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사자비
작품명 : 흑도
출판사 : 로크미디어
‘흑도’는 작가 사자비님의 전작 ‘진천벽력수’에 이은 두번째 작품이고 현재 3권까지 나와있습니다.
무협과 현실을 잘 버물린 수작이라 감히 생각하며 특징적인 몇가지를 얘기할까 합니다.
1. 현실적인 무협
작가는 무협독자가 기대하는 환상속의 무협을 깨부수고 현실적인 무협을 그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협속에서 흔히 보거나 혹은 기대하는 협객은 실제론 그저 상상일 뿐 무공자체의 비현실성 뿐만 아니라 행태로 보아도 중국 어느 시대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장풍이나 검강등의 무공에 대한 것 뿐 아니라 대협이니 뭐니 하는 강호의 무사라는 사람들은 애당초 ‘깡패’ 그 이상일 수가 없는 것이죠. (김두한을 비롯해 조폭들이 자신들을 부를 때 제일 좋아하는 말이 바로 협객이었습니다.) 역사속의 협객은 유협 혹은 협사라는 이름으로 가끔 야사에 등장합니다. 완전한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지기 전인 전국시대에 제후나 지방 세력가들이 세력을 불리기위해 초빙한 식객 중 무술잘하는 자들이 그들입니다. 이들은 현대적인 의미로는 정치깡패이고 무협용어로 하면 사병입니다. 단지 무술을 가르치는자와 배우는 자가 사승의 관계로 묶여져 문파라는 형식을 띱니다만. 한, 수, 당을 거쳐 송대에까지 제법 이름을 날리는 자가 있었으나 그 어디에도 약자를 돕고 악인을 물리치는 무협소설 상의 대협의 이미지는 없습니다. 원대 이후로는 아예 무기소지 자체를 엄격히 금지했으므로 검객이니 도객이니 하는 말은 이미 만담에 등장하는 단어가 되어버립니다.
무술이란 상상속에서 부풀려져서 검기에 검강에 나중엔 심검이니 자연검이니 하는 무공 인플레이션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그 동안 항상 대협 = 정정당당 이란 이미지는 홍콩이나 대만에서 최초 현대적인 무협이 시작될 때부터 중국놈들의 순전한 뻥이라고 봅니다. 잠시 딴 얘기를 하자면 정작 질서가 어지러울 때 질서를 찾자는 구호가 난무하는 것처럼 중국쪽에서도 우리만큼이나 어지러운 근세의 정치역정 속에서 소위 대협 같은 사람이 드물다보니 허구속에서 그런 인물을 찾는거 아닌가도 생각해봅니다.
그와 다르게 중국 역사에는 비밀결사가 자주 등장하는데 반청복명을 원하는 천지회는 대표적인 케이스고 흑점이나 지역내 조폭들인 흑사회 같은 무리들이 있습니다. 소설 흑도는 협객이 아닌 흑사회 같은 조직과 그 괴수(주인공)을 그리고 있습니다. 즉 실제 역사속의 힘쓰는 자들에 가깝다는 말입니다.
저는 소설을 읽으며 아마 실제로도 이랬으리라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만큼 현실적이라는 얘기죠. 김용을 읽을 때 왜 위소보를 썼을까 생각해 본적이 있습니다. 위소보를 쓰고 김용은 절필했다고 하지요. 그 앞에 나온 소설들이 – 수십편의 소설들 중 영웅문 삼부작만 보더라도 – 워낙 비현실적인 무공과 인물들을 그려왔으니 이제는 실제적인 캐릭을 한번 그려보자하는 생각이 있었지 않았을까요.
2. 잔인함에 대하여
주인공의 잔인함은 이 소설의 또다른 특징이기도 한데, 잔인이라 하기보다 미개함이라 는 표현이 적당할 것입니다. 소설의 배경은 명대 중엽입니다. 한족이 중국전역에 흩어진 것이 몇번의 시대상황으로 나뉘는데 예를 들자면 전국시대와 진시황 때 등이고 큰 전쟁이 발발할 때 혹은 소빙하기가 닥쳐서 흉작으로 먹고 살기 어려울 때 등입니다. 여기에 관리들의 수탈이 더해진다면 유민으로 떠돌기 딱 좋은 환경이겠지요. 살만하면 왜 온 가족이 집떠나서 알지도 못하는 곳(오지)으로 떠돌아 다니겠습니까? 무협에 인육을 먹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오는데 바로 기근과 수탈이 심했던 이 명대중엽이란 시대적 배경이 그러한 때이고 지금도 오지라고 하는 운남 이 그 장소가 됩니다. 인육을 먹어야 할 정도의 기근이라면 잔인이니 살인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인 거부감이니 하는 말은 사치 이상 아무것도 아닙니다. 또한 주인공이 사는 마을 주변의 부족들은 얼굴에 이상한 칠을 하고 주술이 통하는 원시부족들이고 식인도 서슴지 않는 미개인들입니다. 여기에 잔인 혹은 흉폭함의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죠.
부언하자면 이 흑도라는 소설이 십여년 전에 나왔다면 소설 초반 친구를 구하러 간 구봉의 무자비한 살인에 역겨워하는 분들이 지금보다 훨씬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워낙 희안한 캐릭들이 많이 등장하다보니 이제는 돈밝히는 협객은 흔하게 보일 뿐 아니라 사람 수십명 몰살시키기를 밥먹고 트림하는 정도로 묘사되는 소설들을 어렵지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캐릭터의 잔인함과 다양함에 우리 독자들은 이미 면역이 많이 된 상태인 것입니다.
3. 늘이지 않습니다.
전작 진천벽력수는 5권 완결이었습니다. 책이 안나가서 마침 맞게 완결되었는지는 모르나 도무지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제 개인적인 느낌으로 7권 넘어서서 지루하지 않다고 느끼는 작품은 강호의 노대가들의 작품 몇편외에는 없었습니다. 이는 최소한 글쓰는 이의 기본이라고 봅니다. 무협은 재미를 목적으로 보고 거기에 감동이 있으면 더없이 좋은 것이죠. 늘어지면 재미없습니다. 흑도는 늘어지지 않아서 좋습니다.
4. 맺으며
주인공과 조직의 발전, 사부와의 갈등, 특이한 히로인 등 다른 추천사유도 있습니다만 이상의 특징적인 몇가지로 글을 맺으며 한편 사자비님은 이런 글을 왜 쓸까 궁금합니다. 아마 자기만족을 위해서 일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작가 본인이 꽃미남이나 화려한 무공묘사등을 싫어해서 인지 알 수 없으나 첫 작품 진천벽력수에서는 애꾸인 주인공이 나오더니 이번엔 잔인무도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가벼움이 대세인 요즘 이런 진중하고 무거운 소설이 잘 나갈리가 없다는 것은 작가이시니 더 잘 아실거라 보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소설 흑도가 많이 팔려서 중간에 그만두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강호제현의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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