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필립 리브
작품명 : 모털 엔진
출판사 : 부키
'바람이 세차게 불고 하늘은 잔뜩 찌푸린 어느 봄날, 런던 시는 바닷물이 말라 버린 옛 북해를 가로질러 작은 광산 타운을 추격하고 있었다.'
대뜸 도시가 타운을 추격하고 있다는 어이없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머나먼 미래, 그야말로 41세기가 고대로 불리는 머나먼 미래의 이야기입니다.
핵전쟁으로 추정되는 머나먼 고대의 60분 전쟁으로 종말은 맞은 지구, 문명은 파괴되고 자연은 멸종직전에 몰린 그 시대에 인류는 끈질기게 살아남아 화산폭발, 빙하기 등의 자연재해로 부터 살아남기 위해 견인도시 즉 거대한 궤도바퀴와 증기모터에 의지해 움직이는 도시들을 만들어 냅니다. 큰 도시가 작은 도시를 잡아먹으며 생존해야 한다는 '도시진화론'의 사상에 따라 오늘도 런던 같은 대도시는 판체루슈타트-바이로이트 같은 독일 출신 광역 대도시를 피해 도망다니고, 염전을 갉아먹는 광산타운들이나 소소한 농업타운들을 사냥해가며 살아갑니다. 도시사냥을 피해 하늘로 도망친 에어로헤이븐이나 대양을 떠다니는 푸에르토 안젤레스, 얼어붙은 북해를 미끄러져 다니는 아크에인절같은 대도시가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대륙과 천공과 바다를 뛰어다니며 서로 잡아먹고 사는 기계의 먹이사슬이 새겨난 것이죠.
심지어 대도시가 버린 대변같은 쓰레기 더미를 헤치거나, 연료가 없어 굶어죽은 도시의 사체에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작은 타운들의 묘사는 정말 작가의 상상력에 경의를 표하게 만듭니다.
견인도시들과 견인도시들이 모든 자연을 멸종시킬것이라는 반견인주의자들의 대립 속에서 비행무역상, 해적들, 고물수집상 같은 아웃사이더들이 세계관을 더욱 멋지게 합니다.
하위계급이 머무는 4갑판 출신의 톰은 부모가 런던의 갑판이 함몰된 사건으로 사망한 후 도시 길드의 3급 견습생으로 2갑판의 박물관을 관리합니다. 견인도시의 진동이 없으면 편히 잠을 못자고, 도시진화론으 숭배하며 한번도 나가본적 없는 아웃컨츄리(도시바깥)에 대한 혐오감을 가진 도시민이죠.
이 소설은 톰이 어떤 사건을 도시밖으로 나가게 되고, 그가 알고 있던 가치관과 상반되는 사건을 겪으면서 모험을 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덕트와 튜브, 파이프와 터빈이 엉켜 있고, 증기와 아르곤 램프의 불빛 속에 펼쳐지는 이야기는 스팀펑크물을 찾으시는 분에게 적극 추천드립니다.
다만 기막힌 상상력이 빛나는 세계관에 비해 이야기의 구성은 좀 허술한 거 같고, 복수심에 불타는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진 소녀 헤스퍼 쇼와 고대의 전쟁유물인 사이버그 군인, 부활군 슈크리드 빼고는 그리 캐릭터가 매력적이지 않더군요.
뭐 그래도 도서관에 가서 꽂혀 있으면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신다면 반드시 한번 뽑아서 봐볼 가치는 있다고 봅니다.
4부작중 1부작이고, 앞으로 계속 시리즈로 나온다고 하니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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