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김지훈(캔커피)
작품명 : 알에스 RS
출판사 : 로크미디어
아래 별똥별2호님께서 알에스에 대한 글을 쓰셨길래 저도 한마디 하고 싶어졌습니다.
저도 대체로 RS를 재미있게 봤습니다.
무엇보다 각 인물의 천재적인 능력의 묘사가 신선했습니다. RS의 주요 코드 중 하나가 천재인만큼 많은 천재들이 등장하는데, 카이나 와일즈 교수, 에릭 등은 물론이고 유진이나 페드로, 헬, 심지어 아소타로조차 일면 천재적인 능력을 갖고 있죠. 작중 인물들은 모사꾼으로서 상황을 이용한 두뇌대결도 하지만, 주로 각 개인의 능력으로 예기치 못한 방법으로 상황을 반전시키면서 대결을 하죠. 그 과정을 보면서 와, 천재다,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각 인물의 나름의 신념에 찬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카이의 순수하면서도 특이한 성격이나 유진의 당찬 모습 등이요.
그런데 아쉽게도 작품의 장점은 거기서 끝인 것 같습니다.
천재 외에 또 다른 작품의 축인 천둥새 스토리는 조금 아쉬웠습니다. 4권 후반부에 들어가면서는 실망했습니다. 그 이전 부분과 제대로 연계되지 않는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특히 유진이 치료받고 난 이후부터가요.
유진은 치료받은 이후 카이와 다른 길을 걷겠다고 선언합니다. 그건 뭐 좋습니다. 유진의 의지, 신념과 어울리니까요. 그런데 그 때 준의 자기와 함께 가지 않겠느냐, 는 말에 생각해볼게, 로 대답합니다. 준은 계속 가차없는 거절만 듣다 처음으로 덜 부정적인 대답을 듣고 좋아서 쓰러지죠. 1권-3권에서 유진이 카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실컷 나오는 것과는 맞지 않습니다. 이후에도 본인이 계속 주장하는 카이를 사랑한다는 것과도 어울리지 않고요.
5권에서 유진의 모습은 더욱 가관입니다. 5권 초반에 카이를 잡으려고 파견한 특수부대가 반대로 몰살당하자 유진은 카이를 집요하게 추궁합니다. 마치 카이가 그래서는 안되었다는 듯이. 만약 카이가 유진의 게이트를 파괴하러 부대를 보냈다면 유진은 곱게 내버려뒀을까요? 더군다나 부대가 카이를 죽이려 했다는 사실을 안 이후에도 유진의 실망은 변하지 않습니다. 억지죠.
카이와 대립하는 중에도 당당하게 카이에게 정보를 요구하고, 카이의 만나자는 제안에 응하면서 그 자리에서 카이를 사로잡을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습니다. 카이에 대한 사랑과 게이트에 대한 신념을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 자체는 유진의 성품과 어울릴지도 모르지만, 카이의 순애보에 비하면 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에 대해 고민하거나 괴로워하는 모습도 별로 나오지 않은 것도 그렇고요.
심지어 모건의 카이살해의지에도 동의합니다. 선택은 카이가 한 것이고, 자신은 카이의 선택을 존중한다, 설사 카이가 죽더라도, 운운하면서요. 카이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부대원들을 죽였을 때는 그렇게 실망했으면서, 99%가 아닌 100%를 원한다는 모건 앞에서는 맥없이 죽이라고 하라니... 고민하는 모습이 안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이전에 카이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느니 운운했던 것에 비하면 경미할 정도입니다. 몸부림치며 괴로워하거나, 적어도 눈물 흘리는 장면 정도는 나왔어야 하지 않을까요? 계속 고민했다는데, 언제? 이전에 준의 질문에 생각해볼게, 로 대답한 것과 연결해서 보면, 실제로 카이를 사랑하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그런데 본인은 계속 카이를 사랑하노라 주장합니다. 자기 편한대로의 사랑, 이용해먹기 위한 변명으로서의 사랑, 상대방의 희생의 강요에 대한 이유로서의 사랑인 것 같았습니다. - 이 부분은 작가님의 실수 또는 역량부족인 것 같습니다. 갈등상황이 제대로 심화되지 않고 중간을 톡 잘라먹은 느낌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후회할 상황이 오자 그때서야 카이를 찾습니다. 그러면서도 프로젝트는 계속 진행합니다. 카이의 도움을 받고 나서 자신이 카이에게 저지른 짓에 대한 사과도 없습니다(아마도). 그러면서 계속 사랑한다고 하죠. 이쯤 되면 대체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일관성도 없고 정당성은 물론 타당성도 없습니다.
여기까지는 카이와의 관계에서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더 있습니다. 모건이 정말 나쁜 놈이란 것은 유진도 처음부터 압니다. 그런데도 게이트를 위해 모건과 타협합니다. 그것의 악용가능성은 처음부터 명백했음에도 나중에 가서야 그것을 고민합니다. 똑똑한 유진이 처음부터 그것을 생각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제대로 나와있지 않습니다.
이건 소설 외 얘기지만, 사실 인류의 생산능력은 현재도 인류 전체가 풍족하게 먹고 살만하다고 합니다. 그렇지 못한 이유는 구조적인 빈부격차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 유진이 게이트만 있으면 그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믿을 정도로 순진하다? 모건과 대립해서 게이트 사용권을 확보하려는 것도 아니고 모건의 여자가 되는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꼴이라니... 뭐랄까, 사실 말도 안 됩니다.
2권인가 3권인가에 카이가 마냥 순진한 아이를 넘어 엄청난 카리스마를 갖추게 된다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로 끝, 그 이후에는 카리스마가 나오지 않습니다. 5권에서 유진과 통화하는 장면에서는 오히려 애같이 나옵니다. 헬이나 페드로, 필립을 이끌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카리스마 얘기는 왜 나온 겁니까?
와일즈가 게이트에 협력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에밀을 되살리고 싶다는 것까지는 그래도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다 영생이라니? 와일즈의 담백한 성품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대한 설명은 인간은 변한다느니 하는 원론적인 것 뿐입니다.
모건이 이끄는 세력은 흑룡회보다 훨씬 강한 것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카이가 홀로 쫓기기는 했지만, 모건의 세력이 그렇게 강해 보이지도 않고, 모건 자체는 아소타로보다 존재감이 적습니다. 흑룡회와의 대결은 천재의 능력을 드러내는 제법 흥미진진한 것이었는데 모건은 비교적 간단한 속임수 몇 개로 간단히 몰락한 것은 분명히 어색한 점이었습니다.
결론은 4권 후반-5권에서 총체적인 난국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1권이 가장 재미있었고 그 이후부터는 조금씩 하향세를 보이다 마지막에 가서는 유진을 정점으로 스토리의 균형이 망가진 것 같습니다. 천둥새 소재도 참신했지만 RS의 기본코드인 천재와는 별로 어울리지 못하고 따로 노는 것 같았고요.
마무리만 잘 되었다면 정말 훌륭한 작품이 되었을 것 같은데,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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