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이문열
작품명 : 시인
출판사 : 민음사
[현대판 ‘김삿갓 설화’]
방랑시인 김삿갓에 대한 설화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설화의 하나이다. 과거를 보는 장소에서 역적인 김익순의 죄를 신랄하게 비판하여 장원을 차지한 그가 의기양양하여 집으로 돌아와 듣게 된 사실, 김익순은 사실 그의 조부였다는 그 사실은 그를 충격으로 몰아넣었고 방랑의 길을 자청하여 떠나게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필자 이문열은 이러한 설화는 그가 어릴 적 겪었던 고난을 고려할 때 허구에 가깝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다양한 기록을 직간접적으로 인용하며 김삿갓의 삶을 재구성, 재창조하고 있다. 그리고 작가 이문열에 의해 현대의 언어가 섞여들어가 풀려나오는 이야기는 나로 하여금 직접 조선시대에 섞여들어가 그 사회를 고찰하는 듯한, 생생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다른 감상에 들어가기 전 한번 못박아두고 싶지만, 이 ‘시인’은 어느 면모로 보나 매우 높은 기품을 가진, 고퀄리티 소설이다.
[충忠과 효孝]
이 소설에서 가장 감상하면서 감탄하고, 읽을 수록 빠져드는 부분은 부분부분 등장하는 충효忠孝에 관한 논쟁이다. 현대 우리 사회와는 다른 생소한 이데올로기를 주인공 김병연의 입장에서 해설하는 작가의 박식함은 시대를 뛰어넘어 직접 조선 시대의 학문을 공부하는 듯한 생생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더군다나 조선 시대 인물의 직접적인 시각은 아니지만, 현대의 시각으로 조선 시대의 이념을 고찰하는 재미는 누가 상상하던 그 이상이다. 특히 조선을 지배한 두 이데올로기이기에 더욱 그러할지도 모른다.
하기야 그렇다고 해서 조선의 지배 체제가 그 두 이념의 충돌에 대해 온전히 함구하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반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조선 시대에는 일반의 통념뿐만 아니라 공식적으로도 어느 정도는 효孝에 우선순위를 준 것으로 보인다. /중략/ 어떤 이는 그와 같은 우선순위가 주자학의 윤리성에서 온 것이라 하고, 어떤 이는 지배 체제의 윤리성으로 치켜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한 인간의 내면에서 충효의 두 개념이 정면으로 충돌할 때, 그러한 우선순위는 의식의 내출혈內出血을 한층 속 깊고 치명적인 것으로 만들 수도 있다. -<시인>, p.68
내용이 더욱 길어 인용할 수 없지만, 책 속에서 김병연과 관서 선비 노진의 충효 논쟁은 더욱 설득력있고 간결하게 전개된다. 그 논쟁은 단순한 이념의 대결 뿐 아니라, 그들의 삶의 족적을 더듬는 과정이라 더욱 그러할지도 모른다.
비록 서양의 자연 철학 등에 비해서 조선을 비롯한 중국의 성리학, 양명학 등 동양철학이 느리게 발달하였으나, 일부 몰지각한 자들이 오해하듯 단순한 형이상학적 뜬구름 이야기(칸트가 순수 이성 비판에서 비판하였듯이)만은 아니라는 것임이 다시금 확인되는 순간이다. 한 소설의 이야기만으로 과대 적용을 한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으나, 동양 철학은 그 나름대로의 논리가 존재하였고, 그는 인간 본연의 문제에 관한 순수한 고민들이었기에, 그러한 난점은 해소될 수 있다.
그러나 잠시 짚고 넘어갔으면 하는 점은 이러한 충효 논리는 때때로 체제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다는 점이다. 2-3백년을 주기로 왕조가 교체되었던 중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그러한 경향은 더욱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매우 보수적이었던 당시 조선 사회에서, 김삿갓을 얽매었듯이, 대부분의 개인은 자존自尊을 갖지 못하고 충효의 논리 속에 얽매여 살았다.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체제’ 라는 단어가 가끔 등장하는데, 이는 단순한 국무기관만이 아닌, 그 사회의 국민들(국가의 이념이 주입된)와 그 이념 모두를 포괄하는 것이다. 새삼 현대사회의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사회 / 체제]
이 책에서 김병연을 김삿갓의 길로 이끄는 주된 요인은 그를 향해 가해지는 ‘체제의 집요한 복수’ 다. 그가 가진 신분상승의 의지는 번번히 높은 벽에 가로막혀 좌절된다. 그에 더하여진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은 결국 그를 길가로 내몬다. 이는 작가 이문열의 삶이 소급 적용된 이야기이기에(이문열은 부친의 좌익 활동으로 유년 시절 불이익을 입은 전력이 있으며 사법고시에 삼연패를한다.) 약간의 전기적 성격 마저 띠고 있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그런 만큼 진지하고, 생각거리를 많이 남긴다.
과연 조선사회는 그 정도로 폐쇄적이며, 체제의 힘이 구석구석 미치던 사회였는가? 그리도 정체되고 이념에 묶여, 자연 진보가 불가능한 사회였는가? 그리고 또한 현대 사회에서 저러한 ‘체제의 복수’ 는 가능할 것인가? 앞의 두 물음에 관해서는 현재 일부 사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기에 제쳐두어야 하지만, 마지막 물음은 고찰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현대사회가 그토록 폐쇄적이고 국가 주도적인가...라는 질문에는 No라는 대답이 쉽다. 현대사회의 기반 이념은 자유주의에 입각한 다원화, 개인주의이기에, 어떠한 한 이데올로기로 개인을 사회에서 ‘소외’ 시킨다는 것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국가의 ‘힘’에 관하여 생각한다면 그리 쉬이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현 사회의 정보화ㅡ 기술의 발전은 국가의 힘을 상상키 어려울 정도로 강력하게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관료제에 입각한 거대한 국무조직國務組織은 다양하고 복잡한 일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한다. 이는 단순히 국가에 국한된 일은 아니지만, 다양한 다른 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개인이 국가에 맞서는 일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혼자 힘으로, 사회의 각계각층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막아낼 수 있을까? 대답은 회의적이다.
이와 같은 사례는 최근까지 주변을 휩쓸었던 신종 플루, 촛불시위 등의 일에서 잘 드러난다. 신종 플루를 막기 위해 우리 나라에서는 일련의 ‘업무’ 가 하달되었다. 손 소독기, 보건소의 정기 진료 등이 우리 주변까지 깔리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촛불시위 때도 그 시위의 정치적 논쟁 여부를 떠나서, 시위 참가자들을 향해 고소장이 날아갈 때, 이러한 일련의 작업은 빠르게 수행되었다.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사회의 ‘최고위층’이 개개인, 개개인의 관계자를 노린다면, 그 개인은 과연 저항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의 김병연이 일탈하여 방랑을 택하듯이, 과연 우리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 답 또한 회의적이라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맺음]
본의 아니게 감상이 어두운 쪽으로 흘렀으나, 일단 소설 전반적으로 위의 음울한 내용은 많이 드러나지 않는다. 게다가 소설의 어조들 또한 전체적으로 기품있기 때문에, 아무 때나 읽어도 쉽게 실망감을 안겨주지 않는다. 고급스러운 소설을 읽고 싶을 때 읽는다면, 딱 좋을 책이다.
*책은 민음사에서 나온 책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표지와 책 전체가 고급스러워, 소장하기에 알맞고, 읽을 때도 기분좋게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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