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태규
작품명 : 천의무봉
출판사 : 발해
주인공은 추남이다. 살이 뒤룩뒤룩 찐 돼지다. 하지만 집은 부자다. 덕분에 주인공은 어렸을 때부터 여러 고난에 시달려왔다. 납치에, 납치에, 납치... 자신에게 호의를 가지고 접근하는 사람은 일단 무시하고 봐야 할 상황이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부모님은 주인공에게 관심도 없다. 납치당했을 때 요구한 금액은 무시하거나 깎으려고 들고, 평소 빈둥거리던 식객-전대 마두 등-들을 보내 아들을 데려오는 정도다.
개인적으로 작가분의 전작 <풍사전기>를 즐겁게 읽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풍사전기와 천의무봉의 비슷한 점이다. 풍사는 고수다. 그것도 절대적인 무력을 보유한 절대고수다. 하지만 그가 얻은 게 뭐가 있나? 마소선과 이별하고, 믿던 의형들에겐 배신까지 당한다. 기껏 있는 사형이라고는 정신줄 놓은 미치광이 살인마라서 발품팔아 그것도 막아야한다. 결국 풍사에게 남은 건 풍와숙과 만월야밖에 없다. 형로는 처음에 바라던 바를 이루어 하늘과 땅을 벗과 이불삼아 지내게 된다. 이것을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람이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큰 상처는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이건 윤현승 작가님의 라크리모사식 엔딩이다. 기껏 세계멸망을 막아놨더니 가족도 잃고 주변도 초토화되고 제가 멸망을 막은것을 아는 사람도 없다. 결국 주인공이 하는 말은 "이제 뭘 하지?" 정도. 형로도 똑같다. 이제 뭘하며 사나?
다시 천의무봉으로 돌아가자. 난 처음 책을 읽고 주인공이 너무 유쾌하게 말하기에 이게 코믹무협이구나! 했다. 풍사전기가 재밌긴 재밌었지만 내심 맘에 안든 점도 많았기에 실실 웃으면서 봤다. 그런데 한 60페이지쯤 가보니까, 이게 웃는게 웃는게 아니더라. 주인공의 상황은 끔찍하다. 시작부터 배신에 납치로 시작한다. 그것도 사랑하던 정인의 손에 의해서. 하지만 주인공은 꾹꾹 누른다. 누르고 삼켜 꽁꽁 싸매어 제 상처를 보이려 하지 않는다. 그렇게 새기어진 상처가 초비윤의 가슴속에는 몇이나 될 것인가? 2권까지 가보면 더 가관이다. 굳게 믿던 아군이 아군이 아니란다. 더 골때리는것은 정작 그 자는 주인공을 '제물'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이쯤되면 절대 웃을 수 없다. 실실 나오던 웃음은 접어들고 가슴속에서 뭔가 끓어오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포무천의가 등장한다. 고금제일고수였던 반고지치는 제자를 만들기위해 자신과 똑같은 신체를 구성하려고 만든 옷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포무천의다. 이놈의 옷은 살아 움직이며 주인공의 신체를 마구 주물러 새로운 무골로 탄생시킨다. 그 과정에서 절대미남이 되는것은 필수다. 이렇게만 나열하면 양판소의 정석이다. 하지만 이 미남얼굴이라는 게, 주인공의 숨겨진 미모 같은게 아니라 반고지치의 얼굴이다. 나르시스트였던 반고지치는 제자의 얼굴까지 완벽을 추구한 것이다! 하루아침에 남의 얼굴로 둔갑한 초비윤의 심정은 어땠을까. 자고 일어나니 내 얼굴이 조인성의 얼굴로 변한 상황이다. 단순히 잘생겨졌구나! 하고 웃기만 할 수는 없으리라. 게다가 정작 부모는 뭐가 달라졌는지 알지도 못한다. 맙소사. 이 정도면 병이다. 사람 얼굴 못 외우는 병...
형로는 태어났을 때의 운명의 굴레를 벗어던지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다. 사랑도 잃고, 희망도 잃고... 노래가사 같은데. 초비윤도 마찬가지다. 바라지도 않는 부잣집에 태어나서 복은 못 누리고 화만 누리고 있다. 과연 초비윤은 제 운명에서 탈출하기 위해 무엇을 희생하게 될까? 앞으로가 걱정스럽다.
p.s. 비정한 작가님, 제발 사랑쯤은 남겨주세요....쿨럭.
Comment '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