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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절판 번역 소설에 대한 회고

작성자
Lv.22 디페랑스
작성
08.12.10 20:50
조회
2,421

이자성(李自成:1606-1645)은 명말 역졸 출신으로 어지러운 틈바구니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황제까지 되었던 인물이다. 중국의 역대 황제 중 평민 이하 출신으로 황제가 된 인물은 손꼽을 정도인데, (사실 역대 왕조의 초대 황제밖에는 이 후보에 오를 수 없다. 2대 이후가 되면 그 출신은 이미 ‘황족’이 되니까.) 한고조 유방과 명태조 주원장 정도다.

이자성이 이들과 다른 점은 모진 고난과 투쟁 끝에 명 왕조를 멸망시키고 황제가 되었지만 고작 1년 만에 몰락했다는 사실이다. 이자성의 몰락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그의 성급함도 한몫했으리라 여겨진다. 명말 수많은 군웅들이 할거하는 최종 국면에서 홀로 우뚝 섰는데 그에게는 아직도 큰 적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명의 유장(遺將) 오삼계와 시퍼렇게 일어나는 청나라의 강병(强兵)들에게 황제가 되어 방약무인했던 이자성은 그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마흔이 채 안 되어 이 정도의 업을 이루었다면 그다지 나쁘지 않은, 아니 꽤 훌륭한 사내로서의 일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이름이 뜻하는 바, 스스로[自] 이루었으니[成] 부끄러울 일도 없으리라. 하지만 승자가 된 청은 그를 역적이자 유적의 우두머리로 취급했고 그렇게 역사의 뒷면으로 사라졌다.

이 이자성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 있(었)다, 라고 묘한 표현을 하는 것은 그것이 절판되었는데 국내 번역본으로는 두 권밖에 나오지 않았으며 시간도 매우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역사소설이다.

요설은, <이자성>1, 2, 동광출판사, 1990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보았으니 나는 <이자성>을 1990년에 보았다는 얘기다. 18년 이상이나 지났음에도 소설이 그리고 있는 세계를 산하(山河)처럼 그리고 있는데 그것은 이 소설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역졸 출신의 미천한 주인공이 도적단에 들어가 스스로의 그릇을 키우고 자신의 사람들을 만들어 적을 하나하나 물리쳐 나가는 과정이 대하처럼 유장하게 펼쳐진다. 소설 구성의 완벽함이 감동을 줄 수 있다면 바로 이 작품이 그러할 것이다. 그토록 숨막히게 꽉 짜인 구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달리 비교를 하자면 삼국지나 장길산은 구성상 좀 널널하지 않은가. 홍명희의 임꺽정도 그렇고.)

사실 내용 자체는 포털의 백과사전 항목에 나오는 ‘이자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어째서 이 작품이 달랑 두 권 번역되고 종적을 감추고 말았을까.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전체가 몇 권인지, 완결이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것이 다시 번역되어 나왔을 경우 매우 반가워하리라는 것이다.

또한 작가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그런데 최근 김용에 대한 어떤 글에서 ‘김용이 요설은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라고 역설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대륙의 비평계에 대한 논평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말을 뒤집으면 요설은에 비해 김용은 좀 처지는, 비 정통으로 평가받고 있었다는 것이리라. (김용이 요설은과 직접 비교될 수 있는 까닭은 아마도 역사소설이라는 접점 때문일 것이다.)

사실 대륙의 평가가 어떻든, 대만이나 홍콩에서는 어떻게 여기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여러 사람이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작품이 많이 소개되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전체 중에서 일부인 달랑 1, 2권만 읽고 ‘가장 뛰어나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이없는 짓인지 알 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읽은 작품의 어떤 것을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고 그것이 크게 잘못된 일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좋은 작품이 묻혀있는 예가 한둘이 아니지만, 지금 이 글을 읽고 <이자성>을 찾아볼 독자도 별로 없겠지만, 찾는다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소설도 아니지만, 작은 돌 하나 놓는 것이 아니함보다 낫다는 마음으로, 짧게나마 글을 써 놓는다.


Comment ' 6

  • 작성자
    Lv.54 김태현
    작성일
    08.12.10 22:19
    No. 1

    녹정기에서 상당히 마음에 들었던 이자성이군요. ㅎㅎ
    천하를 손에 넣은 것보다 미녀와 함께 한 것을 더 중시했던 호탕한 형님! ㅎㅎ(녹정기 내에서..)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서드
    작성일
    08.12.11 00:47
    No. 2

    조조도 멋진 영웅... 이자성은 어땟을까? 궁금하네요... 절판 번역들에 대한 출판사에 대한 욕을 한바가지 퍼붓고 싶었는데 또 떠오르네요.
    이수민씨의 촉산객.. 여우에 대한 연민에서 과연 천년여우가 삼겁을 벗어나느냐하는 찰나에서 절판..
    황역씨의 복우번운은.... 흑흑~~~
    옹정검협도 ... 흑흑~~~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73 표향선자
    작성일
    08.12.11 01:26
    No. 3

    촉산객 출판사는 욕을 엄청 먹어야지요.
    처음 구입한때가 1980년도 후반에 나와서 (작은 글씨로 10권까지 나왔죠), 그 뒤 안나오다가 다시 나오는데 처음부터(출판사가 바뀌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번역된것까지 분량(잘은 모르겠습니다. 권수로는 모자랐던걸로 기억). 그뒤 또 번역된곳까지만 나오고. 멋모르고 1권부터 산 사람들은 출판사의 장삿속에 완결편도 못보고.....

    촉산객은 1권까지 읽는게 너무나 고역. 1,2권 읽는데 몇개월 걸린 작품이죠. 2권 중반부터 흥미진진.(1980년도 후반 첫번역작품, 권수가 다를 수 있음)
    기억나는건 자영과 청삭, 이영경의 독수리, 기타등등^^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4 천장지구
    작성일
    08.12.11 10:50
    No. 4

    요설은은 중국현대소설가 중 유명한 작가라서 중국현대문학사나 현대소설사관련 서적을 보시면 간략하게나마 언급이 되어 있을겁니다.
    이자성은 요설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지만 국내에는 전 8권 중 1부만 번역이 되었지요.68년의 1부가 쓰여졌으니 국내 소개도 한참 늦었지만 시대적 배경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아무튼 현대중국소설이 의외로 국내에 많이 번역 소개되었음에도 인지도가 낮은 까닭은 국내의 문학 저변이 그만큼 넓지 못하다는 생각도 들긴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이면귀
    작성일
    08.12.11 22:47
    No. 5

    이 분은 난데 없이 왜 이러실까...
    수능 성적표 나온지도 좀 된것 같은데;;;
    뭐 땜에 여기서 폭발 하신걸까?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文pia돌쇠
    작성일
    08.12.11 23:45
    No. 6

    lon's 님의 댓글은 억양이 지나치신 듯하네요...
    감상란에는 '-다'로 끝나는 글도 심심치 않게 있어 왔습니다.
    '처발랐다'거나, '기본부터 지켜라' 라는 lon's 님의 댓글은 그래서 조금 의아하군요.

    상단 [공지]의 감상란의 이동, 삭제 기준에 의거해 lon's 님의 댓글은 반려하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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