결혼을 하는 대목에서 노골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중국사를 본다면 중국인인(?) 건설한 왕조는 송나라와 명나라가 전부입니다. 그런 역사는 단절되었다고 해야 할까요. 한국 독자로서 한국 작가분이 쓴 중화사상을 강조하는 소설을 읽는 것은 사실 고역입니다. 역사적인 인식을 제대로 한 후에 쓴 글이라면 불만을 토로할 수도 없겠지요.
역사란 현실의 우리가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위해서 만든 허상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 시대에 살지 않았는데 어떻게 정확하게 알 수 있을까요. 대부분 미화하고 시대상에 맞게 편집한 게 역사서입니다. 동북공정화를 보면서 멀쩡하게 역사를 빼앗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친일사관이 지배하는 너희 조상을 멍청했다라고 강조하는 역사서를 배울 때는 우울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무협을 읽고 좋아하는 독자라서 무협소설을 쓰려고 하다가 너무 얽매이는 게 많아서 쓰지도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신 무협을 쓰는 분에게 더욱더 찬사를 보냅니다.
시대적 배경이 필요해서 쓴 글이라면 역사적인 인물을 미화하실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허부대공처럼 기존의 역사에 억매이지 않는 신 무협을 쓰는 작가 분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고 창작하는 것은 그만큼 어렵기 때문입니다.
댓글은 환영합니다. 사람은 저마다의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와 다른 의견을 가진 분도 많을 겁니다. 저의 주장이 무조건 옳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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