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Stairway To Heaven을 들으며 담배 한대를 물었다. 컴퓨터를 켜자마자 버릇처럼 인터넷을 띄우고, 즐겨찾기 고무판을 클릭 한다. 빈속이라 쓰디쓴 연기를 뿜으며 연재한담에 올라온 글들을 본다. 눈에 들어오는 글이 있다. 손가락이 근질거린다. 그래서 적는다.
언젠가 어느 분께서 조사를 하신 적이 있다고 했다. 고무판에는 1040여개의 소설이 있고, 그 모든 글들이 독자 분들에게 사랑을 받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즉, 인기 있는 글보다는 인기 없는 글이 많다는 거다. 그리고 인기 있는 글을 적는 것보단 인기 없는 글을 적는 것이 수십 배는 힘이 든다.
그것은 글쓴이에게 당근이나 채찍이 무관심보다는 글을 더욱 열정적으로 적을 수 있는 계기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이 완성되기까지 독자라는 요소를 빼놓을 수 없는 건지도 모른다. 독자라는 요소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서문은 줄이고, 본론으로 들어가서 작가 분들에게 혹 자신의 글이 인기가 없다고 해서, 글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힘든 현실은 더욱 더 빛나는 창작의 거름이 되지만, 힘든 생각의 끝엔 절망의 구렁텅이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랬다. 고무판에 연재를 시작한지 1개월하고도 보름이 지나서야 조금씩 독자 분들이 알아주기 시작했다. 처음 보름간 20화를 연재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선작수가 겨우 87이었다. 사실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아스크를 연재할 당시 게시판에는 한 작품에 대한 얘기밖에 없었다.
우화등선.
그랬다. 나는 고무판을 휩쓴 폭풍 속에 가녀린 나비와도 같았다. 도대체 얼마나 재미있는 글이기에, 사람들이 이렇게 열광하는 것일까? 그래서 나도 봤다. 재미있었다. 멋있었다. 솔직한 심정을 얘기하면 4년동안 글을 적었지만, 내 글이 초라하게도 느껴졌다. 그러한 생각 때문에 더 힘들었다. 이쯤에서 그만둘까하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가장 필체 면에서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정검록도 그렇고, 고무판에는 좋은 글들이 너무나 많았다. 나 하나 글을 적지 않는다고 해서 크게 아쉬워할 사람은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더욱 더 나의 숨통을 조이는 것 같았다. 그때 모니터 앞에 붙여두었던 한자가 눈에 들어왔다.
盡人事待天命.
내 글에서 나는 세상에 절대정의는 없다는 걸 말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말 하나만은 믿는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했다면 나머지는 하늘의 뜻에 맡기면 된다. 쉽게 풀이하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다.
그 말을 믿고, 글을 연재한지 거의 3주 만에 처음으로 홍보 글을 썼다. 현대는 자기PR의 시대다. 1040여개의 글 중에 조회수가 낮은 글을 직접 사냥하시는 분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물론 그러는 중에도 꾸준히 연재를 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갔다.
판타지가 약세인 고무판, 빛이라고는 털끝만큼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는데, 지금 나의 글은 선작수 2039에 선작수베스트 41위를 하고 있다. 무협을 뺀다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고 있다. 비록 순수판타지라서, 요즘 트랜드에는 맞지 않다는 이유로 출판제의 한번 들어오지 않았지만, 나는 나의 글이 성공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 증거로 내 글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하늘은 끝내 노력에 보답을 주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지금 적고 있는 글은, 멋지게 완결을 지어서 독자분들에게 좋은 인사를 한다는 생각으로 글을 적고, 다음 글을 더욱 더 재미있게 적으면 그만인 것이다. 인생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 기회의 횟수는 자신의 생각에 따라서 줄고, 느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하고 싶었다. 지금 고무판에 글을 적는 수많은 작가 분들 중, 혹 자신의 글이 인기가 없어서 힘이 든다고 해서 글을 버릴 생각은 추호도 안했으면 좋겠다.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어야 하는 거다. 그게 남자다. 그래도 힘들 땐 盡人事待天命, 이 말을 곱씹으며, 오기로 세상과 부딪쳐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창작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빈곤이라고 한다. 혹은 시련이라고도 한다. 나중에 진정 좋은 글을 적기 위해선, 지옥의 똥 맛까지 봐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지도 모른다. 이것으로 이른 새벽의 단상을 마친다.
노래 한곡을 올린다. Stairway To Heaven, 71년도에 발매된 레드제플린의 4번째 앨범에 수록된 이곡은 록발라드의 결정판이라고 불리고 있다. 발매된 지 32년 만에 또 다시 미국전토를 달굴 정도로 시대를 초월한 명곡이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솔로 애드립을 빼놓고는 어려운 부분도 없어서 혹시 기타를 배우시는 분이 계시면 추천해주고 싶은 곡이다.
추신. 윗글은 편한 느낌으로 와닿기 위해 존칭을 생략했습니다. 양해바랍니다. 혹여 노래가 안나오시면 댓글로 지적 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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