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방수윤.
작품명 : 허부대공.
출판사 :
허부 대공. 인간의 숙명에 대한 서사인가?
-평어로 감을 양해들 하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사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조회수에 몇번 실망을 한 이후 신뢰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럴 가능성이 많다. 또한 최근에는 무협을 손에서 놓아버렸다.
그런 내가 허수아비 서방 (虛夫) 이면서 대공( 고귀한 신분의 사람)이라는 모순이자 굴레를 안고 있는 제목의 글을 읽게 된것은 전혀 뜻 밖의 일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나는 후회하지 않았다. 아니 좀더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현 무림에서 조우한 인물들중, 작가로서 세 뻔째 만난 그래서 술을 한 잔 나누고 싶은 상대가 되어 버렸다.
소설에 허용되어 있는 많은 권리중 하나가 과장이다. 그리고 서술과 묘사의 권리이다.
어려서 고아가 되어버린 주인공, 거기에 꺼져가는 촛불처럼 죽음만이 약속되어 있는 삶.
이 얼마나 적확한 비유이자 설명인가. 그렇다. 실존주의를 주장한 이들은 모두 인간을 신으로부터 버림받은 존재로 규정했다. 그리고 우리 인간에게 확실하게 보장 되고 약속 되어 있는 내일은 죽음뿐이다. 희망? 그것은 신기루이자 자기 최면이라해야 진실이 될 것이다.
주인공 부운(孚雲),
뜬구름이라는 이름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 또한 결코 가볍거나 그냥 생각나는데로 지은 이름은 아닐것이다.
그런데 의문은 생긴다.
하나, 허수아비 서방이면서 고귀한 존재라는 비극적인 모순의 상황 말이다. 더구나 거기에 거의 병적 집착이라고 할 수 있는 가족에의 맹목적인 동경과 충성.
둘,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생명, 거기에 더해진 유리 단전.
왜 작가는 주인공에게 양쪽다 2중의 족쇄를 채워둔 것일까?
결국은 제목에서 암시하는 것 처럼 주인공을 통해서 비극적 모순에 함몰되어가는 우리 인간의 모습을 설명하고 보여주기 위해서 그런 장치를 한 것일까?
나는 우선 내가 이글을 자세히 정독을 한 이유를 설명하고 싶다.
1. 나는 이야기가 있어서 좋았다. 더러 눈에 띄는 묘사와 서술도 좋았다. 물론 10대 들이나 쓰는 비속어들이 몇곳에서 발견되어 혀를 찬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분명히 밝히지만 반드시 비속어를 쓰면 안된다는 규정은 없다. 그러나 소설, 문학에서는 분명히 비속어를 쓰는 경우 쓰지 않으면 안되는 분명한 이유를 독자에게 인정 받아야 할 의무가 작가에게는 있다는 것이 암묵적으로 이루어진 가르침이다. 따질분이 있을까봐서 근거를 제시하자면 '플로베르'의 '일물일어설' 을 말하는것으로 대신하겠다.
2.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무협의 가장 큰 취약점중 하나가 도도히 흐르는 대하처럼, 이야기의 구조가 그렇게 짜여져야 옳다고 주장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유장한 흐름이 대하소설의 구조에 가까이 다가서고 있음에 또한 더 후한 점수를 부여했는지도 모르겠다.
3. 천하제일의 명의, 천하제일의 명약으로도 고치기 어려운 병이 나아가고 있다.
요즘으로치면 암 말기에 말기인 환자가 의사도 없이(물론 약물의 도움은 있었지만) 치료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해괴하지 않은가? 그런데 작가는 그 입심으로 교활한 미소를 지으며 양생술이라는, 그것도 해괴한 문자의 나열에 불과한 책(요즘의 어떤, 소설을 가장한 짝퉁 무협지들 처럼)으로 그렇게 되다니........ 작가에게 건배를!
나는 앞으로 이런점들을 주의깊게 살펴볼 것이다.
분명제목에서도 비극적 모순을 암시해 보이고 있는데 또 이상하지 않은가.
구소희(주인공의 처)가 혼자 불을 밝혀두고 거울을 보고 웃음을 지어 보이지 않는가.
이것은 곧 변화를 의미하는데 그렇게 이야기가 발전, 종결된다면 과연 허부라는 제목은 잘된 것일까?
아니면 허부가 결국은 대공이, 진정한 대공이 되는 것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겠다는 것일까?
또 나의 관심을 끄는것은 색다른 시도,
도전이다.
무림외에 또 하나의 다른 무림, 초고수들의 무림이 있다니? 이 황당한 설정도 여전히 낯 하나 붉히지 않는 뻔뻔하고도 교활한 입심으로 우리를 꼼짝 못하게하고 있지않은가.
흔히 복수하는 과정만 줄기차게 써 놓고 이 소설은 복수가 주제라고 뻔뻔스럽게도 큰소리치는 작가들이 있다. 그것은 줄거리일뿐 주제는 아니다.
나는 자신있게(돌팔매 맞을 주장이 아니기에) 말하겠다. 진정 그가 그렇게 믿고 있다면 그는 주제의 뜻도 모르는 즉 자격미달의 짝퉁 작가라는 것이다.
왜 이 이야기를 하는가? 나는 그런 종류의 글을 읽다가 이글을 읽어보신 독자분들에게 머리를 숙이고 싶다. 그리고 한 마디 더 하고싶다.
<독자시여! 꼼꼼히 읽어주십시요.>
이 얼마나 좋은 작품인가. 훌륭한 작가다. 짝퉁이 절대아닌 엄청난 내공을 지닌 진정한 작가말이다.
어른들은 자기가 사랑하는, 커나는 사람들에게 종종 이른다. <좋은책을 많이 읽거라.>
이것은 지식을 얻는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것은 생각, 좋은 생각의 재료를, 아니 책을 그것도 좋은책을 읽으면 저절로 생각을 하게 되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작가님 고백합니다.
저는 현 무림에서 네 분의 독자분과 세 분의 작가님을 할 수만 있다면 만나서 소주 한 잔 나누고 싶습니다. 앞으로 저는 분명 다시 한 번 주의 깊게 살펴 볼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교보에 적립되어 있는 돈을 좀 쓰겠습니다. 단 엉뚱한 결말이 아니기를......
마지막 덧, 이제부터는 주제의 열쇠말을 찾기 위해서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요. 또 이글을(허부대공) 읽은 모든분에게도 축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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