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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상현 천년무제1,2권 감상

작성자
Lv.74 수달2
작성
10.12.30 16:35
조회
3,587

작가명 : 성상현

작품명 : 천년무제

출판사 : 파피루스

0.

패닉의 노래 UFO 중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왜 모두 죽고 나면 사라지는 걸까

난 그게 너무 화가 났었어

남몰래 그누구를 몹시 미워 했었지

왜 오직 힘들게만 살아온 사람들

아무것도 없는 끝에서

어딘가 끌려가듯 떠나는 걸까

살찐 돼지들과 거짓 놀음 밑에

단지 무릎 꿇어야 했던

피흘리며 떠난 잊혀져간 모두“”“

살다보면 누구나 하늘을 원망하고픈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살찐 돼지같이 타인에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잔인했던 자들은 호의호식하며 마냥 천수를 누리는 와중에, 눈물이 날 만큼 고귀한 세상의 한 줌 소금 같은 사람들이 너무도 쉽게 덧없이 죽어 떠나가는 것을 목도할 때, 도대체 죽음은 이렇게도 무심할 수 있을까 싶은 의문이 든다.

그러나 원래 그렇게 생겨 먹은 것이 세상이다. 세계는 생동하나 무심無心하고 무감無感하다. 하늘은 인간을 짚으로 만든 개처럼 취급한다는 옛말은 그래서 뼈아프다. 옳고 그름,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 악, 그리고 마음. 모두 인간의 문제일 뿐이다. 세계는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사람은 목적을 추구하지만 세계는 철저하게 무목적적이고 우연적이다. 그래서 착한 사람이든 악인이든 무참하게도 아무렇지 않게 그저 ‘우연히’ 어느 순간 죽는다.

전국시대의 무인이었던 송인은 죽음의 무차별적인 우연성에 대해 몸으로 깨우쳐 알고 있다. 수많은 나라(이 때의 國은 우리가 떠올리는 현대국가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차라리 지방 군벌 정도에 가까웠고 그만큼 혼란스러웠다고 함)들이 난립하여 혼란한 고대의 중국 대륙에서 죽음은 일상적인 풍경이었고,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익숙해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적어도 이런 점에 있어서 송인의 성격은 그의 성장 배경과 적절한 조화를 이룬다.

그러나 이렇듯 우연한 죽음으로부터 드러나는 세계의 무심함이 사람들을 분노하게 한다. 어째서 ‘옳음’과 ‘정의’ 조차 우연에 불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위로해줄 수 있는 이들이 고통 받지 않을 수 있는 세계를 위한 정의의 원칙은 어째서 다른 모든 원리들에 우선하는 “진리” 가 아니었을까? 어째서 그토록 소중한 신념들이 단지 짐승들의 세계에서 적용되는 본능 차원의 약육강식의 원리와 근본적으로 다를 것은 없었다고, 그 신념들은 필연적으로 옳은 것이라기보다 결국 우연을 기반으로 성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시인해야만 했을까? 가장 아름다운 것들과 가장 추악한 것들이 그 기원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것은 괴로운 진실이다. 아이를 강간하고 폭력을 일삼는 자들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새벽부터 일터로 나서는 이를 보며 그들이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가 아니며, 그래서 그 둘의 옳고 그름을 ‘근본적인 차원에서’ 가름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란 어렵다.

1.

그래서 송인은 분노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는 단지 분노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을 하지 못했다. 그는 수많은 죽음을 보아왔고, 그 자신이 수많은 죽음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에게 인의仁義는 죽음 앞에 도리 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으로만 보인 것 같다. 그는 결코 세상에 만연한 죽음을 막을 수 없었고 설령 전국시대의 혼란을 종식시킨다고 해도, 여전히 죽음은 아무런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은 채 선인이든 악인이든 가리지 않고 찾아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역사책을 보면서 송인이 비웃었던 자들 역시 송인처럼 원칙 없는 세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비웃음은 송인 자신에게로 되돌려져야 하기에 일종의 자조이다.

송인이 내세우는 이상한 신조는 다음과 같다.

1) 어린 아이는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2) 내 사람은 반드시 지켜줄 것.

3) 그 외에는 죽든 말든 알아서 할 일.

이 원칙들을 통해 송인의 내면세계를 짐작해볼 수 있다. 이 원칙들은 일종의 타협이다. 비참한 전국시대의 무인으로서 송인이 옳음을 견지할 수 있는 한계지점이다. 옳은 것을 옳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말할 수 있는 세계가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내 손안에 닿는 사람들은 지켜내고 싶다, 는 의지가 엿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경우에 따라 적용의 범위와 강도를 고무줄 늘이듯 조절하면서까지, 그 안에 애매모호함을 품고 있는 불완전한 위의 세 원칙을 송인이 굳이 고수할 이유가 없다.

가령 송인이 말하듯이 어린 아이에게 관대해야 할 이유가 그들에게는 노력해볼 기회조차 없었기 때문이라면, 대체 몇 살까지 어린아이로 보아야 하는지, 기회의 유무가 문제되는 것이라면 어른이지만 노력하고 싶어도 노력할 기회조차 박탈당한 채 약자로만 살아왔던 어른들은 단지 그들이 어른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감내하도록 내버려 두어야만 하는 것인지 따위의 문제가 남는다. 이러한 난점에도 송인은 이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는데, 이러한 개인적 신조를 고수하는 것이 난세였던 전국시대에 최소한의 신념을 지킬 변명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송인의 고용인들의 위치는 상당히 애매하다. 만약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한다면 송인이 복수해줄 것이 틀림없다는 데서 그들은 송인에게 ‘내 사람’ 이지만, 그들은 동시에 분명한 소속(가령 하오문)이 있는 계약직이다. 그들의 소속처와 송인의 이해관계가 갈릴 때 고용인들은 아직 송인을 따른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을 만큼 송인과 가까워지지 않았다. 때문에 그들은 전적으로 송인의 사람인 것이 아니다. 약삭빠른 송인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송인은 평소처럼 무서우리만치 냉정하고 현실적인 태도로 일관하지 않는다. 그의 두 번째 원칙은 다소 느슨하게 적용된다.

더군다나 재물을 좋아하는 그가 마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망설임 없이 금자를 투척한 것은 도무지 그의 신조와 양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고용인들이 제시한 논리가 나름대로 그럴듯하다고는 해도 사실 뜯어보면 송인이 그대로 따라주어야 하는 논리적 근거는 빈약하다. 고용인들이 끝까지 항의한다면, “너희들이 구하고 싶은 것이니 너희들의 힘으로 구해라. 내가 지켜줄 수 있는 것은 너희뿐이야. 그게 싫다면 강요하지 않을 테니 남아서 뜻대로 해라.” 하고 떠나버리는 것이 송인의 일상적 태도에서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이다. 그와 고용인들은 아직 진심으로 정을 나누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가 소유한 금자와 무력이라면 새로운 고용인을 구해 그에게 필요한 음식과 무공서 등을 얻는 것은 여반장이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는 결국 고용인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마을 사람들을 구한다. ‘힘 센 놈이 정의다.’ 라고 읽혀지는 그의 표면적인 태도와 달리 그에게 옳음을 옳음으로 주장하고자 하는 마음이 남아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2.

다시 한 번, 세계는 생동하나 무심하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세계에 있어 문제거리조차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상기해야만 한다. 전국시대는 그토록 혼란했으나 그 아수라장 속에서 인의를 말했던 공자와 같은 이가 있었음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송인과 마찬가지로 만연한 죽음 속에서 그는 어떻게 사람이 사람다워야 하며, 단순한 힘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세계가 무심하다고 하여, 인간의 사회가 무심해야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시작이 무목적적이라고 해서 나중에도 그래야만 할 이유는 없다. 세계는 순결하게 무심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사람에게는 마음이 있고 이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에게 공감하고 같이 울어줄 수 있다. 인간 사회는 세계 위에 성립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 존재의 특성을 도입한 새로운 원리로 사회를 구조화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지 못하리라는 법도 없다. 단순한 약육강식이 아니라 서로에게 의지처가 되어줄 수 있는 사회는 가능하고, 옳고 그름을 나누는 것도 가능하며, 정의도 가능한 것이라고 믿는다. 비록 정의의 근본적인 기원이 불의와 꼭 같이 우연적인 것일 뿐이라고 해도, 거기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히틀러와 나이팅게일이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간 성상현의 작품 속 주인공들이 언제나 조금씩 성장해왔다는 점을 주목하고 싶다. 아무것도 모른 채 어리숙했던 이현이 끝에 가서 ‘옳음義’으로 관철시킨 신권이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구했던 장면, 지난 삶을 후회하던 고신이 말미에서 자신의 인생에 비록 실수가 있을지언정 그 삶이 진정으로 아름다웠음을 깨닫는 장면, 진수현이 유사인간들과 마법사와 보통사람들의 공존을 위해 아버지와도 같던 석철을 넘어서려던 한 걸음을 기억한다.

송인은 과연 어떤 성장을 보여 줄지 기대가 된다.  

p.s. 개인적으로 현대마법사가 제일 취향인데 현대마법사는 가망 없이 연중입니까?


Comment ' 7

  • 작성자
    Lv.9 소봉
    작성일
    10.12.30 17:33
    No. 1

    초기작들과 비교하면..
    주인공 캐릭터가 대세하고 타협한걸로 보이더라고요.
    순수하게 작품 내적으로 평가하신 글은 잘 읽었지만 아무래도 외적요인이 더 클거 같네요.(판매량이라든가...)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 구어체고수
    작성일
    10.12.30 20:15
    No. 2

    궁금한게..
    주인공은 내공을 왜 쌓는걸까요.
    자면서까지 내공 축적하려다 2천년을 잠들었는데..
    내공 쓰는 장면이 안나오네요.
    경공은 축지법이고
    싸울때는 내공보다는 초식이나 간격, 보법등에 의존하는데..
    검기가 뭔지도 모르는거나, 어떤 중한테 당하는거 보면 외부나 내부 어느쪽으로도 내공의 운용은 모르는거 같은데..
    2천년전 친구의 이기어검도 선술에 가깝고.
    외공이 탁월한것도 아니고.
    지금까지 나온 장면만 보면 내공을 모을 이유가 없는데 왜 자면서까지 모은건지 모르겠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비온뒤맑음
    작성일
    10.12.30 21:55
    No. 3

    처음엔 참 참신하다 생각하며 봤는 데 읽을 수록 잘 모르겠더군요. 괜찮긴 한 데... 뭔가 확 안 와닿는다고 해야 하나... 일단 후속권은 볼 생각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8 悲戀歌
    작성일
    10.12.30 22:00
    No. 4

    2천년의 내공..... 그게 다 몸에 들어가기는 하나.;;;;;
    무공 이해도도 너무 없는... 2권에서 뜬구름 잡는게 이유가 있고 못 알아 듣기는 하지만... 자면서 내공을 수련하는 무공도 만들었는데.;;;
    그래도 잼나게 보긴 했네요. 요즘 들어서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금원
    작성일
    10.12.31 00:27
    No. 5

    초기작들은 이상이라곤 찾아볼수 없을정도로 염세적이지 않았나요? 지금이 한결 편한데 말이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0 코끼리손
    작성일
    10.12.31 16:51
    No. 6

    이 작가분은 항상 소재는 좋았어요.
    필력에서 미끄러졌을 뿐.
    과연 발전 하는 낌새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재미는 있으니 항상 기대는 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흐림
    작성일
    10.12.31 23:34
    No. 7

    다른건 다 좋은데 천년무제 한자가 天年으로 쓰여있습니다. 예전에 천년용왕?인가 하는 책때도 저랬는데 요즘 출판사는 참 발로 일하나봐요.

    찬성: 0 | 반대: 0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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