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적으로 '구무협'에 대해 폄하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러한 분위기가 어느정도는 '구무협'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글에서도 말했지만, 80년대 초중반의 한국무협은 중국무협과 다른 독창성과 재미를 가지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구무협'의 상징으로 대표되는 기연과 강한 무공은 구무협만의 문제가 아니다.
상상해보라! 기연없는 무협이 존재할 수 있는가?
주인공이 강한 무공이나 사부와 인연을 맺는 것, 그 자체가 기연이다.
주인공 외의 수많은 인물들은 그런 인연을 만나지 못했지 않은가?
강한 무공 또한 마찬가지이다. 재밌다는 무협소설치고 주인공이 천하제일인 안되는게 얼마나 되나?
즉 기연과 강한 무공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기연과 강한무공을 얻는 과정과 그 내용에 있어서 작가가 독자의 공감을 끌어낼수 있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결국 작가의 능력문제인 것이다.
기연과 강한 무공은 소재일 뿐인 것이다.
기연과 강한 무공을 가지고서도 나름의 재미를 이끌어 낼수도 있다는 것이다.
천중행, 천중화 작품정리한다면서 왠 헛소리냐?
천중행과 천중화가 바로 그러한 작가였다. 기연을 통한 재미를 추구한.
그래서 천중행과 천중화의 작품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것은 '기연'이다..
그리고 가슴아프게도 한가지가 더 있으니 바로 '표절'이다.
자! 본격적으로 시작해보자.
천중행과 천중화의 작품은 크게 두시기로 나눌 수 있다.
8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전반기와 후반기이다. 이렇게 시기를 나누는 기준은 '표절'여부이다. 또 다른 특징인 기연은 전 시기의 작품에 나타난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주인공에게 기연 몰아주기'이다.
천중행과 천중화 두 작가는 주인공에게 기연 몰아주기의 대명사였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책 전체 분량의 절반정도가 기연을 만나는 장면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주 쪼금의 과장이 섞였다)
첫 작품이 '황'으로 기억된다. 82-3년 정도에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황'이라는 제목 그대로 작년엔가 재간된 걸 대충 훑어본적이 있으니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볼 수 있을 것이다.
첫 작품부터 기연으로 도배된다. 1500년전의 천마지체를 타고났던 찬마대제의 후인이 되는데, 이 천마대제가 무림서열을 정했는데, 10위권 안에 자기친구, 마누라, 제자가 들어가는데, 그들의 무공을 주인공이 다 얻는다.
어찌 생각하면 '먼치킨류'의 원조라고나 할까? ^^
이후에 작품이 다 그런식이다. 일단 표절을 시작하지 않는 전반기의 작품을 꼽아보자.(기억에 의존하다 보니 순서와 분류에 오차가 있을 수도 있음)
전반기의 작품은 십교종사, 칠기무제, 천기예황, 태양천자, 대상천하, 팔왕예조, 검, 용투야, 전신, 구룡겁, 검한몽, 제군본기, 만황, 패검비천혼 등을 꼽을 수 있다.
다시 기억을 되새겨봐도 전체 분량의 반가까이가 주인공이 기연 얻는 내용이다. ^^
그런데 이 얻은 기연을 수련하는 것은 장면은 없다. 다 그 기연의 배경 설명이다.
보통 비급이나 보물 남긴 사람이 어떻게 살았고, 왜 남겼는가. 기보에 대한 설명에 분량을 할애한다.
근데 설명에 따르면 다 천하제일무공이다. 황당한 것은 이렇게 얻은 기연을 다 쓰지도 못하고 책이 끝나는 경우가 태반이다. 특히 심한 작품을 꼽으라면 검, 구룡겁, 검한몽 빼고 전부이다.
왜 그런가? 기연 얻는데 분량을 너무할애하다 보니 내용이 없다. 주인공이 천하무적인데 무슨 갈등? 싸우는 장면도 보통 한두번 정도밖에 안나온다. 기연을 얻고난 주인공의 분위기 보고 대충 다 알아서 긴다. ^^
이러한 후반부의 허무함은 정말 견디기 힘들지만, 기연을 얻는동안 정말 기연을 얻는 즐거움이 뭔지를 알 수 있다. 기연에 대한 설명이 세세하고 체계적이다 보니, 기연을 얻는 재미가 솔솔한 것이다. 후반에는 허무해지지만. ^^
86-88년 경에 후반기로 접어드는데, 후반기의 특징은 얻게되는 기연의 내용이 표절이라는 것이다. 주로 김용의 작품을 많이 표절했다.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 )안에는 표절한 작품이다.
검왕본기(의천도룡기와 천룡팔부) , 검웅영제(소오강호), 군(자기표절), 삼랑소(기억안남), 십왕결(자기표절과 천룡팔부), 십왕책(협객행), 전국무조(예외)
90년정도까지 무공이나 기연 얻는 과정을 김용작품에서 혹은 자기표절을 하고 있다.
90년 이후에도 천중행 천중화 이름으로 조금씩 출간은 된다.
일수탈명흑백조, 군림천리, 일세검황(기억안남) 이 것외에도 하나가 더 있는데, 제목이 기억 안난다. 어쨌든 이 네작품의 특징은 표절은 아니고, 기연은 계속되다.
이 책들은 7권짜리 한질 박스무협이 아니라 그것보다 조금 큰 책으로 나왔다. 금강님의 '천산유정'이 재간되기 전의 '신룡전기'가 그런 식으로 나왔었다.
이후에 표사 사군명, 칠정란 따위가 나온 것 같은데, 과거의 천중행 천중화의 색채는 완전히 사라진 작품 들이었다.
정리를 하자면, 천중행, 천중화는 진정한 '기연 몰아주기'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작가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부정적인 어조가 아니라, 긍정적인 어조로서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무협에서 주인공에게 기연을 없을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천중행 천중화는 주인공이 기연을 얻으면서 느낄 수 있는 대리만족을 독자에게 주로 전해준 작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기연 몰아주기는 90년대의 표절과 짜집기의 '구무협'에서 나타나는 기연 몰아주기와도 다르다. 90년대의 기연몰아주기는 아기자기한 맛이 없다. 뭐 그냥 바다의 힘, 하늘의 힘 따위를 주인공에게 준다.
하지만 천중행 천중화는 무공도 무공이지만, 다양한 병기를 얻는 기연을 주면서, 자세한 설명을 덧붙여서, 아 정말 좋은 병기를 얻는구나라는 감탄이 나올 만큼 자세하고 사실적인 면이 있었다.
이러한 구체성과 온갖 기연을 창조해내는 성실성을 가지고 독자들에게 기연몰아주기에 의한 재미를 주었던 작가들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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