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김형준
작품명 : 월광의 알바트로스
출판사 : 뿔미디어
일곱번째 기사는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봤고 높이 평가하는 작품입니다. 작가의 열정이 가득 묻어나오는 글이죠.
하지만 월광의 알바트로스라는 작품을 보면 일곱법째 기사와 굳이 연결시켜야 했나 하는 의문이 듭니다. 분명 월광의 알바트로스는 일곱번째 기사를 읽어야지만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소설입니다. 그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봐요. 연작도 엄현히 소설창작의 기법이며, 독자를 넓혀갈 수도 있는 등 여러 장점이 있죠.
그런데 제가 월광의 알바트로스를 보면서 아쉬웠던 부분이 몇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소설의 중심이 랜드워커일 필요는 없다는 것과 또 하나는 전작과 후작을 연결시키는 방법입니다.
프로즌님 작품의 장점은, 그리고 많이 독자들이 열광하는건 인간에 대한 애정이 절절히 묻어나온다는 겁니다. 그런데 알바트로스 3권 이후로는 그런 감정이 굉장히 희석되어 버립니다. 예를 들어 일곱법째 기사 중에서 본편의 서두에는 지운 남작에 대한 역사가들의 후술이 나오죠. 지운에 대한 제각기 다른 평가 속에서 독자는 본편에 등장하는 지운의 행동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월광의 알바트로스, 특히 4권 중에 등장하는 설명들은 대부분 자유의 깃발이 어떠했니, 알바트로스가 얼마나 전투를 잘했니 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런건 본편을 읽어도 얼마든지 알 수 있는 겁니다. 더군다나 그런 설명은 여러번 중복되어 나타나기도 합니다. 수식의 과잉이죠. 일곱번째 기사를 읽은 독자들이 기대한건 알바트로스라는 랜드워커의 활극이 아니었는데 말이죠.
그리고 랜드워커가 작품의 중심이 되려면 랜드워커의 등장에 대한 좀더 정교하고 설득력 있는 설명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작품에서는 랜드워커의 등장마저 지운의 손에 맡겨 버리죠.
지운은 사상으로 세상을 바꾸고, 동시에 랜드워커를 통해서 세상을 바꾸었습니다. 이 둘은 과연 공존할 수 있는 것일까요?
때때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일곱번째 기사의 세계와 월광의 알바트로스의 세계는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이 둘은 필연적으로 이어지는 것일까요. 전 이 두가지 세계에 패러렐 월드라는 개념을 적용하고 싶습니다.
일곱번째 기사의 세상에서 지운은 문학과 사상이라는 유산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다양한 형태로 이어지게 되고 그 후손들의 행동에 따라 무수한 결과물을 낳게 될 것입니다. 물론 민주주의를 역사의 필연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고, 저도 여기에는 동감하는 편입니다만 하지만 그 과정은 저마다 다를겁니다.
알바트로스의 세계가 무수한 가능성 중 하나일 것입니다. 하지만 작가는 그 가능성을 말하고 독자들에게 공감을 사기보다는 이를 과감하게 찍어 누르는 편을 선택했습니다. 제가 알바트로스를 보면서 눈쌀을 지푸린 부분이 두 군데인데 하나는 로렌스가가 지운이 남긴 저서를 빌어 위기 때마다 출현해서 국가의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해 나갔다는 부분입니다. 프레데리커 공화국이 제국주의와 반공화주의의 물결 속에서 대공가를 중심으로 공화국을 유지해 간 상황을 만들어 내기 위한 방편이었죠. 하지만 너무나 작위적이라는 평가를 부인하지 못할 겁니다.
또 하나는 마법사 엘프와 랜드워커 제작자인 드워프가 살아남아 지운의 유산을 계승해 자유의 깃발을 만든다는 부분이죠.
이것이 가장 문제되는 부분이라고 봐요. 일곱번째 기사에서 지운은 세상을 개혁한다는 욕심과 그 방법이 과연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그래서 문학과 사상이라는 형태를 빌리게 되죠. 일곱번째 기사를 관통하는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뒤로 와보니 지운이 결코 남길리가 없었던, 또는 지운이 탐탁치 않아 했을 이상한 책 한권과 자유의 깃발이라는 단체가 존재하는 겁니다.
일곱번째 기사에서 지운은 지구로 돌아오면서 가능성이라는 유산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알바트로스는 그걸 외면하고 있죠. 다만 수명이 길뿐인 엘프와 드워프, 그리고 기상이변에 의한 과포화된 마나라는 수단을 동원해 일곱번째 기사와 알바트로스의 세계를 억지로 잇고 있습니다. 과연 자유의 깃발이 무엇을 간직하고 있는 단체일지, 그리고 그 속에서 주인공인 앤드류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그리고 이 둘이 지운의 유산을 잘 계승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전 부정적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더 큰 필연 속에서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 필연은 독자가 기대했던, 그리고 알바트로스의 세계에서의 갈등의 축인 자유와 평등, 전쟁 등과는 거리가 멀 것입니다. 아마도 그 중심에는 드래곤이 존재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건 추측이구요.
또 프로즌님은 일곱번째 기사와 달리 알바트로스라는 작품을 창작하면서 전혀 새로운 작품을 구상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지운이라는 남자가 있었을 뿐인 하나의 세계를 빌려와서 랜드워커가 등장하는 액션활극을 그리고 싶었고, 자유의 깃발이라던가 자유, 평등 같은 건 이를 위한 곁가지에 불과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러기엔... 이건 솔직한 평입니다만 그간 등장해 왔던 다수의 메카닉이나 기갑병기를 등장시킨 판타지 소설이나 만화, 애니메이션이나 라이트노벨 등을 보아온 독자에게 월광의 알바트로스가 좀 부족한 건 사실이죠.
이건 일곱번째 기사가 영지물로 전개되었으면 그저 그런 작품이 될었을 것이라는 평과 같은 맥락입니다. 일곱번째 기사가 영지물이 아니었기에 높은 평가를 받은 것처럼 월광의 알바트로스도 단순한 메카닉 판타지가 아니기에, 그러므로 일곱번째 기사와 월광의 알바트로스, 두 작품을 자연스럽게 이어나가는 것이 중요하고, 제가 볼 때는, 특히 1,2권과 달리 3권 이후로는 상당부분 실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아쉽네요.
불교에서는 마음 속의 부처를 죽이라는 말이 있죠. 이와 마찬가지로 월광의 알바트로스에서는 지운을 죽였어야 지운을 제대로 이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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