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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스 학원 이야기 읽기

작성자
Lv.16 Zinn
작성
10.12.18 22:58
조회
2,190

작가명 : 카이첼

작품명 : 클라우스 학원 이야기

출판사 : 문피아 연재, 개인 출판

0. 변화

4년 전 처음 이 글을 읽었을 때의 풋풋함과 감동이 어느덧 이십대 중반에 다다른 이 시점에서도 변하지 않는다. 그 동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를 하고 대학을 다니고, 이제는 마침내 전역을 50여일 남긴 군인이 되어서도 내 근본적인 감성은 변하지 않았나보다. 그 때나 지금이나 풋내기인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세월의 흐름이 내게 가져다준 긍정적인 변화는 작품의 다층적인 의미층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작품에서 감동을 느낀 근본적인 축은 변하지 않았다. 계급이 지배하는 사회, 있음과 없음에 따라 인간성을 앗아가는 잔인한 손가락,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하늘을 준거삼아 스스로의 실존적 난관을 극복해나가는 데일. 허무의 심연과 붕괴하는 세상에 절망했지만 데일을 만남으로써 스스로와 마주할 수 있게 된 알렉. 남장미소녀 알토스, 세나 대마왕, 평범한 리리까지. 활자화된 텍스트 속에서 약동하는 이들이 빚어내는 이야기는 표피적인 부분만을 보아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 글은 그렇게만 읽히기엔 너무나도 아까운 글이다. 알렉과 데일, 알렉과 그의 대항자로서의 부르크하르트. 특히 후자의 대립을 충분히 염두에 두지 않고는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물론 카이첼님이 의도한 게 내가 이해한 카이첼님의 의도와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일지도 확실하지 않고, 더 나아가 내가 그 의도를 충분히, 그리고 온전하게 이해했다는 보장도 없지만 내 나름대로 해석을 해보는 것도 의미있는 것은 아닐까.

1. 들어가기 전에

모든 것이 세계로부터 시작한다. 포이어바흐는 인간의 불안을 달래기 위한 시도가 종교의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이성과 감성과 상상력을 가진 인간은 동물과는 달리 '어떤 현상이 왜 그러한지' '어떤 현상이 왜 옳고 그른지' 판단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유한한 인간존재의 능력으로는 광대한 세계의 편린이나 잡으면 다행이다. 콜럼버스가 세계를 일주하려고 했을 때 왜 당시의 사람들은 그를 미쳤다고 했을까? 그들이 지구가 구형이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수평선 너머의 세계는 미지의 세계, 즉 신과 악마의 세계였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는 왜 박해를 받아야했는가?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조물주에 의해 유일하게 창조된 이 세계가 중심이 아닌, 태양이라는 항성을 공전하는 자그마한 행성이라는 사실은 그래서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인간은 변화한다. 그가 처한 공간과 시간에 따라. 하지만 그 이상으로 세계는 더욱 불확실하다. 현대문명의 총화인 컴퓨터와 인공위성으로도 내일의 정확한 날씨를 예측하기는 힘들다. 여기서 문제는 세계의 변화가 인간에게 무지막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세계는 인간이 거주하는 생명의 거처인 만큼 세계의 변화는 인간의 생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원시인들은 왜 샤머니즘과 토템을 발전시켰는가? 중세인들은 왜 신에 의지했는가? 근대인과 현대인들은 왜 과학의 진보에 열을 올렸고 올리고 있는가? 그 이유는 세계를 이해하려는 인간의 부단한 노력이다. 이 세계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인간의 생존, 즉 종의 존속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고대의 다신교는 중세의 유일신교로 바뀌었다. 중세의 기독교는 보편적인 이성을 전제로 한 과학에 의해 전복되었다. 근대의 과학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과학 자체의, 혹은 이성 자체의 폭력성과 한계에 대해 상대주의자들의 수많은 비판에 직면했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도 '자연(세계)을 이해하는' 가장 권위 있는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클라우스 학원 이야기의 시대적인 배경은 중세에서 근대로의 전환기, 혹은 근대 초 새롭게 등장한 보편과학과 그것이 그리는 장밋빛 미래의 시대이다. 물론 근대의 시대배경에 탈근대적인 사상이 섞여있지만, 탈근대적인 사상들도 종국에는 근대를 맞이한 인간의 '존재론적 불안감'을 부각시키는 데 봉사했으니 사상이 시대에 맞지 않다고 무작정 말하는 것도 옳지는 않다.

2. 신이 사멸한 세계

종교가 세계를 이해하는 인간의 노력이라고 한다면 '신'이라는 존재는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종교는 믿음에 근거하지만 과학은 실증에 근거한다는 말이 있다. 요컨대 종교는 신에 대한 믿음으로 세계를 재단하는 사고의 경향성이다. 신은 절대적이며 보편적이며 초월적이며 완전하다. 신은 모든 의미를 담보하며 인간의 미래를 결정짓는다.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자 자식이기에 신에게 저항할 수 없으며 그들의 시조인 아담과 이브에 의해 태어나기도 전부터 신에 대한 부채를 지고 태어난다. 인간은 신에 의해 에덴에서 쫓겨난 존재이며 신의 심판, 즉 세계의 종말을 기다리는 존재이다. '신'은 이런 방식으로 인간의 존재론적, 인식론적 의문을 상당부분 해소시켜주었다.

세상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 신에 의해 7일 동안 창조되었다.

인간은 어떻게 태어났는가? - 신에 의해 천지창조의 마지막 날 진흙에 신의 숨이 불어넣어짐으로써 태어났다.

선악은 어떻게 구분지어지나? - 신의 금령에 의해, 신이 옳다고 한 것은 선이고 신이 그르다고 한 것은 악이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하나? - 신의 말씀에 따라 이 세계가 최후의 심판에 처해지지 않도록 신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한다. 사후세계는 신에 의해 담보되며, 선한 자는 천국으로 악한 자는 지옥에 간다.

신은 중세를 살아가는 자들에게 말 그대로 '전지전능한 존재'였기에 중세인들의 세계를 지배했으며 그들에게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과 가치체계, 윤리관, 만물의 의미를 주었다. 중세를 신의 휘장이 그리워진 시대라고 말하는 것도 과격하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기만이다. 중세의 종교는 '종교'로서 고대의 종교에 비해 정교해지고 진보했지만,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식으로서, 인간존재의 근원적인 질문에 대답하는 방편으로서는 말 그대로 '전근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신이 모든 것을 담보하는 세계에서는 어쩔 수 없이 모든 현상과 그것에 귀인하는 질문이 궁극적으로 신에게 귀결될 수밖에 없다. 흑사병이 돌아 마을 사람들이 전부 죽어가기 시작했다. 마을 수준을 넘어서 국가, 전세계단위로 인류가 위험에 처한다.

우리는 페스트가 매개체에 의해 옮겨지는 전염병임을 안다. 하지만 중세인들은 그것을 신의 형벌로 이해한다. 흑사병에서 낫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성당에 몰렸다. 그들을 고해함으로써 병에서 낫게 할 신부들 역시 흑사병에 걸려 죽는다. 신의 말씀을 설파하는 성직자는 중세인들에게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존재였다. 그런 그들이 농노들과 마찬가지로 '평등하게' 죽어가는 광경을 보면서 중세인들에게 의혹이 싹튼다. 성직자들이 부패해 그들도 신벌을 받았을 것이다. 중세인들의 사고는 더욱 나아간다. 마침내 그들은 신벌과 구원을 관장하는 '신'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회의에 이른다.

신에 대한 회의는 중세인의 마음속에 싹을 틔운 채 시간이 흐른다. 그리고 다른 여러 계기를 거쳐 '신은 죽었다.'라는 니체의 그 유명한 명언이 등장한다.

신이 죽었다는 말은 무엇인가? 그것은 신이 담보했던 모든 것이 종말했음을 의미한다. 신이 담보했던 인식론적인, 윤리적인, 존재론적인 절대성과 보편성이 사멸했음을 의미한다. 즉, 그 전까지 인류의 모든 삶을 지탱하던 세계가 무너져 내림을 의미한다.

물론 니체가 말하는 신은 단순히 기독교적인 신을 말하는 것은 아닐 터이다. 그것은 알렉이 말한 '사멸한 신'과도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알렉이 말한 신은 기독교의 유일신이라기보다는 '이성이라는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신'에 가깝다. 어쨌든 알렉은 신의 소멸을 '절대적인 기준/잣대'의 소멸과 동일시하고 있으므로, 어느 정도 시대적인 관점으로 작품을 바라본다면, 기독교의 신이 담보했던 절대성과 작중의 신이 상징하는 절대성의 연관성은 작품을 이해하는 데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3. 인간의 새로운 기준?

알렉의 말대로 신이 죽었다고 하자. 그러면 신이라는 공백을 대신해 채워줄 무언가가 필요할 것이다. 이제부터 인간은 신이 해결해주었던 수많은 질문들에 스스로 답변해야한다. 신이 없다는 사실은 인간이 그저 '세상에 싸질러진 존재'라는 사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없이 내던져진 존재인 인간은 스스로의 기원을 알지 못하고, 종의 기원에서 파생되는 선악의 준거도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한다.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는 것은 절대주의의 부정으로 이어진다. 신의 절대성과 이성의 절대성. 양자는 동시에 부정된다. 이 지점에서 작품은 탈근대적인 색채를 발한다.

이제부터는 기독교의 신 대신 '신=절대주의'라는 간단한 등식을 적용해보도록 하자. 알렉은 신의 종말을 말하며 세계가 무너져 내림을 탄식한다. 세계가 무너진 뒤 남는 것은 허무의 심연이다. 심연은 그 깊이를 측량할 수 없을 만큼 깊고 거대해 속을 들여다볼 수 없다. 명석판명한 세계는 사라지고 혼잡하고 불확실한 혼돈의 막이 열린다. 그래서 신이 담보했던 의미가 신의 사멸로 증발하고 난 뒤에는 의미의 불모, 즉 무의미의 문제가 대두되는 것이다.

절대주의가 치명적인 타격을 받고 움츠린 새에 상대주의가 엄청난 기세로 치솟아 오른다. 상대주의가 말하는 것은 별 것이 아니다. 알렉은 선한 것이기에 좋은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이기에 선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의 논설에 영향을 받은 부르크하르트는 더 나아가 자신에게 좋은 것, 자신의 욕망에 부합하는 '공리주의'를 택한다. 공리주의는 선악의 기준이 정해져있지 않다는 점에서, 선악을 담보하는 것이 쾌락의 상대적인 총량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신'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신이 죽은 이상 절대적인 정의는 없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정의를 세우는 몫은 개개인에게 돌아가게 된다. 자신의 심연을 마주하라는 알렉의 말을 오해한 부르크하르트가 나아간 지점이 그곳이다. 선악,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면 개인들의 정의만 난립할 뿐이라면, 누구도 그 가지각색의 정의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못한다. 부르크하르트의 공리주의는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을 쾌락이 증가한다는 단서 아래 긍정한다. 그렇기에 세상은 한없이 아름답고 추악하다. '중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선악에 대한 판단, 정의에 대한 판단은 절대적인 기준에 의해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좋은 것은 아름답고 자신에게 싫은 것은 추악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사상이나 이념의 문제는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는 그 사상과 이념이, 혹은 그것들을 주창하는 사람이 소유한 여러 층위의 힘의 문제가 된다. 인도해줄 보편적인 기준이 없다면 따르는 것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다. 누구에게나 정의가 있고 그것의 옳고 그름을 말할 수 없다면 '힘'이, 야만적인 방식이 모든 것의 우위를 결정하게 된다. 옳고 그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강한 것과 약한 것, 먹는 것과 먹히는 것이 존재할 따름이다.

4. 손가락과 비극

먹고 먹히는 치열한 세상에 대한 감상은 작품의 도입부에도 나타난다. 알렉의 현학적인 말은 화창한 봄날의 이면에 존재하는 잔혹한 생존경쟁을 함의한다. 그래. 경쟁이다. 힘과 힘이 맞붙는 경쟁. 그 힘은 물리적인 힘일 수도 있으며 경제적인 힘일 수도 있으며 정치적인 힘일 수도 있다.

여기서 계급의 문제가 부각된다. 중세 시절에는 신권과 왕권이 결합해 왕권이 신성함을 주장하려했고, 귀족도 비슷한 논리를 통해 그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존귀한 존재'임을 증명해왔다. 하지만 신의 휘광이 걷혀버린 세계에서는 무엇이 존귀함을, 하위 계급에 대한 상위 계급의 우월함을 증명하는가?

물질적인 기반이 그것이다. 인간은 물질 없이는 살 수 없다. 며칠을 굶을 수는 있지만 몇 달을 굶을 수는 없다. 죽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기적인 유전자는 스스로의 탈것(인간 개체)으로 하여금 종의 보전을 욕구로서 추구하게 한다. 그래야만 유전자가 세대를 거쳐가며 영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세시기에는 신이라는 존재가 있었기에 보다 '고상한' 방법으로 존재의 우열을 가를 수가 있었다. 신에게 선택받은 존재는 우월하고 그렇지 못한 존재는 열등하다는 식의 설명이 그것이다. 하지만 신의 죽음 이후에는 계급적인 우위, 즉 경제력이 신의 자리를 대신해서 인간의 존엄을 결정하게 된다. 힘이 강한 자의 정의가 힘이 약한 자의 정의를 포식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가진 자의 손가락이 향한 곳은 못가진 자. 못가진 자는 단지 그가 '못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물'이 되어버린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못가진 자 자체가 아니다. 손가락은 못가진 자에 대한 근본적이고 심원한 관심을 토대로 향해진 것이 아니다. 자신보다 그들이 열등하다는 우월감, 조소, 비아냥거림을 기반으로 향해진 손가락은 못가진 자의 '열등함'을 가리키는 것이지 다른 어떤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손가락이 나아간다. 강한 힘이 약자를 집어삼킨다. 생산 기반을 갖지 못한 약자는 어떤 저항도 할 수 없다. 그는 그대로 손가락을 가진 자들이 '해석'하는 대로 '해석되어질' 뿐이다. 그들의 자유와 존엄은 훼손된다. 아니, 자유와 존엄은 아예 없었던 것으로 치부된다. 그래서 데일은 스스로가 '장난감' 즉 '사물'이 되어버린 처참한 느낌을 받으며, 동시에 그런 계급구조에 자신이 저항할 수 없다는 사실을 처절하게 통감하며, '프티 부르주아'로 가려는 가느다란 가능성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 야만적인 힘이 데일을 데일 자신이 아니게 했다. 그랬기에 계급구조가 마치 '자연'과도 같이 강하게 자리매김한 세계에서, 데일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자연은 아름답지 못하고, 약한 자를 비웃는 있는 자들의 틈바구니에 불과했다.

5. 자유와 기만, 가면과 실존

그런 생존경쟁을 겪었던 데일에게 알렉은 모든 것을 가진 존재였다. 알렉은 볼드윈의 이름을 업고 있기에 태어나면서부터 '내일의 밥'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또한 그 자체가 세계에서 손가락으로 꼽을만한 천재였다. 그런 알렉은 신이 죽어버린 세계에 한탄하며 '체제의 톱니바퀴'를 내려다본다. 다 가진 그였기에 물질에서 벗어나 유전자가 강제하는 자기보전의 욕망에 저항할 수 있었다. 한 몸을 건사하기 위해, 단지 살아남기 위해 톱니바퀴가 되어 살아가는 인간 군중들은 스스로의 자유를 포기하고 욕망에 스스로를 구속시킨다. 이들에게는 자유가 없다. 물질이라는 질곡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스스로의 심연을 마주하지 못한다. 구속된 자에게 의미는 '강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알렉이 조소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데일은 그런 군중들과는 달랐다. 그의 미래는 지금 그가 처한 계급에서 벗어나려는 끊임없는 노력(공부) 없이는 보장되지 않는 것이었지만, 성장한 그는 밤하늘을 보고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세계는 그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아름다움'으로, 먼 훗날 다가서기 위한 희망으로 존재하였던 것이다.

물론 부르크하르트의 계략에 빠진 데일은 자신이 품고 있는 진심의 저열한 일부분을 드러낸다. 데일은 알렉이 다 가진 존재로서 그를 기만한다고 생각했다. 한 끼 식사에 행복해하며, 동시에 다음 끼니를 걱정하여 부단히 공부하는 자신에 대한 열등감은 증폭되어간다. 알렉은 막대한 부를 기반으로 생존을 걱정하지 않으며 '알렉' 자신으로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누구도 그에게 손가락질 할 수 없으며, 그렇기에 그의 자유와 존엄은 훼손되지 않는다. 그에게 그럴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자유와 실존은 데일에게 '기만'으로 다가왔다.

가면을 씀으로써 감추어진 것이 드러나고, 동시에 기존의 어떤 것이 감추어진다. 인간의 자아는 데카르트가 말하듯 명석판명한, 유일한 자아가 아니며, 끊임없이 각축하는 수많은 자아들의 연합에 불과했다. 실존함이란 자신의 의지를 세계에 투사하는 행위이다. 세계 속에 던져진 존재로서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를 정초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만약 단일한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단지 지배적인 자아와 덜 지배적인 자아들이 존재할 뿐이라면, 숭고하고 올곧은 유일한 의지는 존재할 수 없으며, 실존을 통한 오롯한 자유의 정초도 불가능해진다. 데일은 그리하여 스스로의 존재의 허망함을 느낀다.

6. 자유, 그 아름다운 세계

이 글을 세 번째로 읽으면서도 언제나 내게 숭고함으로 다가오는 구절이 있었으니, 아름다운 천공을 올려다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데일과 알토스의 모습이 그것이었다. 그 속에서 데일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긍정한다. 한 치의 미혹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그는 믿는다. 농노로서 그가 겪어야했던 수많은 시련들은 그에게 세상의 잔혹함을 알려주었다. 세상은 결코 정의롭지 않으며, 신이 죽어, 정의가 없기에, 약자는 계급제의 최하층에서 강자가 베푸는 변덕스러운 호의에 기대어 살아간다. 약자에게 삶은 냉혹함으로 다가오기에 부르주아 계급이 내세우는 자유란 그들에게 있어서 기만에 불과하며, 천운이 따르지 않는 한 그들은 예전처럼, 그들의 부모가 그리했듯이, 혹은 그들의 자녀가 앞으로 그리할 듯이, 자유를 통한 자기실현은커녕 스스로의 보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질곡에 처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데일에게 있어서 세상은 아름다울까? 그 이유는 그 아름다움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그에게 있어서 감정에 의해 쉬이 좌우되는 한낱 변덕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칸트의 정언명법적인, 어떤 조건에도 굴하지 않고, 인간의 이성에 의해 반드시 아름답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숭고함이다. 그것은 아름답기에 정의로우며, 정의롭기에 아름답다.

‘신이 죽었다.’는 니체의 비극적인 한 마디는, 근대를 휘둘렀던 절대적 이성에 대한 회의를 가장 극적으로 드러낸다. 위도와 경도가 조금만 바뀌어도 선이 악이 된다. 파스칼은 이런 상대주의적 불안감에 오히려 신에 더욱 귀의했다. 물컹물컹한 대지는 신의 사체로 이루어진 덕택에 풍요롭지만 그 토지를 갈구기 위해서는 인간이 바뀐 환경에 적응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하여 등장한 것이 위에서 언급했듯이 ‘상대주의’이다. 내 의견이 옳듯이 당신의 의견도 옳다. 우리는 타인의 사상이나 정의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다. 왜냐하면 레비스트로스가 말했듯이 그것들은 모두 독특한 구조의 산물이니까.

절대선이 없는 세계에서 약자는 더욱 취약해진다. 잃을 것이란 목숨과, 그것과 결부된 속박의 쇠사슬밖에 없기에 만국의 노동자는 단결해야한다는 마르크스의 선언은, 그것이 태어난 시기가 선악이 희미한 시대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계급의식을 강하게 내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칸트가 다시 등장한다. 상대주의적인 윤리는 공리주의처럼 쾌락의 상대적인 총량을 비교하거나, 공감을 강조하는 등, 가변적인 기준을 지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살인을 긍정할 수 있는가?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경제 전체의 효용 증대에 수반되는 사회적 약자의 빈곤의 가속화를 당연하게 여길 수 있는가? 지금 이 세상에 전혀 진보가 필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데일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언제나 그와 함께 있었다. 그것은 한결같이 데일에게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데일로 하여금 아름다움을 추구하도록, 데일에게 자유와 존엄을 불어넣어주었다.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은 감성이 아닌 이성을 자극하며, 인간 이성의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는 아름다움의 편재(遍在)함은 칸트 미학의 ‘숭고함’으로 이어진다. 자연은 그리하여 숭고한 것이 되며, 이 세계는 드디어 ‘의미’를 지니게 된다.

상대주의자들은 데일의 이상 또한 개별적인 것으로 치부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데일에게 있어서 자유란 무엇이었을까? 존엄이란 무엇이었을까? 그의 자유와 존엄이 과연 신이 죽은 그 시대에서, 범람하는 사상의 물결에서 어떤 의미를 지녔던 것인가?

나는 데일을 긍정한다. 물질적인 조건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데 기여해야하지, 인간을 가혹한 삶의 굴레에 내던지는데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은 한낱 유전자의 탈것으로 존재하기에는 너무나도 존엄한 존재이다. 인간은 자기보존의 질곡을 넘어서 스스로를 실존을 통해 실현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유가 필요하고, 자유를 위해서는 보편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 북극성을 통해서만 우리는 인류와 인류가 쌓아올린 문명의 위치를 가늠하고, 더 나은 곳으로 진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족. 한동안 말을 나누지 못해서 인사 삼아 힘을 넣어서 쓴다는 것이 리포트 길이가 되어버렸네요..-_-;; 여튼, 보이진 않아도 카이첼님 언제나 응원하고 있습니다. 건필하시길!!


Comment ' 13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0.12.18 23:48
    No. 1

    부왘 클라우스 해설집 ㅋ 망설임 없이 추천 누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0 백린(白麟)
    작성일
    10.12.19 00:20
    No. 2

    앗, 마셜옹이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6 Zinn
    작성일
    10.12.19 00:24
    No. 3

    노팅힐님// 감사합니다~ㅎ
    회옹// 헐.. 닉 바꾸고 뭐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0 백린(白麟)
    작성일
    10.12.19 00:33
    No. 4

    글 연재중이라서 말입니다.

    전역하시면 연락 좀...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0 백린(白麟)
    작성일
    10.12.19 00:34
    No. 5

    50일 뒤면 아마 책 나온 다음일테니 들고 가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6 Zinn
    작성일
    10.12.19 00:43
    No. 6

    옙.. 기억해두고 있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6 카르노데스
    작성일
    10.12.19 01:21
    No. 7

    이소설은 진짜 숨겨진 명작이죠~ 철학적인 이야기가 매우많이나와서 자칫하면 무지 지루해질수있는데 대화가 의외로 흥미진진하게 잘돌아가면서 각각의 철학(?)을 보고 느낄수가있었죠 한번두번 여러번 재탕해본소설~ 2부는나오긴할려나......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 이사님
    작성일
    10.12.19 10:31
    No. 8

    이런 감상글은 처음보네요
    정말 생각 많이하며 읽고갑니다
    아직 보지못한 책인데 꼭 한번 보고싶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4 수달2
    작성일
    10.12.19 16:08
    No. 9

    감상을 읽다가 어라 이거? 싶었는데 닉이 마셜. 반가운 이름입니다. 전역이 50일 남았다구요.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이 글만으로는 예전의 감상글들을 통해 엿볼 수 있었던 내용 이상의 것을 찾아보기 어렵군요. 치열한 반성을 결여한 상대주의가 일상적 삶의 상식적 영역을 지배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에서, 얼치기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 이상의 진정한 자유와 진보를 외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이죠?

    느닷없이 나타나서 답을 내놔 하기에는 지나치게 어려운 문제라는 것을 이해합니다. 문피아 감상공간에서 주고받기에 적당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마셜님과는 한 번쯤 이야기해보고 싶은 부분이네요. 해서 부탁드리건대, 댓글들을 보니 저 위에 백린님과 전역 후에 만나실 예정인 듯 하니 괜찮다면 저도 좀 낄 수 있겠습니까? 이건 백린님께도 부탁을 드려봅니다.

    이렇게 쓰고보니 자칫 필요이상으로 무거운 만남을 요청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겠는데 그렇지는 않고, 그냥 가벼운 교분이나 나눌 수 있는 정도를 바라고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0 백린(白麟)
    작성일
    10.12.20 23:53
    No. 10

    아... 일정이 있긴 한데 저희 둘만 모이는게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답을 드리기 어렵겠네요. 죄송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4 수달2
    작성일
    10.12.24 20:36
    No. 11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 투렌바크
    작성일
    10.12.25 19:52
    No. 12
  • 작성자
    Lv.1 ccccc
    작성일
    11.01.09 23:29
    No. 13

    보면서 내내 니체의 텍스트가 생각나게했던 글이며


    부르크하르트=알렉=데일 이 세명의 했던 말을 또하고 또하고 또하고 또하고...무한한 루프에 지루했던것도 사실..
    (희망찬도 마찬가지..)


    차라리 니체를 다룬 책을 보는것이 좋을듯..
    (니체, 실험적 사유와 극단의 사상 를 추천)


    그리고 이 소설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
    *계급입니까? 계급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였던 것입니까? 만국의 프롤레타리아는 잃을 것은 사슬뿐이고, 얻을 것은 전세계이기에 단결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부정되었고 영구혁명론과 노동가치설은 조롱의 대상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계급은 유효합니까?

    ps. 니체를 다룬 책을 볼때와 마찬가지로 클라우스을 보면서 기분이 매우 나빠졌음. 내가 능력없고 용기없고 자랑할만한게 하나도 없고 오직 분노만이 가득찬 쓰레기라는걸 계속 일깨워 주니까.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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