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성(李自成:1606-1645)은 명말 역졸 출신으로 어지러운 틈바구니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황제까지 되었던 인물이다. 중국의 역대 황제 중 평민 이하 출신으로 황제가 된 인물은 손꼽을 정도인데, (사실 역대 왕조의 초대 황제밖에는 이 후보에 오를 수 없다. 2대 이후가 되면 그 출신은 이미 ‘황족’이 되니까.) 한고조 유방과 명태조 주원장 정도다.
이자성이 이들과 다른 점은 모진 고난과 투쟁 끝에 명 왕조를 멸망시키고 황제가 되었지만 고작 1년 만에 몰락했다는 사실이다. 이자성의 몰락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그의 성급함도 한몫했으리라 여겨진다. 명말 수많은 군웅들이 할거하는 최종 국면에서 홀로 우뚝 섰는데 그에게는 아직도 큰 적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명의 유장(遺將) 오삼계와 시퍼렇게 일어나는 청나라의 강병(强兵)들에게 황제가 되어 방약무인했던 이자성은 그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마흔이 채 안 되어 이 정도의 업을 이루었다면 그다지 나쁘지 않은, 아니 꽤 훌륭한 사내로서의 일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이름이 뜻하는 바, 스스로[自] 이루었으니[成] 부끄러울 일도 없으리라. 하지만 승자가 된 청은 그를 역적이자 유적의 우두머리로 취급했고 그렇게 역사의 뒷면으로 사라졌다.
이 이자성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 있(었)다, 라고 묘한 표현을 하는 것은 그것이 절판되었는데 국내 번역본으로는 두 권밖에 나오지 않았으며 시간도 매우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역사소설이다.
요설은, <이자성>1, 2, 동광출판사, 1990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보았으니 나는 <이자성>을 1990년에 보았다는 얘기다. 18년 이상이나 지났음에도 소설이 그리고 있는 세계를 산하(山河)처럼 그리고 있는데 그것은 이 소설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역졸 출신의 미천한 주인공이 도적단에 들어가 스스로의 그릇을 키우고 자신의 사람들을 만들어 적을 하나하나 물리쳐 나가는 과정이 대하처럼 유장하게 펼쳐진다. 소설 구성의 완벽함이 감동을 줄 수 있다면 바로 이 작품이 그러할 것이다. 그토록 숨막히게 꽉 짜인 구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달리 비교를 하자면 삼국지나 장길산은 구성상 좀 널널하지 않은가. 홍명희의 임꺽정도 그렇고.)
사실 내용 자체는 포털의 백과사전 항목에 나오는 ‘이자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어째서 이 작품이 달랑 두 권 번역되고 종적을 감추고 말았을까.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전체가 몇 권인지, 완결이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것이 다시 번역되어 나왔을 경우 매우 반가워하리라는 것이다.
또한 작가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그런데 최근 김용에 대한 어떤 글에서 ‘김용이 요설은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라고 역설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대륙의 비평계에 대한 논평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말을 뒤집으면 요설은에 비해 김용은 좀 처지는, 비 정통으로 평가받고 있었다는 것이리라. (김용이 요설은과 직접 비교될 수 있는 까닭은 아마도 역사소설이라는 접점 때문일 것이다.)
사실 대륙의 평가가 어떻든, 대만이나 홍콩에서는 어떻게 여기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여러 사람이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작품이 많이 소개되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전체 중에서 일부인 달랑 1, 2권만 읽고 ‘가장 뛰어나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이없는 짓인지 알 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읽은 작품의 어떤 것을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고 그것이 크게 잘못된 일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좋은 작품이 묻혀있는 예가 한둘이 아니지만, 지금 이 글을 읽고 <이자성>을 찾아볼 독자도 별로 없겠지만, 찾는다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소설도 아니지만, 작은 돌 하나 놓는 것이 아니함보다 낫다는 마음으로, 짧게나마 글을 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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