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잘 읽히는 소설을 발견했습니다.
제목: 용의 혈흔
작가: 에크낫
장르: 판타지.
연재 분량: 23화. 작가님이 성실하게 매일 연재하시네요.
막상 추천글을 쓰려고 보니 어렵군요. 줄거리를 대강 설명드리면 좋겠지만 워낙 스케일이 크고 플롯이 복잡한 글이라서 어떻게 요약해서 말해야 할지 감이 안 옵니다. 무슨 내용인지 아직 파악이 안 되는 상태에서 추천을 하는 게 좀 겁나네요.
일단 프롤로그에서 복수의 칼날을 갈며 주인공 포스를 뿜던 소년이 현재까지 행방불명인 상태고요. 언제 나타날지 기미조차 안 보입니다. -_-; 그리고 워낙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각각의 이야기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조금 산만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습니다. 태풍이 한 바탕 휘몰아치려는데, 그 거대한 소용돌이 안에서 각자의 인간 군상들이 하나씩 역할을 맡아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는 느낌이랄까요. 작가님이 엄청난 걸 시도하시는 듯합니다. 지금은 이야기들이 파편화되어 여기 저기서 따로 놀고 있는 듯하지만, 나중에 이 퍼즐들이 모여 완성되면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 참 기대되는 작품입니다. 후딱후딱 진도 안 나가면 못 견디시는 분들의 취향에는 맞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저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제 취향을 만족시키는 글이라고 말씀드립니다.
1. 준수한 문장력. 제가 문장을 좀 까다롭게 보는 편이라서 조금이라도 문장이 허접하면 글을 못 봅니다. 하지만 “용의 혈흔”은 (제 기준으로는) 문장이 안정되어 있고, 복잡한 플롯을 이끌어나가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메인 캐릭터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장면 변화가 자주 일어나면 짜증나기 마련인데, 저는 거의 매 화마다 등장하는 새로운 캐릭터의 이야기도 흥미로워서 술술 읽히더군요.
2. 진부하지 않은 이야기. 요즘 판타지나 퓨전 소설에서 많이 쓰이는 클리셰를 멀리한 것 같습니다. 흔히 나오는 마법이나 오크, 트롤 같은 몬스터 같은 게 없습니다. 괴물은 나옵니다만 정형화된 그런 몬스터의 개념이 아닙니다. 정체불명입니다. 그리고 연금술이라는 게 등장하는데, 이게 우리가 흔히 보는 마법처럼 신비한 힘이면서도 상투적이지 않습니다. 조금 더 가다 보면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가님이 나름대로 독자적인 세계관을 구축하려고 노력하신 듯합니다. 막 특출나게 이상한 세계는 아닌데, 그래도 남들이 이제껏 수백 번 우려먹었던 그런 플롯이나 설정을 똑같이 답사하는 모양은 아닙니다.
3. 다양한 캐릭터. 어떤 분들은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서 질리실 수도 있겠지만, 정말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여주는 게 좋더군요. 그리고 그 캐릭터들이 대부분 일정한 비중이 있고, 나름 인간 같습니다. 비록 등장한지 스무 줄 안에 먼지가 되어 스러지는 엑스트라일지라도 그에 대한 배려가 느껴집니다.
(이건 여담이지만 1차원적으로 설정된 조연들을 보면 보통 ‘주인공은 어쨌든 무조건 버러지 -> 고로 난 저 주인공이 싫다, 짜증난다, 질투난다. -> 우왕 근데 내가 버러지한테 역관광 당하네’. 이런 코스를 밟습니다. 이런 골 빈 1차원 캐틱터들을 하도 많이 보다 보니 ‘용의 혈흔’의 캐릭터들은 아직 많이 보여준 건 없지만 뭔가 색다르게 느껴지네요. )
추천 글이라면 적어도 작가에게 민폐는 안 끼치도록 글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해야 하는데, 잘 됐을라나 모르겠네요. 충분히 재미있고, 더 많은 조회수와 관심을 받기에 합당한 글이라고 생각해서 못 쓰는 추천이나마 끄적여 봤습니다.
포탈은 여기입니다. http://novel.munpia.com/7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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