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하세쿠라 이스나
작품명 : 늑대와 향신료
출판사 : 학산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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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상인 로렌스는 자신의 짐마차 짐칸에
실어놓은 보릿단 속에서 잠들어 있던 소녀를 발견한다.
늑대의 귀와 꼬리를 가진 아리따운 소녀의 이름은 호로.
자신을 보리의 풍작을 관장하는 신이라고 소개한다.
“나는 신이라 불리며 오랜 세월 이 땅에 매여 있긴 했지만,
나는 호로 이외에 그 누구도 아니야.”
로렌스는 그녀가 정말로 풍작을 가져다주는
늑대의 화신일까 반신반의하면서도 그녀의 뛰어난 화술에
교묘히 넘어가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그런 두 사람의 나그넷길에 뜻밖의 돈벌이 이야기가 날아든다.
그것은 가까운 장래에 어떤 은화의 가치가 올라갈 것이라는 것….
의심은 되면서도 로렌스는 그 이야기에 동참하기로 결정하는데….
제12회 전격소설대상 <은상> 수상작.
여지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경제 판타지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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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늑대와 향신료 ◇
과거 일본의 모 소설 잡지에서 라이트노벨 여주인공 인기 투표를 한 적이 있다. 거기서 내로라하는 유명 소설의 히로인을 다 제치고 그랑프리를 차지한 것이 늑대소녀 '호로'였다. 투표인단의 수가 적어서 대중적인 인기의 척도로 볼 수는 없지만, 그 점을 염두에 두더라도 대단한 선전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때부터 이 작품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던 와중에, 마침 국내에 정식 발매되는 행운에 힘입어 손에 넣을 수 있었다.
◇ 경제 판타지 ◇
늑대와 향신료가 내세우는 캐치프레이즈는 「경제 판타지」다. 듣기만 해도 어려워 보인다. 읽기 어려운 게 아니라, 쓰기 어려워 보인다는 것이다. 어설프게 경제학원론 한번 읽은 수준의 체화되지 않은 경제지식을 스토리에 접목시켰다가는 졸작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심도있게 경제를 파고들어 버리면 이번엔 독자들이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어떤 수준으로, 어떤 형태로 '경제'와 '판타지'를 결합시킬지 그 밸런스를 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늑대와 향신료는 일단 무대를 중세 정도로 발달한 가상의 세계로 옮김으로써 독자가 지닌 경제적 상식과 거리를 둔다. 그리하여 현대인들이 어설프게 갖고 있는 경제적 지식(이라 생각하는 토막상식과 선입견)의 방해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다. 과거의 경제와 현대의 경제는 그 메커니즘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섣불리 소설 속의 논리에 딴지를 걸 수가 없다.
그 후, 중견급 영세 행상인인 주인공 '로렌스'를 내세워서 늑대와 향신료의 세계가 지닌 경제 원리, 상도에 대해 조금씩 조금씩 풀어놓는다. 로렌스는 미묘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땅만 파는 농부도 아니고 거대한 자본을 움직이는 대상도 아니다. 풋내기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노련한 상인도 아니다. 그가 갖고 있는 상행위에 대한 관념은, 그래서 대부분 옳겠지만 틀릴 수도 있다. 그런 로렌스를 통해서 '이세계'의 상도를 보여주어 독자의 비판의식을 우회하며 부드럽게 이야기를 전달해 준다.
로렌스는 행상인이고,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그는 각 지방에 인맥을 쌓으려 노력하고, 가는 곳마다 항상 귀를 열어두고 정보를 모으고, 상인답게 쉽게 사람을 믿지 않으며 경계심이 상당히 높다. 그의 사고방식이 현대의 상식과는 거리가 멀지만, 적어도 그 시대의 상인이 가질법한 사고체계인 것은 사실이다. 이게 매우 그럴듯 해서 실제로 중세시대의 상인을 보는 듯 하니 몰입감이 높을 수밖에 없다.
◇ 로렌스와 호로 ◇
그런 그와 함께 하게 되는 것이 늑대소녀 '호로', 자칭 요이츠의 현랑이다. 15세 정도 소녀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수백년은 넘게 살아온 신령스러운 늑대이며, 변신능력을 갖고 있다. 귀와 꼬리는 드러나지만. 그녀는 우연히 로렌스와 함께 하게 되는데, 호로와 로렌스의 관계야말로 이 작품 최고의 묘미라 할 수 있다.
둘의 관계는 여타 소설에서 히로인과 주인공이 만나 친해지듯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최초에 호로를 만났을 때만 해도 로렌스는 나름 노련한 상인답게 극히 경계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런 저런 말로 떠보고, 시험하고, 결국 변신하는 모습까지 보고서야 악령들린 소녀가 아니라 정말로 늑대인 것을 믿어준다. 그 후에도 쉽게 경계심을 풀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호로는 변화무쌍한 성격의 신령스러운 늑대고, 로렌스는 뼛속까지 상인이 되어가는 중인 약간 딱딱한 청년이니, 둘의 관계가 단숨에 러브러브모드로 돌변할 리가 없다. 그들의 관계는 마치 주거니 받거니 캐치볼을 하는 듯도 하고,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는 듯도 하다.
호로가 가볍게 성질을 긁으면 로렌스가 불퉁하니 받아치고, 호로가 은근슬쩍 애교를 부리면 로렌스는 풀어진다. 호로가 심술부리면 로렌스는 더 심술부리고, 삐진 것 같으면 꼬리칭찬같은 걸로 풀어주고, 호로는 기분이 풀린 듯 웃어주지만, 그러나 사실 독심술로 진심이 아니란 걸 알고 있기도 하고. 서로 툭툭 주고받으며 관계를 쌓아가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두 캐릭터에 굉장히 어울려서 읽는 내내 즐겁기 그지 없다.
◇ 매혹적인 늑대소녀 ◇
호로같은 경우 캐릭터성이 매우 강하여 독자들에게 크게 어필할 만 하다. 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모에모에하다는 거다.(모에는 소중하다) 호로는 소녀의 모습이지만, 커다란 두 귀에 풍성한 꼬리가 달려있다. 네코미미는 아니지만 하여간 동물귀 모에인 이들(물론 본인포함)에게는 일러스트의 호로가 직격탄이 될 수 있다.
성격은 종잡을 수 없지만 애교가 철철 넘쳐서 미워할 수가 없다. 자신의 매력을 확실히 자각하고 있고 그것을 이용할 줄 안다. 스스로를 현명한 늑대라 부르며 높은 긍지를 갖고 있지만, 오랜 타향살이에 외로움을 느끼는 모습은 보호욕구를 자극한다. 기나긴 세월 동안 쌓아온 지식과 지혜, 타고난 현명함으로 놀라운 통찰력을 발휘하곤 하지만, 사과를 너무나 좋아한다던가 꼬리를 자랑스러워 한다던가 하는 귀여운 면모도 많다. 왠지 로렌스를 갖고 노는 걸 좋아하는 것 같지만 필요할 땐 확실히 도움도 준다.
오랫동안 짐마차 위에서 홀로 이마을 저마을로 떠돌아다니며 사무치는 외로움에 힘들어 하던 로렌스에게 이 정도로 이상적인 파트너가 있을까? 아름답지, 말재주 좋지, 애교넘치지, 지혜롭지, 변신하면 엄청 강하지, 하는 짓도 귀엽지, 소녀 형태라 식비도 별로 안들지, 그야말로 최고의 짝인 것이다.
◇ 둘의 이야기 ◇
로렌스와 호로가 만나서 어떻게 함께 여행을 하게 되는가 하는 내용이 1권이라 할 수 있다. 글로 쓰자면 '그저 둘이 만나서 함께 우여곡절을 겪다보니 정이 들어서 한동안 함께 하게 되었다'라는 밋밋하기 그지없는 설명이 되겠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느낌이 사뭇 다르다.
외로움에 힘들어 하던 로렌스, 오랫동안 살던 마을에서 버림받은 처지의 호로, 둘이서 티격태격하기도 하고 서로 미소짓기도 하며 주거니 받거니 여행을 한다. 그 와중에 큰 사건이 일어나고, 생사의 위기를 겪고, 함께 그것을 넘어서면서 갈등하기도 하지만 결국엔 마음이 통한다. 어찌보면 잔잔하게 진행되는 이 과정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가슴 졸이게 하는지 모른다.
◇ 총 평 ◇
솔직히 처음 읽을 때 나의 기대치는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다. 적당한 경제상식에 의거한 가벼운 사건전개와 노리고 만든 모에 늑대걸, 이정도가 나의 예상이었다. 단순히 귀여운 캐릭터 즐기려고 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놓고 보니 기대를 뛰어넘는 수작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야기는 가볍지 않았고, 호로는 단순한 모에유발 캐릭터가 아니었다. 어째서 현지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지 알 수 있었다. 한권만으로 평가하기엔 이른 감이 있지만, 1권만 보더라도 충분히 수작이라 할 만 하다.
http://blog.naver.com/serpent/110023126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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