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자건 / 노을바다다
작품명 : [Etude] / [바다에 멈추다]
출판사 : 문피아 연재
일전에 [얼음나무숲]에 대한 감상을 쓰면서 잠깐 언급한 적이 있었지만, 장르소설에 대해 한번씩 드는 생각 중의 하나가 바로 <소통의 어려움>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애시당초 글이라는 것이 활자기호로 이루어져 있고 이를 수단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작가입장에서는 자신이 의도한 세계와 나타내고자 하는 주제를 의도한 바 그대로 활자기호로 표현하기가 힘들고, 독자입장에서는 독자 개개인의 깜냥에 따라 나름의 세계와 감상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런 어려움은 작가에게는 글을 쓰는 어려움이 되겠고, 독자에게는 글을 이해하는 어려움으로 나타나겠죠. 음식으로 말하자면, 이런저런 독특한 재료와 나만의 레시피를 써서 누구나 좋아할 일품요리를 만들어내는 것도 어렵겠지만, 그 일품요리에 사용된 재료의 신선함이나 은은하게 풍기는 향신료의 향기를 알아채는 것은 고사하고 일품요리가 왜 일품요리인지도 모르고 나는 그냥 탕수육이 더 좋은데하고 말하는 상황쯤 될까요?
이러한 <소통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쉽게 말해서, 작가가 좀 더 효과적이고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독자에게 자신의 의도를 잘 전달하거나, 혹은 독자 개개인의 깜냥-독해력을 자의든 타의든 향상시킬 수 있으면 될 것입니다. 효과적인 방법을 사용한다는 것은 뭉뚱그려 말해서 작가의 필력이 좋으면 된다는 것이고 다양한 방법이라고 하는 것은 삽화나 음악 등과 같은 활자기호 외적인 장치를 사용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후자의 경우인 독자의 깜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는 장기적으로는 독서량을 늘리거나 좋은 감상/비평글등을 통해서 독해력과 이해력을 높이는 방법 등이 있을 수 있겠죠.
[얼음나무숲]은 이런 작가-독자 사이의 <소통의 어려움>을 해소하기위해 <음악>을 준비해서 청각이라는 다른 감각을 자극하게 했다는 점에서 작가님의 배려가 돋보였었다는 말씀이구요.
그런데 [얼음나무숲]이 글 외적인 부분에서 <음악>이라는 장치를 이용했다면, [Etude]는 글의 내적인 형식에서 특별한 기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로 극중 두 남녀 주인공의 관점을 번갈아가면서 서로 중첩시켜 사건을 진행하는 것이죠. 어떤 특정한 사건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관점이 다름을 나타내는 동시에, 이런 차이 자체가 바로 이 글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주제가 되기도 합니다.
[Etude]의 공지에 보면, <마흔 넷과 스물 넷. 그 메울 수 없는 간극에 관한 이야기>라고 작가님께서 글의 화두를 직접 밝히고 있는데, 아시다시피 이 글은 스물 넷의 천방지축 신입여사원과 엄격하면서도 남모를 아픔이 있는 마흔 넷의 이혼남 부장의 이야기 입니다.
<남자는 화성인이고 여자는 금성인이다>라는 유명한 문구가 있을 정도로 극과 극인 남여간의 관점의 차이와, 여기에 띠동갑보다 더한 세대차이의 간극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글 속에서 하나의 작가 시점으로는 설명하기가 오히려 어려울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이지 않겠어요? 이런 간극을 남여주인공 각자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두 주인공의 서로 메울 수 없는 오해와 그렇기에 더욱 애틋하고 안타까운 이야기를 더 잘 전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처럼 남자라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Etude]를 읽다 보면 어느새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것을 보니 이러한 서술기법이 성공적이면서도 또한 어쩌면 작가의 배려가 아닐까하기도 싶구요.
한편 [바다에 멈추다]에서는 변형된 패러디<parody>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글의 내용자체가 특급염장물이기도 하지만, [바다에 멈추다]에서는 문피아를 즐겨찾는 독자들이라면 충분히 파안대소할 수 있는 변형된 패러디가 글의 군데군데에 녹아있습니다. 굳이 변형되었다고 제 나름의 의미를 덧붙이는 것은 본래 패러디라는 것이 <어떤 저명 작가의 시(詩)의 문체나 운율(韻律)을 모방하여 그것을 풍자적 또는 조롱삼아 꾸민 익살 시문(詩文)>이라는 원뜻대로 패러디 대상을 조롱하거나 풍자하려는 목적이 있지만, [바다에 멈추다]에서는 패러디를 패러디 대상을 조롱하거나 풍자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글 자체의 해학과 웃음을 위해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독자들이 패러디의 대상인 <그 어떤 저명작가의 문체나 운율, 내용>을 모르고 있다면, 오히려 독해에 방해가 될 뿐이고 마이너스 요소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작가의 패러디 대상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이미 스키마<schema>가 형성되어 있는 상태라면, 길지 않은 한 문구나 단어 하나에도 유쾌한 웃음을 지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죠. [바다에 멈추다]의 주인공 깡구가 문피아로 짐작되는 "BACK무림"에 접속해서 어떤 작품을 읽는 내용인데, (BACK무림도 웃기긴 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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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제목이 이따구냐."
[The중사화산엄마의얼음살인계곡귀향전기]
독자를 배려하지 않는 작가라고...(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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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피아에서 실제 인기있는 [The블랙스펙터], [화산신마], [중사클리든], [엄마는절대고수], [얼음나무숲], [살인중독], [나비계곡], [귀향검] 등을 조합하여 풍자한 것임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저는 위의 구절을 보면서, 숨이 넘어갈 정도로 웃고 말았지만 약간의 우려도 있기도 합니다. 과연 이 글이 문피아 연재가 아니라 실제 출판되었을 때, 문피아를 잘 모르는 분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을지 말이죠. 반대로 생각해보면 오히려 이런 글이 출판되어 몇년 뒤에 책장에서 꺼내 본다면, "그래, 그 때 문피아에 이런 작품들이 인기가 많았었지." 하고 흐뭇해할 수도 있을테니까요.
어쨌든 [Etude]와 [바다에 멈추다] 두 작품을 보면서, 알고 나면 특별할 것도 없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제 나름의 생각으로는 이런 작가님의 친절하면서도 정성어린 배려가 있기 때문에 글을 읽는 재미가 더욱 크지 않을까 합니다.
자건의 [Etude] 그리고 노을바다다의 [바다에 멈추다]를 강력 추천하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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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내용에 맞게 태그를 넣어봤는데, 무지 귀찮네요. 그래서 더욱 위에 언급된 세 작품의 작가님의 배려가 더욱 고마워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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