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검류혼
작품명 : 머메이드 사가
출판사 : 대원씨아이 - 일리아드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검류혼님 역시 자기 색이 뚜렷한 작가다. 처음 몇장을 읽자 이미 이 책은 참 검류혼스럽구나 하는 걸 느꼈다. 일단 일러스트에 혹했기 때문에 빌리는데 망설임은 없었지만....
한가지 분명한건 검류혼님 서술 방식은 나와 맞지 않는다는 거다. 그것은 문장이 뛰어나고 말고의 문제는 아니다. 단지 상성이 나쁠 뿐.
등장인물들은 꼭 대사 가운데 쓸데없는 한두마디를 덧붙인다. 서술로 처리해야 할 부분인 것 같은데 등장인물이 설명하듯, 연극하듯, 그렇게 대사에 끼워넣는다. 묘하게도 이런 게 참 거슬렸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이것 뿐이지 않소"
이 문장을 머메이드 사가식으로 바꾸면 이렇게 된다.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나, 청동의 돼지가 할 수 있는 일은
A와 B와 C 중에서 가장 현명한 B 뿐이지 않소"
일반적인 소설이라면 [절체절명의 상황]이라던가 말하는 이의 신분인 [청동의 돼지]라던가, [A, B, C]에 대해서는 대사가 아닌 서술 부분에서 적절히 설명을 할 것이다. 그러나 머메이드 사가에선 등장인물의 대사가 서술의 상당한 부분을 대신하고 있다. 미묘한 부분이긴 한데 -_- 나는 왜 이렇게 읽기 힘든지.....
그리고 초반 부분에 너무 주입식으로 지식과 설정을 풀어놓는다. Magic과 Magick의 차이를 알고 있는 거라던가 대장경이 아닌 그 건물이 유산이었던 점 등에 대한 정확한 지식은 높이 평가하긴 한다. 보통은 k 하나가 붙어서 무슨 차이가 있는지 알지 못하고, 일반인은 대장경이 세계문화유산인 걸로 아는 이도 많으니까...
이 외에도 괜찮은 토막지식들이나, 중요한 설정이 많이 나오긴 한다. 근데 그걸 짧은 분량 안에 과도하게 집어넣어놓아서 읽기 괴롭다. 정직하게 털어놓자면, 주입식 대사들이 나오는 순간부터는 그냥 이계진입하는 곳으로 점프해서 읽고, 나중에 앞부분을 읽었을 정도다.
스토리에 대해서는 그다지 평가할 재료가 없다. 서론만 나왔으니. 이계에서 주인공을 소환했다. 주인공이 소환당했다. 적과 좀 싸웠다. 인어공주랑 만났다. 음... 이것 뿐이다. 스토리가 어쩌구 할 단계는 아닌듯.
다만 조금 의아한 부분이라면 주인공이 현세에 있었을 때... 어린 시절 두뇌 테스트를 한다. 천재로 판명이 난다. 그러나 부모님은 그런 사실을 숨기고 교육도 평범하게 한다. 아들이 천재라는 굴레에 속박되어 좁은 시야를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한 놀라운 선견지명이... 되었어야 할 터다.
근데, 그러면 테스트는 왜 받았나 매우 궁금해진다. -_-; 설마 아들에게 그냥 '넌 천재 아냐' 할 수 없으니 테스트를 빌미로 '천재가 아니다'라는 인식을 확실히 박아주려고 받은 건가... 게다가 결과적으로는 의도한 바와 다르게 더욱 천재라는 단어에 집착하게 되는데, 그 후 십여년간 그 세심한 부모님들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건가... 흠.... 의아하다.
세부묘사로 들어가보면, 비뢰도의 느낌이 매우 강하다. 이런 말 하면 돌 날아올지도 모르겠지만... 욕하는 건 아니니 진정하고 읽으시길 바라는데.. 『폼생폼사』 이걸로 요약가능하다.
전투할 때, 치고 박고 피터지고 뼈가 흩어지고 격렬하게 생사를 다투는 그런 모습은 전혀 없다. 전. 혀. 아 뭐 잔챙이들끼리는 그런 모습도 가끔 보여주긴 하지만, 거물은 그런거 없다.
일단 엄청나게 분위기 잡고, 적과 설전을 벌인 다음, 주변인물들이 그가 얼마나 대단한지 상세설명 해주고, 본인 입으로도 열댓마디 정도는 더 종알거린 다음에, 한껏 폼을 내서 필살기 한방 부웅 하고 날린다..............
왕자가 처음 등장해서 필살기 날릴 때도, 주변에서 부하들 죽어가고 있는데 대마도사랑 둘이서 한참을 이야기한다.
이 방법밖에 없다, 아냐 그건 안돼, 그럼 다른 수 있느냐, 그래도 안돼 넌 유일한 후계자야, 아니 나만 있는거 아니잖아, 아냐 그래도 너여야해, 그럼 어쩌라구, 너라도 도망가, 그 후는 어떻게 될지 생각해봐, 음 그건... , 거봐 방법이 없지....
격한 토론으로 정세분석까지 다 끝내고 나서야 드디어 3줄짜리 필살기 발동장면이 나온다. 그 후, 영혼소환.. 마찬가지다.
폼생폼사가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니니까 돌 내려놓고. -_-)+ 단지 나에겐 그게 맞지 않다. 난 졸라짱쎄고멋진 거물 둘이서 서로 주절거리며 나한방 너한방 하는 것보다, 시궁창에 구르는 개똥묻은 삼류들이 나와서 음험하고 격렬하게 치고박는 게 좋다. 중요한 장면에서야 감정의 격앙도 필요하고 하니까 폼 좀 잡아도 나쁘지 않지만, 시도때도 없이 잡아서야 영 밍밍해져버린다.
머메이드 사가도 평범하게 열심히 치고박고 싸우다가 중요한 순간에 인어공주가 새변신칼 들고 폼 왕창 잡고 칼질 한방 슥삭 해주면 나도 부르르 떨면서 감동해 줄 수 있었을 거다. 그러나 얘도 그짓하고 쟤도 그짓하는데, 인어공주가 한다고 감동이 생길 리가 없다. 오히려 '언제 싸우냐 -_-' 하는 생각만 든다.
캐릭터를 살펴보자면... 인어공주는 괜찮았다. 강하고, 딱딱한 말투를 쓰고, 스스로를 '공주'라 칭하고, 세상물정은 약간 모르고, 그러나 프라이드는 매우 높고, 그에 걸맞는 신분과 힘을 지닌 존재. 아주 특이했다고는 할 수 없어도 뭐 마음에 들었다. 왕자는 말장난이 너무 심하고 좀 서둘러줬음 할 때도 잔소리가 많은 점만 빼면 나름 유니크하고 훌륭한 넘이었다.
둘 말고는 기억 안난다. 그다지 관심이 가는 캐릭이 없었다. 너무 전형적이거나, 억지로 개성을 확보하려 하거나, 원래 개성이 없는 캐릭터들이 많았다.
사실 빌린 이유의 80%는 일러스트에 있었다. 표지와 내부 컬러 일러스트가 너무 멋져서 그냥 닥치고 빌렸다. 그러나 흑백 일러 숫자가 너무나 적었고, 컬러에 비해 별로였다. 색감으로 실력을 내시는 스타일인지 흑백에선 영 삘이 안오더라.
1권만으로 독자를 끌어들이기엔 부족했다는 게 내 감상이다. 다수의 열렬한 고정독자층을 믿고 고고 하시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뭐 나는 대여점에서 빌려봤으니 2권도 들여놓으면 보기는 볼 것이다. 그러나 구매할 의향이 있느냐 하면, 전혀 없다. 설사 검류혼님의 팬이라 할지라도 1권만 보고는 구매욕구가 안들 것 같다.
2권에서 폭발하는 재미로 돌아오길 기대해보자.
http://blog.naver.com/serpent/110021698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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