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문재천
작품명 : 마물
출판사 :
- 미리니름 많습니다. 주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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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의 로망이 돌아왔다.
트랜드에 지친 독자여.
결코 꺼지지 않는 무협의 로망을 맞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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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트랜드에 지친 것은 아니지만 좀 색다른 무협소설을 보고 싶은 마음은 있다. 문재천 작가의 『마물』은 색다르다를 넘어서 *전혀* 다르다. 스타크래프트로 비유해 보자면, 여타 소설이 같은 종족에 테크트리만 달랐다면 마물은 아예 종족 자체가 다르다고 볼 수 있을 정도.
그만큼 기존 무협의 트랜드와는 상관없는 길을 걷고 있다. 비교할 만 한 작품은 (방향이 전혀 다르긴 하지만) 한상운님의 무림사계 정도일까. 너무나 기존의 무협과는 궤를 달리 하기 때문에, 어디가 다른가를 설명하는 것보다 어디가 비슷한가를 찾는게 더 쉬울 정도다.
이야기의 핵심요소는 '패낙'이라는 매우 독특한 심법이다. 이 무공은 인위적으로 이중인격을 유발하며, 새로 생겨난 하나의 인격은 '유령사'라는 존재로 독립하게 된다. 일종의 분신과 같지만 독자적 인격을 소유하고 있고 점점 발전하면서 그 성격이나 발휘할 수 있는 힘이 달라지고 주인과 유령사 사이의 관계도 변해간다.
보통 소설이라면 이 독특한 심법을 우연히 배운 발랑 까진 주인공이 나올 것이다. 그걸로 이득을 보거나, 미녀들을 꿰어내거나, 보이지 않는 유령사의 힘으로 짖궂은 일을 꾸미며 킥킥거리거나, 그딴 짓거리나 할 게 뻔할 뻔자다. 그러다 점점 능력은 먼치킨을 향해 치달을 테고 나중엔 무림의 운명을 걸머지겠지. 하지만 마물에서는 그런 뻔한 수순을 전혀 밟고 있지 않다.
마물에서 주목한 점은 패낙이라는 심법의 정신적인 면이다. 이 능력을 배운 스승과 네명의 제자들이 각각 어떤 식으로 또 하나의 인격을 발현하고, 어떻게 느끼고, 갈등하며, 받아들이는지를 보여준다. 각자 패낙의 발전 양상은 전혀 다르며, 그중 가장 극적인 것은 스승이다. 그가 유성검이라는 귀물을 만들고, 빠져들고, 피에 취해가는 모습은 무협판 공포영화나 다름없다.
일반적인 무협에 나올 만한 형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말하자면 뒷표지 소개처럼 기존의 트랜드를 부정하고 있다. 주인공은 그다지 기재도 아니고, 기연도 없다. 패낙이란 심법만이 기연이라면 기연일까.
사부는 이용해 먹으려고 가르쳐준 것 뿐이다. 무림에 나와서 후기지수들과 눈빛을 교환하거나, 친구가 되거나, 혹은 그들 앞에서 신위를 발휘하지도 않는다. 무림사봉이니 강호오미니 그런 절세미녀들도 안나오며 당연히 썸씽같은 건 눈씻고 봐도 없다. 항상 나오는 무림대회 이런건 코빼기도 안보이며, 음모를 꾸미는 흑막도 없고, 겉으론 정의로운채 하지만 속으론 곪아터진 무림맹 같은 것도 안나온다.
한마디로 일반적인 무협소설에서 기대할 만한 흔한 구성은 전혀 없다. 그만큼 신선하고 독특하다. 패낙이라는 심법 자체도 독창적이지만 그것을 소재로 풀어내는 이야기는 더욱 다채롭다. 심리묘사 부분에서는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주고 싶다. 사부가 점점 미쳐가는 장면에서는 칙칙한 피가 흐르는 호러무비를 연상케 한다.
작가가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이 느껴진다. 시간의 흐름은 빠르지만 스토리 자체는 약간 느긋해서, 긴 호흡의 글이 될 듯 하니 2권 만으로는 평가하기 힘들겠지만.
그러나 불만스러운 점도 없지 않다. 이 글이 과연 기존의 무협을 기대하고 읽은 독자에게 얼마나 만족을 줄 수 있을까? 마물은 흔한 무협들과 너무나 다르다. 그 뻔하디 뻔한 구도에서 탈피한 것은 박수를 칠 만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항상 느끼던 재미가 빠졌다는 말과도 같다.
주인공의 행보를 보며 만족을 느낄 수 있을까? 이야기 자체에선 물론 재미를 느낀다. 그러나 주인공에겐 별다른 매력이 없다. 그는 그저 살아가다가, 기억을 잃고, 살수가 되고, 패낙으로 연명하며, 또 그냥저냥 살아간다. 무공이 발전은 하지만 딱히 그의 성장과 함께 즐거워할 만한 묘사는 없다. 뭔가 의지를 갖고 살아가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해놓은 일 하나도 없다.
다시 말하자면 대리만족을 줄 만한 요소가 매우 적다. 사실 뻔하긴 하지만, 머리 빈 후기지수들이 잘난듯 나왔다가 개박살 나는 거 보고 좋아하는 사람은 꽤 많다. 할렘물이라고 욕은 해도 미소녀들 나오는 것 싫어하는 무협 독자는 별로 없을 거다. 항상 나오는 거지만 그래도 무림대회같은 데서 신위를 발휘하며 우승하는 거 멋진 것도 사실이다. 킹왕짱 센 고수랍시고 나온 애랑 사투를 벌여 이기고, 그 위명이 천하를 진동시킨다는 따위의 소재도 다들 좋아하는 것들이다.
이런게 전혀 없다. 전혀. 사실 지겹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위에 열거한 그런 하품나오는 소재들은 아니더라도, 적당히 독자가 이입할 만한 요소는 배치해놓았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은 오히려 독자가 멀어지게 할 만한 상황이다.
솔직히 나는 강간씬은 정말 싫다. 항상 쫓기다가 먼저 잡혀서 강간당하는 와중에 주인공과 만나서 여주인의 위기를 알리는 역할인 '시비A'조차도 강간당하는 건 싫어한다.(보통 달려가보면 여주인은 당하기 직전) 그런데 마물에선 히로인급 캐릭터가 매우 어린 나이에, 그것도 자기 사부에게 상습적으로 강간당한다.
물론 어느정도 그런 장치가 필요한 부분이긴 했지만 영 찝찝했다. 아주 껄쩍지근했다. 설에가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아도 역시 찝찝함을 털어낼 수는 없었다. (이 부분은 극히 개인적인 취향임을 밝혀둔다. 사실 작품 내에서 설에는 안좋은 일을 당하고도 멋지게 견뎌내는 사랑스러운 캐릭터다. 그저 워낙 강간이란 소재를 싫어하는 내 취향 탓에 감점요인일 뿐)
그리고 무면객과 신기수사의 이야기. 감탄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정말 멋진 반전이었고, 조금씩 조금씩 밝혀지는 과거 속에서 드러나는 애절한 사연에 깜짝 놀랐다. 그러나 한편으론 가슴에 돌땡이 하나 얹어놓은 듯한 기분을 느꼈고, 이른 나이에 인생무상을 체험해버렸다.
읽으면서 참 깊게 몰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읽는 내내 오싹하고, 찝찝하고, 가슴이 무겁기도 했다. 지극히 신선하고 독특한 향기를 띤 무협인 것은 사실이나 만인에게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을 만한 글은 아닌 것 같다.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릴 듯 하다. 뒷표지 소개대로 트랜드에 지친 분께 일독을 권해본다.
http://blog.naver.com/serpent/11002209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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