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친구에게 추천을 받아서 멸이세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친구가 이 작품은 반드시 읽어봐야 한다고, 시스템에 대한 저항을 이렇게까지 판타지로 풀 수 있을 줄은 몰랐다고 그것도 닳고닳아 단물 다 빠진 탑을 올라가는 컨셉으로 주제의식을 스토리로 구현했다고 제가 볼 때까지 추천을 하더군요.
참고로 전 몇 장 읽어보고는 영 끌리지 않아 그 친구가 세 번째 추천할 때까지는 읽지 않았습니다. 그 인간 참 집요했죠.. 읽을 때까지 이야기를 하다니...
그 친구는 눈물이 없는 인간인데 이 작품을 읽고 어느 순간 눈물이 나왔답니다. 이 작품이 그 친구의 뭘 그렇게 건드렸나 몰라요. 사회에서 깎여나가는 것에 대한 슬픔인가.
그래서 읽었죠. 그리고 친구와 함께 감탄했습니다.
작가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이 작가는 상당히 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제의식? 분노?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감정들이 작품에서 툭툭 튀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들수록 꼰대가 되어가고 여기저기 깎여나가니, 아직까지 정제되지 않은 분노가 뿜어져나오는 이 작품의 작가는 20대 정도 됐음에 틀림없다.
삐끗하면 중2병 감성인데 이 작품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단순히 중2병으로 치부할 수 있는가. 더 나아가 과연 우리의 중2병을 흑역사로 덮어놓고 잊어버리는 게 옳은 일인가.
뭐 실제로 작가님이 무슨 생각으로 소설을 썼을지는 알 수가 없죠.
저는 이 작품에서 보이는 게 자신과 세상에 대한 분노와 (아직 달성하지 못한) 화해라고 생각했지만 알고보면 돈을 벌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만을 가지고 잘 팔리는 소설을 쓰고자 했을 수도 있겠고요.
그 친구는 이 작가님이 프로라고 주장했고, 저는 작가님이 그야말로 아마추어리즘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친구는 결말부분에서 조금 힘들어했었고 저는 이 작품의 결말이 그렇게 구성되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꼭 그렇게 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었겠지만 결말을 그렇게까지 밀고나가지 않는다면 적당한 타협일 뿐이었다고요.
그 친구는 싱숑의 다음 작품이 더 기대된다고 주장했었고, 저는 사실 다음 작품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전부 쏟아낸 것처럼 보였거든요. 여기서 더 나아간 주제의식을 가지긴 쉽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는 더 정제되고 세련되어지기만 할 뿐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저 그냥저냥 세련되게 잘 쓴 소설 하나만을 더 가지게 될 뿐일 거라고요. 제 판단에 이 작품은 아마추어리즘이 아니면 쓸 수 없는 작품이었으니까요.
재밌는 건 처음 다른 작품이 나왔을 때..스타작가 되는 법이었던가요? 친구는 그 작품을 손도 대지 않았고, 저는 나오는 작품마다 팔로우업을 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전독시를 처음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죠. 그 작품에서 저는 (혼자) 용서와 화해를 봤습니다.
이번에 전독시 4부를 읽고 갑자기 멸이세가 생각나서 추천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 처음에는 시스템을 파.괘.하기 위해 탑을 올라가는 컨셉으로 시작하더니 중간 이후부터 급속도로 난해해집니다. 뭐 판타지 읽으면서 철학 공부 할 것 아니니, 좀 당황스럽게 느껴지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간중간에 주의 환기용 웃음 소재들도 적절히 배치되어 있어서 숨돌릴 만 하고요, 저는 이 작품 개인적으로 상당히 재밌게 봤습니다. 공감가는 이야기들이었고요. 그리고 다 읽고 난 후 작가님께 술이라도 한 잔 사드리고 싶은 그런 소설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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