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선계 8권에 관계된 글이 올라오는 이 때, 너무도 때늦은 글이지만... 그럼에도 올려봅니다. 이후 말을 낮추겠습니다.)
이틀전 나는 나와의 약속을 깨고, 쟁선계 1권을 빌려보았다.
나는 쟁선계가 처음 출간되었을 때의 감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처음 남포문고에서 쟁선계 양장본(너무도 고급스러운...크으~) 1, 2권을 보고 얼마나 전율에 떨었던가... 언제나 그렇듯이 남포문고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그럼에도 나는 "드디어 나왔구나!" 고함을 치고 말았다. 당장 사고야 말겠닷!! 과감하게 두 권을 손에 들었고(마침 수중에 돈이 제법 있었다. 데이트 중이었기 때문에... 흥분에 못 이겨 데이트 비용을 날릴 뻔 했다...), 거침없이 카운터로 달려가다가... 다시 길을 돌이켜 책을 제자리에 갖다놓았다. 옆에서 쌍심지를 키고 나를 째려보던 나의 여자친구가 두려워서가 아니었다(사실은 좀 두려웠다...- -;). 과연 완결이 될까...??? 순간 나는 그 책을 사기가 두려워졌다. 이재일 님을 믿을 수가 없었다...
예전 내가 고등학생 때였나? 중학생 때였나? 어쨌든... 묘왕동주(정확히 1부)는... 그 시절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어쩌면 굉장히 평범한 스토리다. 무협의 영원한 테마... 복수... 하지만 전혀 평범하지도, 지루하지도 않았다. 왜일까? 왜... 아직도 명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재일 님의 글에는 뭔가 다른 것이 있었다. 겨우 두권에 끝이야? 의아했지만, 이내 답을 찾았다. 2부가 곧
나오겠구나...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제나 저제나 2부를 기다렸다. 2부를 기다리는 동안 1부의 내용을 잊어버릴까봐 틈만 나면 다시 읽고, 또 읽었다. 막상 2부가 나왔을 때 1부가 기억나지 않으면 어떡하지? 노파심에서 말이다.... 그 후로 얼마나 긴 세월이 흘렀던가... 그야말로 "세월"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긴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나는 만화가게 아저씨가 "학생, 이거 또봐?"하고 염려할 정도로 묘왕동주 1부를 붙들고 살았다. 만화가게에 읽을 신간이 없으면 언제나 묘왕동주를 뽑았다. 기대가
변하여 분노가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묘왕동주 2부는, 그 분노가 순식간에 변하여 기쁨이 될만큼 빵빵한 분량으로(특히 2부 3권은 압권이었다...) 돌아왔고... 그 내용 역시... 특히 결말부분은 한동안 책을 내려놓지 못하게 할만큼 여운을 남기게 하는... 정말 멋진 작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그 긴 기다림의 시간은...
이!재!일! 이름 석 자를 기대감과 동시에 불안함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우연히 나우누리 무림동에 이재일 님을 소개하는 글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쟁선계"라는 작품이 아직 연재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마 그 때가... 지금으로부터
한 5-6년 전일게다... 단숨에 다 읽었다. 과연 전설이 되었다는 평을 훨씬 초과하는... 어마어마한 작품이었다. 나는 그 이후로 다른 누구에게 쟁선계를 소개할 때 항상 이런 표현을 썼다. 이미 전설을 뛰어넘어 신화가 되었다는...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다른 의미로 신화가 되어 버렸다... 그 엄청난 연중기간에... 말이다... 나의 불안함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과연 내 평생에 쟁선계의 완결을 볼 수 있을까... 그래서 결심했다. 쟁선계 완결 전에는 절대 보지 않겠다. 다만... 완결된다면, 나의 애장품 1호로 모시겠다고...
하지만, 그 결심이 이틀 전 깨졌다. 8권이 나왔다.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통신본 분량이 대략 8권 정도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렇다면, 8권 말미나 9권쯤 가면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것을... 8권이 나왔을 때, 나는 책의 마지막을 펼쳤다. 잘은 모르겠지만 섬(섬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무슨 화약에 관계되는 섬이었던 기억이 나는데... 아무튼...)에서의 이야기가 대충 마무리되는 분위기...
새로운 내용이다! 나왔구나!! 흥분했다. 드디어 나왔구나... 결심은 이미 기억 저편으로 날아갔다. 당장 빌려봐야지... 하고 앞쪽을 펼치자... 왠지 생소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어? 이상한데... 거짓말 좀 보태고, 나는 통신본을 100번은 읽은 것 같다.
신기하게도 읽으면 읽을수록 재밌었다. 한 번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만, 두 번 손이 안 가는... 그런 글이 있는가하면 읽으면 읽을수록 감칠맛이 나는 그런 글이 있다. 쟁선계는 당연히 후자이고, 그 후자 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글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그래서 엄청 읽었다. 그냥 살면서 좀 재밌는 거 없나? 싶을 때마다 읽었다. 그래서 붕어 비슷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 나지만 그 내용만큼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잘 모르겠다. 여기가 어느 부분이지? 이런 내용이 있었나? 앞 권을 읽어도, 그 앞 권을 읽어도 생소했다... 왜지? 어느새 나는 1권을 손에 들고 있었다.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왜지? 왜 이렇게 생소하지? 정신을 차린 순간 이미 나는 그 책을 빌린 상태였다. 그리고 읽었다. 이해가 갔다. 이재일 님은 그 동안 놀고 계신 것이 아니었다.
사실 쟁선계 출판을 처음 목격한 날, 완결될까? 걱정했던 것은 이재일 님의 극악한 연재속도때문만은 아니었다. 사실 무협 좀 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과연 몇 명이나 이 쟁선계를 접하지 않았을까? 통신본은 아마 왠만한 무협독자들의 손에 다 들어갔을텐데... 게다가 하드커버잖아? 이런... 이건 소장용인데... 혹시 많이 팔리지 않는다면... 하지만 이건 모두 기우였다. 틀림없이 눈에 익은 스토리인데 낯설다... 이재일 님은 단순히 오자, 탈자 등만 손보고 책을 출간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데... 잘은 모르지만... 들리는 소문에 편집증이라고 평가받기에도 충분한 완벽주의자!! 그러면 그렇지... 1권만 읽었는데도 새로웠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틀림없이 내가 익히 아는 내용인데, 새롭다... 재미있게 읽어내려가다가 전율했다. 이게 바로 이재일의 저력이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새롭게 만들 수 있는
필력!! 괴물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구나... 단순히 새로운 이야기만을 넣은 것이 아닌 듯... 등장인물들도 새로웠다. 캐릭을 재구성했구나... 대표적으로 철인협 도정을
들 수 있다. 통신본에는 그저 웃기기만 했다(읽은 사람은 다 안다)... 하지만 새로운 도정은 달랐다. 여전히 우스운 캐릭이었지만, 그의 사려깊음이 좀 더 강조되었다고나 할까... 그 외 모든 주요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더욱 생생해졌다. 종종 쟁선계가
재미없다고 평하는 독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그렇게 평가하는 대표적 이유 중 하나가 주인공이 묻힌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해가 잘 되지 않았는데, 1권만 읽고도 이해가 갔다. 다른 등장인물들의 캐릭성이 더욱 생명력을 얻은 것이었다. 게다가 석대원이 그다지 많이 등장하지 않는 1권임에야...
당장 8권까지 다 빌...리려다가 참았다. 결심을 기억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만화가게에서 만화를 보든, 음식을 먹든, 무엇을 하든 공통적으로 가지는 습관이 하나 있다. 맛있는 것은 가장 나중에... 재밌는 것은 가장 나중에... 이런 습관때문에 나는 아직 군림천하도 보지 않았다... 아무튼... 아껴 먹어야겠다. 쟁선계는 나의 무협역사 중 메인디쉬다. 나중에... 더 참았다가 나중에 맛있게 먹어줄테다... 또 하나... 만약참지 못하고 2권을 빼들면, 곧이어 3권을, 그리고 4권을... 결국 8권까지 단숨에 읽어버릴테지... 그렇기 때문에 참겠다. 아까 말했다. 이재일, 이름 석 자가 나에게 가지는 의미를... 이미 많이 참았다. 더 이상은 못 참는다. 묘왕동주 2부를 기다리면서 느꼈던 그 끔찍함을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완결을 기다리겠다. 만약 8권까지 다 읽은 후에는 그 시간을 견디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1권만 읽은지금은 참을 수 있다. 아직 일곱 권이 남아 있기에... 아직은 이재일 님을 못 믿겠다.
8권까지 나왔지만,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했지만... 나는 그럼에도 이재일 님을 믿지 못한다. 하지만 기대한다. 마침내 기나긴 기다림을 보상하듯 쟁선계 완결이 나오면 나는 단번에 양장본을 구입하는 것으로 그의 노고를 보답하겠다. 그게 이재일 님에게 얼만큼의 보상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것(구입)으로...
그에게 보답하겠다.
에휴~ 쓰다보니 폭주해서 별 내용도 없는데 이렇게 긴 글이 되고 말았네요... 암튼 이재일 님 기원합니다. 완결 쟁선계를...
P.S. 근데... 궁금한 것이 있네요.. 언젠가... 이재일 님의 새로운 글이라고 "북경반점"인가? 아무튼 무슨 반점이라고 불리우는 소설 일부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통신연재를 했던 것 같은데... 그 글의 소식을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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