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 무림에 가다.”, 전형적인 퓨전 신간을 살핀다.
퓨전이다. 퓨전은 흔히 소재로 먹고 살고 고갈로 죽어간다.
눈길을 끌고 흥미를 일으키는 특이한 소재를 선택하면, 마치 연료를 가득 채우고 출발하는
것과 같아서 길고 진중한 맛은 없어도 한동안 독자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 수 있다.
초기효과다.
하지만 독자의 가슴 속에서 연료가 바닥나 버리면 한 순간에 추락한다. 작가의 능력에 따
라 이를 길게 유지할 수도 짧게 유지할 수도 있지만 자칫 한순간을 놓치면 비판을 양껏 얻
어먹을 수 있다. 혹여 나중에 너무 배불러 잠적하더라도 돈은 챙기고 가자.
무협적인 세계관과 환타지 적인 세계관. 무협이 더 현실에 가깝다고 이야기하고 싶겠지만
그건 상대비교일 뿐이다. 절대비교에 이르면 오십 보 백보다. 무림에서 판타지로 가건 판타
지에서 무림에 오건 둘 다 환상에서 환상으로 넘어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무협세계가
환상을 넘어 신앙으로 자리한 사람에겐 분통터질 노릇일지 모르지만 그런 것이 신선한 시대가
왔다.
신선은 개뿔이다. 하나있을 때가 신선이지 둘이 넘으면 식상이다. 하지만 절대개체수를 보
면 퍼센테이지가 희소한 것은 불변한다. 그래서 일탈이고 그러니 신선하다.
신선이 식상으로 뒤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지만, 소설이 많은 만큼 사람도
많다. 사람이 많은 만큼 취향도 제각기다.
처음 환타지와 무협이 융합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와 같은 세계관의 소설들이 몇 개
더 등장해 주길 바랐다. 소원은 충족되었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도 있다. 그들은 이를 배불리
먹는다. 하지만 충분히 배불리 먹자 더 이상 나오는 게 짜증나기 시작한다.
작작 좀 나와 주면 좋다고 생각한다.
반복하여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 아직 배부르지 않은 사람이 많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2004년 6월에 이르렀지만 출간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박성수 작가의
“마법사 무림에 가다.”는 폭풍적인 인기를 끌며 베스트셀러에 자리매김했다.
그렇다고 그 소설이 특별한 점이 있느냐? 없다.
몇 차례 밟지 않아야 할 곳을 잘 비껴나가긴 했지만 뼈대에서부터 이끌어나가는 이야기까지
닳고 닳은 코드들이다. 하지만 그만큼 강렬한 코드를 사용하기에 말초적인 재미가 여분으로
빨려든다. 강렬한 만큼 쉽게 중독되지만 중독된 만큼 사람들은 더 강한 재미를 찾아 나선
다. 하지만 아성이 있는 작가들은 이에 잘 다가서지 않으니 영원히 충족될 길이 없다.
그게 분노로 피어오르면 아마 이 소설도 판매부수에 따라 숱한 성토에 휘말릴 수도 있고,
판매부수가 적으면 무시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복잡하지 않아 좋다. 스토리를 이리저리 꼬아 단물을 짜내지 않아도 맛있다.
진한 만큼 빨리 질리지만 나름대로 독자적인 맛을 구축한다.
이 소설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마법사 무림에 가다.”
더 이상의 설명도, 품고 있는 가치에 대한 탐구도 필요 없다.
소재를 보고 끌리면 읽는 거다. 그것이 지금 생각할 전부다. 공연히 분노할 필요도 없다.
누군가 원하기에 탄생한 상품이다. 그 원하는 자에게 팔려 나가는 책이다.
폄하하지 않는다. 식상의 언저리에서 재미를 느꼈다. 다만 박정수 작가가 다음 작품을 출
판할 수 있을 지 없을 지가 그의 가능성을 말해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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