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운에게 있어 세상은 소돔과 고모라이다.
그가 본 세상에는 단 열 사람의 의인도 없는 것이다.
세상을 이루는 그 수많은 악인들은 다른 이름은 바로 이기주의자다.
한상운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조리 이기주의자들이다.
강하면 강한대로, 약하면 약한대로 그들을 움직이는 이유는 말초적인 자기 이익뿐이다.
공익이라는 것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다.
그것이 단지 대의와 명분이 판치는 기존 무협 소설에 대한 반발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그저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결말 부분이 너무 찝찝하지 않은가 말이다.
한상운이 보기에는 세상은 정글과 다르지 않다.
힘있는 놈은 무엇이든 제 마음대로 "해도 되고" 힘없으면 그걸 감수해야 한다.
힘의 방식으로 줄줄이 이어진 약육강식의 고리는 당연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그러고는 끝이다.
독비객은 잘 쓴 무협 소설이라는 좌백의 말에 동감한다.
재미도 있다. 소설의 경쾌한 문장은 비뢰도류의 소설의 원조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그저 재미있고 경쾌하기만 할 뿐 아니라, 꽉차 있는 세상에 대한 조소도 있다.
하지만 남에게 권하기는 싫은 소설이다.
어떻게 보면 한상운이 세상을 제대로 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세계 마저 정글이고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면 그건 문제가 아닐까?
지금의 정글을 만든 세대에 대한 무조건적인 호의와 개혁을 내세우는 자들에 대한 비웃음, 천하제일인으로 올라선 염천서의 고난(?)을 통해 내가 받은 인상은 누구나 욕하는 놈들은 힘이 없어서일 뿐이라는 것이다.
욕하던 놈들도 힘이 생기면 똑같이 변한다는 것이다.
결국 남는 건 아무 것도 없고 그저 허무할 뿐이다.
세상은 개정의 정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지금의 모양이라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소설에서처럼 극단적인 이기주의자가 아닌 공익을 위한 희생에서 자기 만족을 느끼는 이기주의자들로 인한다고 나는 믿는다.
세상도 느리지만 공존이 보장되는 열린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 내 시각이다.
한상운의 소설에는 힘 있는자의 횡포에 희생되는 선량한 인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슴이 서늘하다.
그것이 독자들에게 너도 세상을 정글로 만든 공범자의 하나라고 추궁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맞다 인정하자.
그렇지만 포기하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가 아닌가?
부디 한상운의 다음글은 패배주의와 허무주의에서 벗어나 희망이 볼 수 있는 글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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