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표무적 6권, 대단하다. 대단하다.
소설을 읽으며 그토록 하고 싶던 말들이 쳐지질 않는다. 흔하디흔하게 쓰던 감탄사도 모자
람이 느껴져 지운다. 감정이 들끓는다.
만약 이 소설이 남들에게도 최고가 아니라면 난 이렇게밖엔 말할 수 없다.
보표무적은 나와 공명했다고, 나의 감정을 제멋대로 빼내어 쓴다고 말이다.
그래, 어쩌면 이 호들갑엔 주파수의 영향이 있을 수도 있겠다.
스토리 짜임이 치밀하여 놀람을 주는 것도 아니다. 무서울 정도의 필력이 현학적인 단어를
남발하는 것도 아니다. 작가만의 특징적인 시도가 확연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무엇에 충격 받았는가?
바로 감동이다. 챕터마다 작가는 나를 감동시킨다. 짙은 감동에서 오는 행복감에 눈물을
참지 못하게 만든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놀랍도록 세밀한 성격묘사, 그리고 그러한
상황을 유도할 수 있는 작가의 감수성이다.
등장인물들끼리 벌이는 유치한 감동의 뽕짝에 놀아날 나이는 지났다.
하지만 보표무적엔 당할 수가 없다. 그 가볍고 유려한 대사뿐만이 아니어도 등장인물 행동
하나하나에 감성이 느껴진다. 사건에 물 흐르듯 몰입한다.
사실 한계점이 있어야 한다. 보표무적이 가져야 할 치명적 약점. 유심히 소설을 헤집어 보면
놀랍도록 반복되는 하나의 사실을 알 수 있다.
항상 위기 상황에 나타나 적들을 물리치는 슈퍼맨 시나리오다.
주인공 우이는 슈퍼맨이다. 단순히 상징적 의미가 아니다. 그는 항상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
난다. 그리고 상황을 타계하는 것은,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그에게만 달렸다.
이런 초월적이고 우상화된 영웅코드는 오히려 반발감을 불러야 한다.
하지만 티끌만큼도 이상하지 않았다. 우이의 비정상적인 강함에도 한 점 의심이 없었다.
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지극히 스토리와 함께 움직인 사건들이기에, 위기상황에서의
우이의 등장은 지극히 허점이 없었던 것이다.
6권 시작부터 나는 울 뻔했다. 한순간 흑사신의 심정이 되어 우이에게 감화 받아 보았다.
짓지도 않은 잘못에 대한 속죄를 대신했다. 담백이 되어 쌀쌀맞게 굴었지만 가슴에 따뜻한
정을 남겨 보았다. 객잔주인 영춘의 선행에 대한 쑥스러움마저 빼앗아 느껴 보았다.
어느덧 우이는 우상이었다. 나는 우이의 몸에 들어가지 않았다.
조연이 되어 위기 앞의 등불처럼 가련히 서서 끊임없이 구원을 외쳤다. 적의 칼날에 위험을
수 없이 넘겨도 우이의 이름만 끊임없이 되뇌었다.
그러다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포기할 때쯤 갑자기 서광이 비친다.
나를 이 지긋지긋한 고통에서 구해줄 우이가 백마를 타고 등장한다.
깊은 절망이 어느덧 안온함으로 바뀌며 그 격차만큼 행복을 쏟아낸다.
6권 말미에 단목혜가 우이에게 진상한 그것. 비록 적들은 눈이 멀어 느끼지 못했지만 그것
이 우이의 손에 들렸을 때 나는 폭발적인 위엄을 느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위치에 앉은 기분이었다. (실제론 약간의 고소공포증 때문에 그런 자리엔 안 앉는다.)
그래, 어느덧 마지막 장을 덮은 지 30분이 지났다. 마치 많은 친우와 오랜 시간을 함께한
듯 아직도 내 가슴에 정이 넘친다. 몇 달치의 우정을 한꺼번에 끌어 모아 삼킨 듯 배가 두
둑하다. 효력은 한 달이다.
7권은 그렇게 내 표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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