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임준욱
작품명 : 무적자
출판사 : 청어람
-제가 감상문을 쓰는 스타일은 평어체입니다... 그리고 작가님에 대한 존칭을 생략하고 이름 석자만 쓰도록 하겠습니다. 왠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해야 감상문이 잘써져서...-_-a;; -
소위 책만 쓰면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무협계의 대부가 있다. 세상 어디에나 다 정상을 밟은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한국 무협 소설계도 예외가 아니어서 작가의 이름 하나만으로 필독서가 되는 분들이 있다. 예전에 이에 대해 글을 쓴적도 있다. 지금은 그때와는 약간 생각이 바뀌었다. 명단이 약간 다르다. 지금이라면... 임준욱, 용대운, 좌백, 장경, 정도가 되겠다.
더있다면 개인적으로는 조진행, 방수윤, 백준, 한백림...설봉? 요부분은 그냥 넘어가자. 개인적인 호불호 차이다. 하지만, 최소한... 위에 거론된 이름들.... 부인할자 몇이나 될까. 아마 뫼사단부터 읽었던 사람이라면, 그후 드래곤북스 시절도 거쳐왔던 사람이라면 말이다.
명단이 바뀌었다. 왜 바뀐걸까. 가장 중요한 기준...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새작품이 안나와준다는 것이다. 그점이 1차 요인일 것이다. 불멸의 작품 혈기린외전이 있는데... 좌백과 진산은 신선놀이 갔는지 은둔에서 헤어나실줄 모른다. 그래서 1순위가 아니다. "현재 활동자"가 아니므로.
용대운. 나는 한국무협을 96년 태극문으로 입문했다. 그는 한국무협의 산증인 맞다. 그런데... 호흡이 너무 길다. 군림천하 19권이 몇년 끌어서 그 앞내용 다까먹어서 그냥 읽기를 중단한 상태다. 언젠가 완결 나면 처음부터 그냥 다시 읽을려고. 대작인건 당연한데... 묵향 뺨치게 호흡이 길다.. ㅠㅠ
장경. 산조라는 신작으로 돌아와주셨다. 마치... 영원한 명작 '암왕'의 분위기가 군데군데 보인다. 설정상 마치 암왕의 500년 이후라고 오해할만한 부분도 나온다. 그래.. 역시 장경이지. 잘 읽고있다. 반갑다. 여전히 활동해줘서.
근데... 유일하게 드래곤북스에서 데뷔한 임준욱. 앞 사람들은 다 뫼를 거친 작가들이다. 쉽게 말해 수련기간이 훨 오래된 고수들인데, 뜬금없이 천재가 나타난거다. 왠만한 무협작가는 명함도 못내밀만큼. 그나마... 거장들 와중에서 호흡주기가 제일 짧은... 이른바 왕성한 창작활동을 보여주는 현역인 것이다. 이러한 점이 거장 명단의 1순위로 꼽히게 된 이유다. 뭐... 은거중인 작가들이 다시 펜을 든다면 모르되... 현재는 임준욱이 단연 최고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을 굳히게 해준 책이... 바로 이번 신작 '무적자'이다.
왜 사람들은 임준욱의 무협에 열광을 할까...
나는 금강의 글이 약간은 안맞는데,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이렇게 사람마다 취향이 약간 다른 법이거늘... 임준욱의 글은... 글쎄. 내가 문피아, 그이전 고무림부터도 싫어한다는 사람을 못본거 같다.
생각해보건데, 몇가지가 있다.
1. 가슴시리도록 따뜻한 정서와, 인간에 대한 긍정적인 작가의 시선...
그렇다. 임준욱의 트레이드 마크. 무협을 통한 성장기 묘사를 가장 탁월하고 안 지루하게 쓰는 작가이자... 그런 성장기 이야기를 통해 주인공이 어떠한 사람인지... 마치 내가 현실속에 알고있는 사람인 마냥 생동감있게 만들어 준다. 그리하여 글을 독자의 머리속에 현실로 만들어 버려서... 그 따뜻한 향기에 독자도 취하게 하는 재주다.
또한가지.. 악인에게도 상당한 부분을 할애해서, 악인이 된 이유를 말해준다. 대략 임준욱의 소설에는 이제껏 "이유없이 나쁜 그냥 악(惡) 그자체" 인 상대는 거의 등장시키지 않는다. 다만 상황과 상황속에서 개인의 잘못된 선택의 연속이 결국 그렇게 만들었다는 식이다.
좋다. 근본적으로 임준욱은 '인간'을 보는 시선이 너무 따뜻하다. 물론 필력이 없이는 그냥 사람을 좋게 본다고 해서 그게 무협을 재밌게 하는 요소가 되지 못한다. 게다가 잘못 다루면 짐짓 신파적이 되기가 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임준욱 소설은... 그 따뜻한 맛에 읽는 무협이다.
최소한 한국의 무협 작가군에서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그만의 특징이며, 거의 이런 특징에 있어서는 독보적, 그자체라 난 생각한다.
2. 훌륭한 작가의 필수 조건 중 하나는 바로 독자를 글 속에 몰입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몰입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바로 '감정 이입' 이다.
임준욱은 감정이입이 잘 되게 한다. 임준욱이 묘사하고 창조한 세계는 환상이다. 현실이 아니다. 그러나 글을 읽고 있으면 정말 현실에 있음직한 환상이다. 내 옆에서 벌어질 법한 이야기다. 임준욱이 창조한 모든 무협들이 이런 감정이입을 탁월하게 한다.
무협은 크게 두가지 요소를 충족시켜야 성공한다 할 것인데, 한가지는 '대리만족' 한가지는 '재미' 이다. 그러나 대리만족이 너무 과한 류의 무협이 이른바 구무협이라 칭하는 쪽에서 나오는데, 아니면 신무협이라 할지라도 너무 먼치킨이라... 괴리감이 느껴지면 또 외면받는다. 대리만족이 되야 재미가 있다. 그러나 너무 심한 능력치가 주어지거나, 인과관계가 너무 없는 뜬금없는 대리만족은 현실력이 떨어지기에 재미도 줄어든다. 이른바 그 사이의 줄타기를 잘해야 한다.
정말 어려운 조건인데, 이른바 차근차근 강해지면서도 또 너무 약해서 져서도 안되고, 너무 일방적으로 강해도 안되고 그런 완급조절을 잘해가면서도 끝에 가서는 대리만족과 성취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것이 기본적인 무협의 구조다. 그런 특성때문에 무협은 거의 해피엔딩이다.
임준욱의 두번째 탁월한 요소는, 뛰어난 묘사와 인물의 생동감을 살려 주인공이 나인것처럼 감정이입이 되게 한 다음, 그 인물이 적절하게(그야말로 적절하고도 너무도 뛰어난 균형감각으로) 이야기를 균형잡게 진행시키면서도 대리만족도 충분하게 느끼게 하는, 이런 작가라는 점이다. 물론 이런 몰입도 측면에 있어서는 임준욱 뿐만이 아니고, 대부분의 최고의 작가들은 다들 몰입하게 만드는 능력을 가졌다.
다만 임준욱의 감정이입이 좀더 구별되는 점이라면, 건곤불이기의 '반통미' 라던가... 쟁천구패의 '우쟁천'... 현실속에서 없을 것 같으면서도 또 있을법한 인물들.... 음... 가령 예를 들자면 설봉작가의 무협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괴물같이 머리가 뛰어나다. 치밀한 플롯 속에서 이야기를 진행시키기에 추리소설을 보는 것 같지만, 뭔가 현실속에 있을법한 사람같지는 않다.
다른 말로 해보자면, 평범한 무협 작가들의 인물들은 작가가 창조해낸 소설속 인물이고 작가가 글을 진행해나간다는 느낌을 받지만, 임준욱의 등장인물들은 임준욱이 창조하긴 했지만서도, 어떤 세트장 안에 실제로 살아 숨쉬는 인물들이 자신들 스스로 인생을 살아가고, 그걸 임준욱이 그냥 기록과 묘사만 하는 거란 생각이 든다는 이야기다. 영화 '트루먼쇼'의 트루먼처럼. 표현이 정확히 전달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한마디로 그 정도로 생동감이 뛰어나단 소리. 그 정도로 자연스럽기에 받아들이는 독자 또한 그대로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일단 내가 생각하기는 이런 두가지 이유가 결합해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여... 그냥 읽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임준욱의 무협이 나오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랬다. 그랬었는데....
이번 무적자. 완전 다르다. 물론, 임준욱이 어디 가겠나. 분명 읽자마자 임준욱의 향기가 나기는 하지만, 처음으로 비정한 복수극을 임준욱이 다뤘다. 임준욱글의 특징 때문에, 무협의 단골주제 "복수"로 유명한 소설은 용대운, 좌백, 금강, 이런 작가들의 글만 있지, 임준욱 글에는 비정한 복수극이 없었다. 왜냐? 사람을 따뜻하게 보는데 어떻게 '비정한' 복수극이 있나. 기껏해야 너그러운 '복수의 모양새'가 있었달까.
이번엔 아니다. 시절만 현재로 옮겨온 것이 아니라, 작가가 스타일 자체도 변화를 시도한 것이다. 이 글은 무공은 익혔으되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주인공이 외동딸을 너무 잔혹한 방식으로 잃게 되어 복수심에 불타올라 원수를 지구끝까지 쫓아가 처리하기 위해 홀로 고독하게 싸워나간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 이런류의 글로 가장 유명하신 분은 용대운이 아닐까. 태극문도 크게 보면 복수이야기고, 탈명검이라던지, 마검패검, 그리고 독보건곤. 독보건곤이야말로 전형적인 복수를 주제로 한 대표적인 무협이 뭔가? 라고 물을때 반드시 꼽히는 글이지.
아아아... 임준욱.. 다른 작가는 질투날 것이다. 자신의 장기가 아닌 부분도 이젠 훌륭하게 소화해 버렸다. 주인공은 그야말로 우직하게 복수를 하고 소설 역시 초지일관 복수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다. "복수" 너무도 흔한 주제이기 때문에, 복수를 주제로 뛰어난 글을 쓰기는 어렵건만, 너무도 재밌다. 몰입감 최고다. 마치 무공의 천재는 검에도 권장에도 신법에도 모두 천재적이라 범재들을 좌절감에 빠져들게 만드는 것처럼, 자신이 처음 도전한 주제에 대하여 완벽한 무협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ㅠㅠ
그리고 이른바 정통 무협독자들은 약간 싫어한다는 소위 퓨전물, 환생물, 짬뽕물... 전부 다루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무협이든 판타지든 일반소설이든 그냥 내 실력 정도면 첨써봐도 명작" 이라고 과시하듯이, 비판이고 뭐고 다때려치우고 무조건적인 칭송을 하게 만드는 글을 또하나 만들었다.
마치 독자들보고 "내가 이런류의 글은 못쓸줄 알았니? 난 뭐든 다 잘하거든"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또 한가지. 책은 두꺼운 책으로 총 3권인데, 얇은 요즘 대여점 판형으로 바꾼다면 7권 정도는 나올 것 같다. 이야기를 읽다보면 약간 압축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다. 쉬어가는 일이 없다. 이걸 아쉽게 생각하시는 분도 있었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호흡이 짧은 덕분에 몰입감, 긴장감이 3권 전체 통틀어서 한번도 떨어지지 않는다. 450여쪽이 되는 두꺼운 책 3권인데도 불구하고 2시간짜리 영화 한편본 것처럼 생생하게 몰입된다. 마치 극장에서 다크나이트를 보는 것 같았다. 아쉬웠으면 아쉬웠지 결코 3권이 이야기를 담기에 많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뺄 것이 없는 이야기 전개.
내 개인적으로 임준욱 작가의 책중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책은 촌검무인'이다. 그런데 그다음 더 재미있게 읽은게 있는데, 그게 바로 '괴선'이었다. 괴선을 읽으면서 비로소 나는 임준욱을 베스트 작가로 인정하게 되었는데, 그후 또 쟁천구패가 나온 뒤에는 다시 최고의 책은 '쟁천구패' 가 되었다.
무슨 말인가. 한마디로 이 작가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계속해서 발전해간다. 국민가수도 한번 큰 히트곡을 내고서 그런 히트곡을 또 내기가 쉽지가 않거늘, 뭐 이런 이기적인 능력을 가진 작가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이번에 무적자를 읽고 난뒤에는, 내게 임준욱 최고의 글은 아직까지는 쟁천구패이기는 하나... 최소한 그뒤에 위치하는 게 무적자이자, 또한 임준욱에게는 마치 터닝포인트 같은 중요한 소설이라... 두고두고 기억할 명작인 듯 하다.
어떤 분이 그런 기분이 들었다고 하더라. 무적자를 읽으면서 엑스멘, 무협, 판타지, 모두 짬뽕되서 보는 한편의 영화같았다고. 그말이 맞다. 무적자를 영화화하려면 할리우드가 아니고서는 거의 불가능하겠지만, 기본 플롯이 "복수"라는 커다란 주제로 압축이 되기에 영화화 하기 매우 좋은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진짜 이기적인 임준욱 작가의 다음행보가 매우 궁금해지며... 개인적으로는 이런 현대판 무협소설(예-극악서생, 21세기 무인)을 상당히 좋아하기에 또 써주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란 생각도 해본다. 대신 현대판으로 따뜻한 임준욱표 무협이야기라면 더더욱 대리만족과 감정이입이 쉬울텐데... 말이다.
어떤 장르를 다루더라도.. 평범한 필력자들을 좌절감에 빠뜨리는 이기적인 작가 임준욱. 그냥 영원히 이기적으로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 계속 이기적으로 창조해내는 글들마다 계속 열광하게 만들기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은거하지 마시고 꾸준하게 현재처럼 활동하시는 작가로 남아계시기를... 바란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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