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이영도
작품명 : 피를 마시는 새
출판사 : 황금가지
이영도님 작품은 다 봤습니다.
눈을 마시는 새는 개인적으로 이영도님이 쓰신 소설중에서 제일 훌륭했다고 생각이 듭니다. 독특한 세계관 구축부터, 적절한 캐릭터 구성, 이야기의 전개방식 등등 눈을 마시는 새에서 이영도님의 필력이 가장 빛을 발했다고 생각합니다.
피를 마시는 새는 이런 눈을 마시는 새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소설입니다. 전작의 주요 캐릭터로 '눈물을 마시는 새'로서 통칭된 사모 페이가 등장하지요. 그렇지만 사모 페이가 주 등장 인물은 아닙니다. 전작이 왕을 다뤘다면 이번 작은 황제를 다뤘다고도 볼 수 있겠죠.
작가가 바라보는 왕과 황제는 다릅니다. 왕은, 구심점입니다. 세상의 흐름 속에서 그 흐름의 눈물을 마시는 새입니다. 황제는 지배자입니다. 세상의 흐름을 지배하고 거기서 나오는 피를 마시는 새죠.
전작의 사모 페이는 세계의 흐름 속에서 눈물을 마셨고, 종국에는 신의 눈물마저도 마셨습니다. 그녀는 군림했지만 지배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번 작품의 메인 인물은 치천제입니다. 사모 페이 이후로 황제가 되어 제국의 기틀을 쌓은 천재적 인물 원시제가 이른 나이로 죽어서 완성되지 못한 제국을 지탱해 나가는 인물이죠.
본문에서는 제국이 완성되지 못했기에 이를 유지하려면 피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치천제는 따라서 하늘의 요새로 대변되는 하늘치에 도시를 설립해서 하늘을 떠돌아 다닙니다. 그리고 제국에 방해되는 것이 있으면 제거하지요.
그리고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얽힙니다. 인구수의 증가로 특성마저 변해 가는 레콘을 걱정하는 아실과, 황제를 살해하려는 레콘 지멘의 이야기. 차기 황제로 낙점받은 엘시 에더리. 그리고 도깨비에게서 자라서 규리하 영지의 지배자가 되고 아버지와 대립하는 정우. 기타 여러 인물들이 나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종국에 가서는 하나로 모입니다.
작가는 플라톤이나 마키아벨리의 철인 군주론처럼 능력 있고 잔혹한 황제를 등장시켰습니다. 본문에서 이러한 황제는 '제국'이라는 거대한 기둥에서 잘못된 곁가지들은 과감하게 쳐내는 정원사로 비유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궁극에서는, 지금의 황제 치천제 본인이 원시제가 제국을 구상하면서 제국의 영속성을 위해 대비해 놓은 것이라는 것이 밝혀집니다.
치천제는 용이었고, 용은 일종의 식물형 인간으로서 키우는 사람에 따라 어떤 형태의 생명체도 될 수 있지요. 원시제는 치천제를 일만 육천년 동안 제국 사람들의 발전을 위해 가지를 쳐 줄 정원사로 일구어 놓았습니다.
소설 내에서는 이 계획이 나름 원대하게 표현됩니다. 치천제는 초인적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사람들을 통제할 힘을 갖추기 위해 신으로서 군림하려 합니다. 그리고 신으로서 걸맞은 힘도 갖춥니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제국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를 묻습니다. 제국을 위해 곁가지를 칠 수 있는 잔혹함은 과연 누구에게 부여받는지 묻습니다. 이는 인류의 자유 의지와 관련된 이야기도 됩니다.
엘시 에더리는 제국에 충성을 다하는 인물입니다. 그가 천재적인 전략가로 묘사됨에도, 정치적으로 고민만 반복하고 원칙만 고수하는 모습은 어찌 보면 바보스럽기까지 합니다. 엘시 에더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치천제에게 조종당합니다.
그렇지만 엘시 에더리에게는 한 가지 원칙이 있었습니다. 제국의 황제가 사라졌을 때 그는 귀족원을 통해서 정상적으로 황제를 옹립하려고 합니다. 이는 제국의 황제의 권위는 제국이 부여하는 것이다라는 원칙일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엘시 에더리는 이 황제의 권위는 사람들을 위해 쓰여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요.
치천제는 엘시 에더리의 이런 생각마저 컨트롤하지는 못했습니다. 따라서 종국에 엘시 에더리는 치천제에게 반발하지요. 치천제는 결국 자신의 의도를 성공치 못하게 됩니다.
여기에 내용상에서 용은 인간이 아닌 것으로 나오고, 치천제가 용인 이상 인간이 아닌 것에게서 지배를 받을 수는 없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달리 말하자면, 아무리 신이라도 인간을 지배할 수는 없다는 말이지요.
피를 마시는 새는 작가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전작들보다도 더욱 심도있게 그려냈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읽기가 전작들보다 조금 힘들어졌다고 생각하며, 작가가 깔아놓은 복선들을 모조리 회수했다고 보기에는 조금 아쉬운 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작들보다 위트가 조금 줄었으며(아예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인물들은 더더욱 작가의 대변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제국의 필요성으로 설명되는 레콘의 변이가 나오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으로 작가는 절대자를 등장시켰지만, 등장 인물들이 절대자를 없앰으로서 이 레콘의 변이를 막을 적절한 방법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작가는 이 레콘의 변이를 제어하는 방법으로 종교를 깔아 주었습니다. 치천제는 자신이 신이 되려고 하면서 이 신의 신앙을 레콘들에게 주입시켜 주었지요. 그리고 엘시 에더리는 치천제를 죽이지는 않고 봉인합니다. 이는 드러나는 신은 절대 필요없지만 종교 자체의 의의는 부정하지 않는다라는 작가의 생각일 것입니다.
다만, 답변 없는 신앙은 신자가 해석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마련이며 이러한 대상이 되는 신자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레콘입니다. 인류의 역사상으로도 십자군 전쟁이라던지 마녀사냥 등 종교의 광신으로 인한 살육은 매우 많았습니다. 레콘이 이 광신성을 띠게 되면 그 위험성은 우리 인류의 위험성보다 훨씬 배가되겠지요. 누구도 막을 수 없으니까요.
따라서, 작가가 인류의 실질적 지배자로서 신은 부적합하다고 설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레콘의 종교적 신앙이 과열되면 소설의 미래에는 다시 봉인한 신을 인간의 손으로 풀어 놓어야만 하는 결말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답변 없는 종교의 특성과 달리, 이 세계에서는 답변을 줄 수가 있으니까요. 문제는 인간이 봉인한 신이 자신을 봉인한 인간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입니다.
이외에도 치천제가 신으로 변화되는 과정이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피를 마시는 새는 괜찮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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