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에 소주에 조가장이라는 떼부잣집이 있었대요.
그 부잣집에는 떼부자답게 뚱띠인 아빠하고 뚱띠 아들 조수인이 살았
는데요, 어느 날부터 이 아들이 미칬는가 막 아무데나 휘젓고 댕기면
서 무공 가르쳐달라고 생지랄을 하는 거에요. 그런데 배우지는 못하고
맨날 두들기 맞고 다니니 아들 보는 아버지 심정이 어떻겠어요. 열불
받지요. 조대인은 신념이 있거든요, 돈이면 장땡이라는. 그래서 조가
장 최고의 조커 히든카드 필살병기 최종병기 대들보인 총관 양노대에
게 말했죠. 돈은 얼마가 들어도 된다! 천하에서 제일 가는 무공비급이
면서, 아무도 익히지 못한 것을 구해 와라!
역시 양노대. 제꺽 구해왔죠. 황금 십만냥을 주고. 아버지 조대인은
비급을 아들에게 줬죠, 아무도 익히지 못한 비급이니 당연히 익히다
포기할 거라고. 그러면 이제 아들이 무공가지고 떼쓰는 일은 없을 테
니까요. 그런데, 이 아들이 2년이 넘도록 비급을 붙잡고는 나오지를
않는 거에요. 열받지요. 복스럽던 아들이 빼빼 말라가는데 어찌 아니
안스럽겠어요. 포기도 안하니. 열 받다받다 못참아 결국 아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비급은 황금 십만냥짜리 불쏘시개가 되어 버렸죠.
아들 조수인, 잠깐 자리비웠다 와보니 비급이 없어졌어요. 아무리 찾
아봐도 없어요. 결국 알게 되었죠. 때가 된 것인가. 하늘은 나를 세상
에 나가라 하는구나.
그래서 천하제일의 고수로서 세상에 나가려 하는데, 그냥 나가면 사
람들이 천하제일의 고수인걸 못 알아볼거 아니에요. 그래서 이마팍에
띠를 둘렀어요. 天下無敵이라 딱 써서는. 그 꼴을 보고 조가장의 결전
병기 양노대가 보고는, 그 정도로 사람들 눈에 띄겠습니까. 하고 어이
없다는 듯 말을 했어요. 그런데 조수인이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거든
요. 그래서 天下第一高手 하고 깃발을 딱 써갖고 양노대보고 들고 따
라오라고 했죠.
그러고 보면 천하제일의 고수라면 증명이 있어야 되잖아요. 그래서
길가던 대필서생 하나 잡아서 끌고 다니기 시작했죠. 진 놈들이 졌음
을 증명하는 전적인증서를 쓰고, 못 쓰겠다고 개기면 대필로 써가지고
는 지장이라도 찍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해서 미친놈 조수인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이야기 광혼록이 시
작된답니다.
광혼록은 단점 많은 소설이다. 이야기는 난잡하고, 용두사미에다 뭔
가 있는 거처럼 나오던 거는 순식간에 묻혀 버리고. 또 복잡하고. 그
럼에도, 유쾌하고 웃기고 골때린다.
소설을 보는 관점에서 통일성이 없는 광혼록의 이야기 구조는 결코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하나 하나의 장면은 정
말 잘 짜여있다. 이런 점에서 근래 넷을 바탕으로 쏟아지는 장면 장면
의 재미를 추구 - 특히 말장난 - 하는 무협소설(?)들과 비슷한 맥락에
있다 할 수도 있지만, 광혼록이 프로젝트A에서 성룡이 보여주는 재미
라면 말장난 무협(?)은 동네 카바레에서 벌이는 코믹 쇼라 할 정도로
그 차이는 크다.
예전 이 소설이 나왔을 때는 상당한 논란이 벌어졌다, 정통적인 소설
론을 바탕으로 광혼록의 단점을 문제삼는 이들과 그럼에도 광혼록의
재미를 옹호하는 이들 사이에. 그런데 당시의 논란이 무색하리만치 구
성이 개판 0.01초 전인 글들이 쏟아지는 요즘 추세를 보고 있으려니,
광혼록이 얼마나 잘 쓴 글인지 새삼 느끼는 중이다. 그리고 요즘같은
추세라면 광혼록이 다시 나온다면 당시보다 더 큰 인기를 끌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이 소설은 무공으로 따지면 사파 중의 사파이고, 이른바 먼치킨 계열
이다. 하지만 뭐 어떤가, 어설픈 사파무공은 하류 흑도배들이 애들 삥
뜯는 데나 쓰지만, 특급의 사파무공은 천하를 오시하지 않는가.
[덧말]
이 소설이 97년경 출판되었으니, 현재 출판본으로 구하기는 상당히 힘
듭니다. 하지만 무협소설을 통신으로 유료제공하는 사이트 등에는 아
마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통신에서 서비스하는 곳에 들어가, 분
당 200원(?)인가 하는 곳에서 죽어라 엔터 두들기며 갈무리해서 구했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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