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코다 가쿠토
작품명 : 단장의 그림 1권 -재투성이-
출판사 : 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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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이 세계에 존재하는 괴현상은
모두 ‘신의 악몽’의 파편이다.
이 악몽의 거품은 인간의 의식에 떠오르게 되면
급속도로 인간의 공포와 악의, 광기와 뒤섞이게 된다.
그리고 현실 세계를 변화시키며 흘러 넘쳐
악몽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떠오른 악몽의 거품이 너무 컸을 때,
개성이 희석된 이야기의 ‘원형(아키타이프)’에 가까워진다.
명시적, 암시적, 다양한 형태로 ‘옛날이야기’나
‘동화’의 에피소드와 비슷한 것이 된다―.
평범함이 신조인 시라노 아오이와
과거에 얽매인 채 악몽과 싸우는 토키츠키 유키노.
인간의 광기가 만들어낸 재투성이 신데렐라의 악몽 속에서 만난
두 사람이 겪게 되는 이야기란―?!
귀재가 선사하는 환상 신기담,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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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의 그림, 오랫동안 정발을 기다리던 작품이다.
사실 작가의 다른 작품 'Missing'을 더 원했지만..
표지를 보니 왠 고스로리 소녀가 있다. 아름답다.
내부 컬러 삽화를 보니 초딩 소년 소녀가 있다.
뭐야 주인공들 연령대가 꽤나 낮군, 이렇게 생각했다.
그림만 그렇게 그려놓은 거였다. 고등학생이더라.-_-
이야기의 큰 줄기는 신이 꾼 거대한 악몽, 그 파편이
이 세상으로 떠올라서 일으키는 비극에 대항하는 것이다.
거품이 일으키는 재앙, 「포화」라 불리는 이 현상이
현실에 구현될 경우 엄청난 참극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 글을 읽으며 든 첫번째 느낌은 '쓰기 어려운 글'이란 거다.
쓰기 쉬운 글은 작가 이름을 기억할 생각도 잘 들지 않는다.
그냥 읽고, 즐기고,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이건 이 사람이 아니면 쓸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소설이 있다. 이영도님의 소설이 그러하고,
전민희님의 소설이 그렇고, 그 외에 여럿 계시다.
(이런분들의 글을 읽을 땐 자연스레 작가명을 외우게 된다)
어떤 재능을 타고나고, 그 재능을 스스로 깨닫고,
엄청나게 노력하고, 아득할 정도로 공부해야
써낼 수 있는 그런 소설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단장의 그림 역시 그런 글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문체가 엄청나다고 추켜세울 생각은 없다.
엄청 깊이있는 주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대신 자기만의 강렬한 색이 담겨 있다.
단장의 그림은 곳곳에 심리학적 고찰을 담고 있다.
집단무의식, 그 안에 내재된 원형, 속죄, 존재의 긍정과 부정..
거기에 각종 전설, 신화, 민담, 동화 등에 내포되어 있는
상징성에 대한 지식과 통찰도 가득하다.
사실 그정도 지식을 다루는 소설은 꽤 있다.
흔하다곤 할 수 없어도 찾아보면 상당수 존재하리라.
그러나 이 소설 단장의 그림 정도로 이야기 속에 능숙하게
녹여내어 재미를 주는 소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특히나 라노벨이라는 장르에선 혁명적인 수준이다.
가장 높이 평가하고 싶은 부분은, 방대한 지식에 판타지적인
상상력을 결합시켜 매혹적인 이야기를 창출해내는 재주다.
이 소설은 라이트노벨이다. 심리스릴러도, 성인동화도 아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독자에게 얼마나 즐거움을 주는가 하는거다.
재미가 없다면 제 아무리 방대한 지식도,
심도있는 고찰도, 쓸모 없는 장식으로 전락한다.
그런 면에서 딱딱한 지식을 놀라운 상상력으로 가공해서
재미를 창출해내는 작가의 센스는 경이롭다.
일단 '이야기의 틀'부터 심상치 않다. 「신의 악몽과 싸운다」
집단무의식의 아득히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신이 어느날 문득
악몽을 꾸게 되고, 그것이 조각조각 수많은 거품이 되어
수면 위로.. 즉 우리 개개인의 의식 속으로 떠오른다.
그 거품이 넘쳐흐르게 되면 현세에 악몽이 출현하는 것이다.
여기서 이 작품은 '공포물'의 성격을 일부 띠게 된다.
현세에 출현한 악몽은 지극히 이질적이고 비정상적인 참극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호러물에 비하면 손색이 있을지 몰라도
작은 분량 안에 가득 가득 담아야 하는 라노벨인 점을
감안한다면, 단장의 그림이 그려내는 공포는 수준급이다.
피범벅 살범벅의 원색적인 인간 파괴, 그리고 그 안에
내포된 섬뜩한 의미가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들어준다.
거기에 캐릭터 소설로써도 모자람이 없다.
처참한 과거를 안고 있는 등장인물들은 모두
심도있게 묘사되며 저마다의 존재를 과시하고,
특히 메인캐릭터인 고스로리 소녀 유키노와 주인공 아오이 등
기사단의 멤버들은 1권에서 이미 확고한 이미지를 획득한다.
딱딱한 설정 속에서 자연스레 라노벨적 재미를
뽑아내는 재주는 이런 곳에서도 발휘된다.
유키노가 고스로리풍을 고집하는 것은 결코 독자의 눈을
즐겁게 만들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결과적으로 즐겁긴 하지만)
그녀를 포함한 기사들이 외치는 주문과도 같은 '단장시'는
폼을 재기 위해 아무렇게나 외치는 게 아니다.
(결과적으로 매우 폼나고 간지 좔좔 흐르긴 하지만)
사소한 부분에도 세심한 설정이 붙어 있고,
자연스레 도출되는 이런 면면이 캐릭터성을 심화시키고
작품에의 몰입을 유도해 내는 것이다.
그리고 동화를 살짝 비틀어서 악몽으로 각색한 이야기는
무척 즐거웠다. 그 해석에 나도 동참하게 만드는 느낌이랄까.
약간의 추리적 요소까지 더해서 피칠을 해대는데 정말 -_-)bb
1권 답게 주인공이 갖고 있는 과거의 아픔, 현재의 능력을
부각시켜서 이야기를 산뜻하게 마무리하는 것도 멋진 솜씨다.
약간 무리한 면도 있는 것 같긴 하다.
지극히 이질적인 세계관을 대략적이나마 서술하고,
기사단 주요멤버에 대한 배경 소개에,
메인 스토리인 재투성이 관련 이야기가 진행되는 와중에
주인공 아오이의 과거가 액자식으로 삽입되고,
공포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심리묘사까지 충실하다보니
한권이 그야말로 가득가득 차 있는 느낌이랄까.
그러면서도 어느 것 하나 허술하지 않으니 굉장하다.
작품에 대한 사전 정보라고는 '동화가 관련된 참극' 정도 밖에
모른 채 무작정 질러버린 소설이지만,
읽어보니 확실히 내 취향에 맞는 것 같다.
이정도 퀄리티라면 앞으로도 계속 구매하게 될 듯.
http://blog.naver.com/serpent/110023093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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