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풍종호
작품명 : 검신무
출판사 : 로크미디어
풍종호님 무협의 애독자라면 대부분 아실 테지만, 풍종호님은 대단히 특이한 시선을 갖고 있는 작가입니다. 평범한 장면도 그는 ‘다르게’ 쓰는 재주가 있지요.
풍종호님의 작품은 대부분 몇 번씩 읽곤 했습니다. “분뢰수”를 다 읽자마자 처음부터 다시 읽으면서 ‘이런 적 처음인데…….’ 했던 기억이 나네요.
장면과 장면의 비약에서 놓친 부분, 추리를 위해 깔아놓은 미처 찾아내지 못한 포석을 되찾아 읽는 즐거움 때문이었지요. 게다가 그 독특한 시선이란……. 읽을 때 마다 맛이 달라지는 글이란 게 얼마나 큰 즐거움을 주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글은 또 다르더군요.
“검신무(3권 발행 중/로크미디어/2005)”말입니다.
3권이 2005년 7월 중순에 나왔으니 연결권 안 나온 지 벌써 6개월이 다 되어 가나요? 그런데도 별로 재촉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습니다. 뒤가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기는 무지 궁금합니다만 제 마음은 이래요.
‘이 정도 글이면 언제 나와도 읽는다. 앞 내용 까먹었으면 다시 읽는다.’
성미 급한 독자를 이 정도로 너그럽게 만드는 힘이 이 글엔 있습니다.
참으로 읽는 내내 아련한 감동에 젖었습니다. 느릿하면서도 유연한 시선, 무협다운 품격과 아릿함 때문에요.
1권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정말 오랜만에 무협을 읽는 흥취를 느꼈습니다.
검신을 꿈꾸는 주인공 소년 도운연이 여장춘과의 첫 대결에서 사부 하후염의 일갈을 떠올립니다.
- 적을 대함에 추호의 자비를 남기지 마라! 그것이 검객의 길이며, 그것이 검객이 지닐 자비인 것이다! 일 검에 죽일 수 있는 상대에게 이 검을 쓰는 것은 검객의 행위가 아니다!
참으로 단호하고도 명쾌합니다. 노검객 하후염의 가르침은 무협팬들의 가슴을 찌르는 로망을 담고 있습니다. 검객이 가져야 할 자비란, 상대에게 추호의 자비도 남기지 않고 최선의 일 검을 선사하는 것이라 어린 제자를 가르쳤지요.
그보다 더 멋진 건 제자 도운연입니다.
도운연은 사부에게 배운 그대로 검을 씁니다.
첫 번째 대결이란 망설임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이미 잘 정련된 보검처럼 검신의 길을 걸어가는 동량이며 한 명의 당당한 검객이었으니까요.
도운연은 망설임 없이 여장춘에게 치명적 일 검을 먹입니다. 사부의 가르침대로 일 검에 치명상을 안겨주지요.
치명상이란 걸 알고 여장춘은 검의 자애를 구합니다. 미련은 없다 말을 하지요.
도운연은 이에 한 틈의 망설임도 없이 검의 자애를 구현합니다.
단번에 여장춘의 목을 날려 버리지요.
그 단호함. 그 순결함. 그 고고함…….
도운연에겐 정말 아무 망설임이 보이지 않습니다.
검신이 되는 걸 꿈꾸는 소년은 사부가 가르쳐주는 검신의 길을 걸으며 아무 의심도 없이 배운 그대로 행합니다. 한 점의 사심도, 한 올의 꾸밈도, 한 틈의 망설임도 그에겐 보이지 않습니다.
아……, 까맣게 잊었던 무협의 로망이었습니다.
이글은 전체적으로 대단히 느린 흐름을 갖고 있습니다.
큰 흐름과 관련 있어 보이지 않는 주변 인물들의 자잘한 이야기까지 아주 상세히 나오지요. 그러다보니 3권이 끝날 때까지 이야기는 청성파의 대회합을 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주변 인물들의 자잘한 이야기들이, 주변 인물들의 알 듯 말 듯 모호한 대화 속에 담긴 위트가 계속 웃음을 만들어줍니다.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진행되며 이 글의 세계관과 설정이 하나 둘 드러나고 있지요. 그 느릿한 여유가 이글을 참으로 맛깔나게 만듭니다.
“검신무”를 읽으니 자신의 길을 고집스럽게 걸은 작가가 완숙지경에 이르면 어떤 검무를 펼칠 수 있는가 본 듯합니다.
기대됩니다.
풍종호님이 앞으로 어떤 글을 쓰실 지가.
지친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유장한 흐름은 이제 완숙함을 맘껏 과시하시더군요.
아무 때라도 좋으니 연결권을 내주기만 하시길.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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