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토끼코에
작품명 : Remember
출판사 : 글쎄요.
인간은 삶이 끝남과 동시에 하나의 방에 갇히게 된다. 방의 크기는 대략 보통 가정집의 화장실의 크기. 누가 자신을 끌고 왔는지도 모른 채 갇히게 된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게다가 음식은 물론 마실 물조차 공급받지 못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지 못한다. 이미 죽었으므로. 삶을 그토록 염원하던 인간은 곧 죽음을 원하게 된다. 그때 절망하고 있는 인간에게 여러 장의 종이가 주어진다.
이 종이를 흔적도 보이지 않게 찢어라. 그러면 그대가 원하는 평안을 얻게 되리라.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인간은 드디어 이곳을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종이를 찢는다. 그 순간 그는 머릿속이 공허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화들짝 놀라 종이를 내려놓고 종이에 적힌 뭔가를 읽어 내려간다.
이윽고 종이에 자신의 기억이 빠짐없이 적혀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또한 이것들을 찢는 순간 남은 기억조차 사라져 간다는 것도 알았다. 그는 고심한다. 고통을 참으며 나의 기억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억을 버릴 것인가.
갈등한다. 인간은 자신의 기억을 더듬는다. 행복했던 기억. 불행했던 기억. 고통스러웠던 기억. 기뻤던 기억. 그 기억들을 되새기자 인간의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그래. 굴복하지 않겠다. 이때는 힘들었지만 하나하나가 소중한 것들 아닌가.
인간은 다짐한다. 절대로 이것을 훼손하지 않겠다고.
이제는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다. 인간이 원하는 공기는 5분 간격으로 들어온다. 공기가 유지되는 시간은 10분. 사이사이 5분의 공백에 인간은 지옥의 고통을 맛본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하루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
하지만 이런 속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선뜻 종이를 찢지 못한다.
서서히 공기가 유지되는 시간이 짧아진다.
결국 그것에 굴복해 인간은 덜덜 떨리는 손을 부여잡으며 종이를 찢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세로로 길게 찢어 내린다. 그러나 곧 숨이 턱 막혀오자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종이를 찢어발겼다. 몸을 유린당한 가련한 종이의 조각들은 허공으로 날아올라 이리저리 흔들리며 느리게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인간은 종이 조각 들을 보며 마치 깃털들이 자신을 감싸고 있다고 잠시 착각한다. 한손을 내밀어 그 조각을 잡는다. 그리고 멍하니 바라본다. 빽빽했던 검은 글씨는 온데간데없이 그저 새하얗다.
그것을 인간은 말없이 주저앉으며 움켜쥔다. 하지만 그 힘도 이내 빠져버린다. 머리가 멍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기억하고 싶은 것은 있지만 그 기억이 무엇이었는지 조차 잊어버린다. 나중에는 자신이 누구인지. 결국은 자신이 죽은 것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점차 인간은 퇴행한다. 말하는 법을 읽는다. 글 또한 잊는다. 생각하는 방법조차 잊는다. 서는 방법도 잊어버려 이내 바닥에 엎어진다.
그런 인간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인간은 이미 자신의 눈에 흐르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다만 시야를 가리는 무언가가 귀찮을 뿐이다. 인간의 입은 탄식을 내뱉는다. 인간은 자신이 뱉은 탄식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 바닥에 흩어진 종이 조각 들을 적신다. 영원히 빛과 어둠의 사이에서 일관할 것 만 같았던 작은 방 안에 어둠이 서리기 시작한다. 기억이 삭제되어 쓸모없어진 인간은 공포라는 원초적 감정은 잊지 않았는지 어둠속에서 고함을 지른다. 그 고함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닌 금수의 그것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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