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용대운
작품명 : 군림천하
출판사 :
감상인지 비평인지 헷갈리네요... 편의상 존칭은 생략하겠습니다.
------------------------------------------------------
무협 혹은 판타지를 읽는 연령층이 낮아지면서 최근의 작품들은 극과 극으로 갈리는 경우가 있다. 흥행성(재미)과 작품성,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치기가 일쑤인 경우가 많아지고, 특히 전체적으로 국내 출판업계가 불황을 겪으면서 출판사들도 소위 '안팔리는' 호평을 받는 작품성 높은 글보다 읽기 쉽고, 재미있으며 또한 '많은 대여점에 보급'하기 쉬운 작품들 위주로 출판을 하게 되었다. 물론 작품성이 높은 글이 흥행에 실패하거나, 흥행성이 있는 작품들은 작품성이 낮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작품성이 있는 글이란 내용이 허무맹랑하지 않고, 문체의 수준이 높으며 충분히 현실을 반영하며 내용 안에서 적절한 고찰이 가능한 글을 말하는데, 이런 글들일수록 '딱딱한' 혹은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일반인의 시각으로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듯 하다.) 물론 근래에 새로운 무협의 트렌드를 형성한 독자층들이 서서히 재미 뿐 아니라 질에도 눈을 떠가고, 그에 부응하는 작품들이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군림천하처럼 이 두마리 토끼를 확실히 잡은 작품은 흔치 않다.
책이 한 권 한 권 출판될 때 마다 각종 무협 대여.판매순위에서 수위를 다투며 동시에 특별한 안티-라고 말하기엔 어감이 이상하지만-층 없이 모든 연령대별로 고르게 인정받는 작품이 바로 군림천하다. 필자 역시 군림천하를 재밌게 봐 왔고 또 보고 있으며 내용과 문체에서 딱히 군더더기를 발견하기 힘들다. 중장년층의 코드에 맞게 중후하고 무게있는 내용이면서 동시에 다양한 캐릭터의 개성을 잘 살려 그 안에서 나름대로 신세대와의 코드를 맞추는, 그만큼 이 책은 전 연령대에 대중성을 확보했고(대중성=흥행성과 직결되기 쉽다.) 그만큼 작품성 역시 높게 평가되는 책이다.
그러나 군림천하의 내용을 보면 약간 의문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놀랍게도 이 책의 내용이 참신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진산월의 행보와 기연을 얻어 군림천하하기까지의 내용-비록 완결되지는 않았지만-은 얼핏 보면 과거 70~80년대 정통무협에 가까운 내용이고, 그의 일대기는 소위 말하는 상서로운 출생이 아니라는 점을 제외하면 고전소설에 등장하는 '영웅의 일대기'와 일맥상통한다. 그러면 왜 이 책이 재미와 작품성을 동시에 갖출 수 있는 것일까?
사실 영웅의 일대기는 고대 신화에서부터 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주몽의 건국신화는 영웅의 일대기와 흡사한데, 이 내용은 약간씩 변이를 하긴 하지만 큰 내용의 틀의 변화는 없이 현대까지도 계속 여러 작품에 반복이 된다. 그만큼 식상한 내용일 뿐더러, 패던이 같기 때문에 최종적인 결과는 예측하기 쉽다. 군림천하 역시 인물과 전개는 몰라도 전체적인 틀은 영웅의 일대기를 벗어나기 힘들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 많은 사람들이 재미를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위에 언급한 말과 아이러니하게도 '이야기'가 참신하기 때문이다. 내용과 이야기는 얼핏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단어이다. 내용이 전체적인 윤곽을 말한다면, 이야기는 그 내용을 이끌어가는 방식을 말한다. '진산월' 이라는 인물은 우리가 다른 소설에서 접하지 못한 새로운 캐릭터이고, 그 캐릭터의 성격도 여타 소설의 주인공과는 차이가 있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부분에서 다른 소설과 차이점이 있다.
물론 패러디한 작품이라도 원작과 차이점이 없겠느냐만은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모방한 작품'이 아닌 '새로운 창조물'로 재탄생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군림천하는 영웅이 역경과 고난을 딛고 승리를 쟁취한다는 점에서 영웅담과 일치하지만, 그 역경과 고난은 반복되고, 그 안에서 상하의 기복과 독자의 상상을 뛰어넘는 반전을 요소요소에 담고 있어서 영웅담 이상의 소설이 되는 것이 가능하다. 조금 역설적으로 들릴지도 모르는 말이지만, 비슷한 틀의 이야기 구조라 할지라도 진행방향을 독자가 '예측가능'하다면-물론 최종적인 결과가 아닌-그저 그런, 어디서 본 작품이 되지만, '예측가능하지 않다'면 그것은 참신하고 재미있는 작품이 되는 것이다.
바로 종남의 무림행,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딫히는 신목령과 이씨세가 등은 처음의 구파일방 혹은 초가보와는 다른 것이고, 그것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독자의 예측을 대부분 빗나가게 한다. 그리고 한가지 더, 작가의 필력, 즉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입답'의 차이 역시 작품의 재미를 더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말이라도 재밌게 하는 사람과 재미없게 하는 사람이 있다. 용대운은 이 한정된 스토리 라인을 투박하지 않으면서 유려한 문체와 인물간의 특색있는 대화로 독자의 흥미를 끌어낸다. 더 좋은 예로 대중가요를 보면 예전부터 지금까지 사랑타령의 노래가 많지만, 가사와 내용은 비슷비슷해도 음과 부르는 가수의 특색에 따라 그 노래는 다른 평가를 받게 된다. 노래에서 음이 문체라면 그 음을 자유자재로 창조해 내는 가수는 바로 작가가 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군림천하는 다른 소설과 비슷한 구조속에 '차별화'된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가수가 여러가지 기교로 듣는 사람을 즐겁게 해 주는 것처럼 특색있는 문체로 보는 이의 즐거움을 더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비록 진산월이 종래에 군림천하 할 것을 예측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지만 그럼에도 그 과정과 풀어나갈 이야기가 궁금해서 독자들은 계속 군림천하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점은 작품성과 일맥상통한다. 이야기가 재미있으려면 우선 우리의 현실과 이상을 동시에 잡아야 한다. 이런저런 성격의 인물들은 현실의 여러 특색을 가진 사람들과 일맥상통하며, 주인공이 겪는 고난은 방식은 다를지라도 현실적인 한계를 드러내 준다는 점에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 동시에 그것을 극복하고 진산월이 고수가 됨으로써 현실을 깨치고 누구나 바라마지 않는 이상으로 나아가고, 이것은 곧 독자들의 대리만족과 연결된다. 그리고 용대운은 그 과정을 한치의 *과장도 없이 풀어나가고, 그것에서 독자들의 공감대를 얻고 재미를 얻는다. 바로 '차별화' 된 스토리라인이라는 것은 현실과 이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작가의 능력만큼 적절히 섞어내며 '재미'를 이끌어 냈기 때문에 작품성도 가지게 되는 것이다.*'재미' 라는 것은 무조건 자극적이고 코믹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독자와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듯 작품성이라는 것이 꼭 참신함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 퓨전판타지가 나왔을때는 필력과 스토리 라인의 구성(여기에는 예측과 반전이 공존한다.)보다는 새로 접해보는 내용으로 인해 충분히 읽을거리가 되지만, 이제는 퓨전판타지가 남발하는 상황에 되어 웬만한 필력이 아니고서는 독자들이 외면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각설하고 군림천하로 돌아가, 비록 2부에 와서는 진산월의 위치가 너무 독보적이고 스토리 라인의 예측이 1부보다 쉬워지는 경향이 없지 않고, 특히 이존휘와 서장무림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연결시키지 못해 크게 어색하지는 않아도 약간 억지스러운 부분-가령 취미사 혈겁에 진산월이 개입하게 되는 상황이라던가-을 형성하지만, 그것은 전체적인 윤곽에서는 극히 미미할 부분일 뿐이고, 1부에서 충족시켜주지 못한 독자들의 카타르시스를 채워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점도 없지않아 있다.
이제 군림천하도 종반부를 향해 치닫고 있다. 용대운 선생이 말한 대로 마지막 3부 8권만을 남겨놓고 있다. 완결도 나오지 않은 상태의 책을 평하는 것 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지만, 그만큼 다른사람들 처럼 나 역시 앞으로 나올 부분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기다려 지는 것이고, 또 얼마나 재미있는 내용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 줄지 기대감이 크다는 것의 반증으로 글을 쓴 것이다.
앞으로 진산월이 군림천하 하는 그 날을 그리며 이 글을 마친다.
- - - - -
*여기서 '한치의 과장도 없이'란 말에 의문을 가질 수 있는 분들이 계실 듯 하다. 무협소설, 아니 그전에 소설인 만큼 과장이 안 들어 갈수 없지만, 여기서는 그런 의미가 아닌, 소설의 전체적인 흐름을 깨지 않을 정도의 부분을 말한다. 진산월이 기연을 얻는 것이 갑자기 얻은 것이 아니라, 각고의 노력과 전대의 안배로 인해 얻는 다는 것을 사실적인 '묘사'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마땅하 간단하게 설명할 길이 없어 '한치의 과장도 없이'란 문장을 선택한 것 뿐이다. 한때 파문을 일으켰던 투명드래곤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빠르리라 생각된다.
*군림천하의 경우에는 재미와 작품성을 동시에 가지지만, 현실인식과 이상을 구현하지만 이상은 실지로 실현되지 못거나 스토리 라인이 극단적인 카타르시스를 이끌어 낼 때에는 작품성에는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어도 흥행성(재미)까지 보장하지는 못한다.
* 무판돌쇠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3-06 14:29)
Comment '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