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궁장은 과녁과의 거리가 144미터 이고
일본 궁도장은 28미터에서 80미터 입니다.
딱 가서 보시면 과녁 자체도 다르지요.
총이 있는 시대의 활의 우수성을 논해 봐야
무엇하겠습니까마는..
실제로 보시면
그냥 와...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무기가
조선의 활입니다.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국궁장은 과녁과의 거리가 144미터 이고
일본 궁도장은 28미터에서 80미터 입니다.
딱 가서 보시면 과녁 자체도 다르지요.
총이 있는 시대의 활의 우수성을 논해 봐야
무엇하겠습니까마는..
실제로 보시면
그냥 와...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무기가
조선의 활입니다.
전장용 활과 스포츠 활은 장력이 다릅니다.
일본도 1500년대 되면 복합궁 시대에 접어 듭니다.
유효사거리 200미터 넘는 활이 등장하는 것이죠.
우리야 일찌감치 .........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합성궁을 사용해서 활을 발전 단계를 밝혀 낼려면 이건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것이겠지만.
일본의 경우 활의 발전단계를 비교적 상세히 알수 있습니다.
환목장궁.............에이안시대.....794~1185년.. 최대 300m....... 유효 90~100m
중등궁...............무로마치시대..1336~1573년.. 최대 35~400m..유효 180~200m
궁태궁..무로마치말기~에도시대 1500~1868년..최대 400~450m..유효 200~250m
이 정도가 대충 긁어본 일본활의 발전단계인데..여기서 궁태궁의 경우 대나무복합궁입니다.
길이 120~170cm
중량 0.2~0.3kg
생각보다 활의 크기가 작죠?
뭐 당시 왜인의 키가 작으니 작은게 아니라 엄청나게 큰 것이겠지만.
그리고 활은 인간의 힘으로 도구의 장력과 탄성을 이용해서 물체를 날리는 무기이기 때문에, 한국이든 영국이든 일본이든 그 최종 발전단계에선 사거리가 비슷해 집니다.
국궁의 경우도(각궁) 전장에서 유효사거리는 250미터 전후이거덩요.
그리고 조총과 활은................조총이 파괴력이 더 뛰어납니다.
그래서 전장에서 대규모 조총부대가 궁수부대보다 더 위력적인 것이지요.
(유효사거리가 짧지만 유효사거리 안에서는 적군에게 확실한 피해를 줄수 있지요.)
전장에선 꼭 멀리 쏜 다고 유리한 것은 아니거덩요.
더군다나 임진왜란 당시 조선이 일본군에게 대규모 접전에서 밀린 것은 조총 때문이라기 보다 장창밀집방진에 털린 경우인데, 이것도 임란초기에만 일방적으로 개털렸을 뿐이고, 중후기로 들어서면 전장의 승패가 비슷해지면서 조선군의 승리횟수가 더 많습니다.
다만, 초기의 피해가 엄청 났었고, 전장이 조선영토이다보니 피해가 엄청나서 조선군이 이순신장군 빼고 허접처럼 보이는 것이지만, 중후기의 전투경과를 보면 그 당시 조선군이나 일본군이나 거기서 거깁니다.
오히려 수백년간 내전으로 군사문화에 익숙한 일본이 중후기로 갈 수록 뒷심 부족으로 밀리는게 더 이상한 것으로도 볼 수 있지요.
조선은 개국 이후 학문만 디립따 발전시킨 나라잖아요.
전장에서 서책일랑 붓,먹, 벼루를 던진다고 전군이 죽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리고 조총과 활은................조총이 파괴력이 더 뛰어납니다.
그래서 전장에서 대규모 조총부대가 궁수부대보다 더 위력적인 것이지요.
(유효사거리가 짧지만 유효사거리 안에서는 적군에게 확실한 피해를 줄수 있지요.)
이 부분은 약간 수정하고 싶네요.
초기의 조총은 그야말로 비루했습니다.
파괴력을 넘어서, 명중률이 아주 작은 하마 이야기였죠.
단지 활보다 더 유행(?)했던 이유는 하나입니다.
'숙련된 사수의 육성이 쉬워서'
조총을 마스터한 사람하고 활을 마스터한 사람이 있으면 물론 활이 좋습니다.
연사도 빠르고, 명중률도 월등히 좋았습니다.
문제는 총은 쥐어주고 몇 번 쏴보게 하면 얼추 압니다.
그리고 인원만 빽빽하게 채우면 명중률 나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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