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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작성자
Lv.8 showdown
작성
12.02.27 14:44
조회
658

판타지 바람은 분명한 사건이다. 무조건 부정되고 무시될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압도적인 숫자가 그 소설들을 읽고 쓰고 있다. 판타지 소설 붐을 몰고 온 『드래곤 라자』는 통신망에 연재 당시 조회 수 90만 회를 기록하였고 책으로 출판되어서 40만 부 이상의 판매를 이루었다고 한다. 같은 작가가 최근에 상재한 『퓨처 워커』의 앞표지에는 "조회 수 180만 회"라고 적혀 있다. 『용의 신전』의 경우에는, 출판사의 주장에 의하면, 30여 만 부가 팔렸고, 다른 판타지 소설들도 최소한 2만 부의 판매를 보장한다고 한다. 이 집단적 현상을 무시할 수 있는 비평가는 강심장이거나 둔감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판타지에 대한 비평적 조명은 극히 적었다. 놀라운 일인지 애석한 일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긍정될 현상도 아니다. 이것은 사회적 현상인가, 문화적 현상인가?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판타지 바람의 의미는 무엇인가?

문학적 현상일 수 있다면, 그것이 개척할 한국문학의 영역은 어떤 것인가? 이런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는 판타지 소설의 실제 양상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요청된다.

판타지 소설은 통신망 위에서 피어났다. 일차적으로 통신망은 규범이 존재하지 않는 문학의 활동 무대라고 규정할 수 있다. 물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얘기다. 공개된, 자유로운, 문학지대라는 것이다. 통신망에 가입한 사람은 누구나 글을 올릴 수 있고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오늘의 관심은 아니다. 우리의 관심은 이 영역에서 판타지 소설이 크게 피어났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왜 하필이면 판타지인가?"를 묻게 한다. 다른 문학 장르들과 판타지를 비교해봐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판타지 소설의 지대는 다른 지대들에 둘러싸여 있다. 정면으로 이어져 있는 울타리는 '본격문학'의 정원을 둘러싼 울타리이다. 옆의 문학 과수원에는 S/F와 추리소설이 있고, 문화 수목원에는 만화와 컴퓨터 게임이 있다. 그리고 뒤로 무협소설이 있다.

판타지는 S/F, 추리소설과 더불어 주변부 문학의 강력한 가능성을 가지고 등장하였다. 그것들은 무협, 야담, 외설 등 여타의 대중문학 장르와 달리 중심부로 입성할 수 있는, 아니 차라리, 중심부의 문학을 대체할 수 있는 유력한 장르로 간주되었다.

그렇다는 것은 판타지가 합법적인, 이 말이 지나치다면, 양성적 장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무협소설과 그것을 비교해보면 그 특성이 뚜렷히 드러난다. 무협소설도 판타지와 비슷한 독자수를 확보하고 있는 장르이다. 그런데 무협소설은 대여점을 통해 음성적으로 유통된다. 통신망 내에 무협소설이 올라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관심도에서 판타지에 견줄 수가 없다. 또한 무협소설의 작가들은 대부분 익명이고, 또한 공동 창작이다.

그에 비해, 판타지 작가는 이름 석자가 분명한 개인이다. 이렇다는 것은 판타지가 고전적 문학 개념에 근접한다는 것을, 적어도 그것을 열망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판타지의 생산 형식이 본격 문학과 닮았을 뿐만 아니라, 무협지가 감히 주장하지 못하는 '문학성'에 대해서까지도 판타지는 재산권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실제로, 얼마 전 이화여대에서 열린 심포지엄에는 송경아는 그것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이런 개방적 성격을 가진 주변부 문학 장르는 판타지와 더불어 S/F나 추리소설이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S/F와 추리소설은 뿌리내리지 못했다.

또한 판타지 소설은 만화, 게임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아마도 판타지 소설의 발전에는 만화, 특히 일본 만화의 영향이 컸으리라 짐작된다(최근에 모 일간지가 마련한 대담에서 이영도는 이 점을 부인하였다. 그는 판타지 소설의 '용'이 흔히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과는 달리 일본 만화의 용과 전혀 무관하다는 것을 하나의 증거로 들었다). 한국 문화의 장場안에 '환상적'인 것이 들어온 것은 일본 만화 영화, 그리고 컴퓨터 게임을 통해서다.

저 옛날의 『요술 공주 세리』와 『울티마』『룸』을 예로 드는 것으로 충분하리라. '환상적인 것'에 대한 젊은 세대의 압도적인 취향은 이들을 통해 형성되었다.

직접적인 영향 관계가 불명확하다 하더라도, (지배적) 만화, 컴퓨터 게임, 판타지는 '환상성'을 공유하고 있다. 이화여대 심포지엄에서 한 판타지 작가는 컴퓨터 게임과 판타지 소설의 직접적인 연광성을 주장하였다. 그가 보기에 판타지는 "문학이 아니라, 게임이다." 그런데 만화나 판타지로 충분한 것을 왜 소설로 하는가?

대담에서 이영도는 "글의 힘을 믿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당신은 문학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는 답을 하지 못했다. 하긴 누가 그에 대해 즉답을 할 수 있으랴? 모든 문학은 '문학성'이라는 텅 빈 중심을 맴도는 무용한 수난인 것을.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문학은 신앙의 대상이기 이전에 끝없는 의혹의 대상인 것이다. 『퓨처 워커』의 작가 역시 그 신앙과 회의 사이를 열심히 왕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이 수용되는 양태는?

어찌됐든, 판타지 소설과 만화, 게임 사이를 가르는 울타리는 '문학성'의 간판을 달고 있다. 이는 판타지 소설이 대문자 '문학'에 대한 욕망으로 들끓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 판타지는 주변부 문학 장르의 문학에 대한 욕망, 다시 말해 중심부로 진입하려는, 혹은 중심부의 문학 개념을 완전히 대체하고 새로운 문학 개념을 세우려는 욕망이 집약된 장소이다. 또한 판타지는 주변부 문학인들의(다시 말해 기존의 문학 제도 안에 공식 등단 절차를 통해 입문하지 않은) 공식 문학인이 되고자 하는 욕망의 집약된 장소이다.

그러니까, 판타지의 욕망은 문학에 대한 일념, 순수 욕망이다. 그것이 순수욕망이라는 것은 기존 문학의 기본 존재태('문학성 전제, 개인창작)를 그대로 제것으로 하려는 욕망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 욕망이 전개되는 실제 양상을 살펴본다면, 그것이 그 욕망의 존재론을 충족시키기에는 아주 취약한 듯이 보인다. 아니, 취약한 게 아니라, 그것의 속뜻은 다른 데에 있는 것으로 보일 정도이다.

앞에서 판타지 열풍에 어떤 편향이 숨어 있음을 암시했었다. 왜, S/F와 추리소설은 안 되고 판타지만 되는가?

이 질문은 이중적인 차원에서 제기된 것이다. 우선, 이것은 공공의 장소에서, 다시 말해 양지에서 서식하는 세 가지 주변부 문학의 의의를 인정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S/F, 추리, 판타지가 종래의 문학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종래의 문학에도 아주 다양한 종류가 있다.

관점에 따라서는 S/F, 추리, 판타지도 그 안에 포함시킬 수 있다. 그런데도 그것을 따로 떼어 차별화시키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무엇보다도 기왕의 문학들을 통틀어 '진실'에 대한 탐구로 규정할 수 있따면, S/F, 추리, 판타지는 그러한 진실에 대한 강박 관념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우며 때로는 의도적으로 그 자유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S/F는 진실을 미지로, 추리는 논리 게임으로, 판타지는 환상으로 바꾸었다.

그것들은 거기에 진리가 있는가를 묻지 않는다. 다만 거기에 '다른 세상'이 있다고 가리킬 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진실'의 나사가 풀린 문학들이 어떻게 '문학'으로서 간주될 수 있는가? 그것은, 기존 문학의 진실 추구가 무거운 억압으로 변했다는 저변의 사정에 근거하고 있다.

진실은 한없이 다양하고 다채롭다. 그래야 한다. 왜냐하면, 진실의 항목에는 자유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진실은 스스로에 대해서도 자유를 실천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실의 추구가 과잉되면서 문학은 슬그머니 진실의 항목들을 차별화하기 시작한다. 중요한 것과 하찮은 것을 가리키고 중요한 것만을 고집하게 되는 것이다.

각 시대의 문학은 진실에 대한 독점 투쟁으로 점철된다. S/F, 추리, 판타지는 바로 이 진실에 대한 강박관념으로부터 문학을 해방시킨다.

오직 '다른 세상'만을 지시함으로써 그것들은 진실의 영역이 무한정 넓다는 것을, 그 광활한 대양을 건너기 위해서는 어떤 진실이 중요한가에 매달리기보다는 진실을 찾아 헤매는 과정의 치열성에 뜻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운다. 이 주변부 장르들이 문학의 본무대로 서서히 진출해 가는, 가야만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한국에서는 판타지 문학만이 된다. 앞 질문의 두 번째 측면이 여기에 놓여 있다. 위 문단의 진술이 뜻을 얻으려면 세 장르가 모두 발달해야만 한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이다, 이 사실은 한국의 판타지 바람에는 어떤 강력한 왜곡이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판타지는 이 세 가지 공공적 주변부 장르 중에서 가장 감성적이다. '환상'은 지적 추리에 정면으로 대립하며, 또한 그것은 S/F의 미래 탐구와 달리 과거로 향한다.

S/F가 미래로 열려 있다는 것은 그것이 현실을 추월하려는 의지를 동반하고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것은 아무리 미래세계를 암울하게 그려낸다 할지라도 언제나 개척자의 의지에 의해 추동된다. 그리고 그 개척자의 의지는 꿈꾸는 자의 의지일 뿐 아니라 동시에 사유하는 기계의 의지이다.

미지를 발견하는 자는 새로운 생각을 고안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판타지가 과거로 간다는 것은 그것이 개척적이지 않고 회귀적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미 설정된 어떤 '이상적 과거'에 판타지는 강박되어 있으며, 그곳을 향해 끊임없이 돌아가려 한다. 그리고 그 회귀의 방식은 개척적이 아니라, 다시 말해, 지적 추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회귀적이다. 그것은 가정된, 그리고 한정된, 이미 있는 '다른 세상'에 대한 꿈이다. 판타지 소설의 모든 재료가 몇 권의 노트에 담겨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무협소설도 이와 같다. 반면 S/F의 재료는 몇 권의 노트에 담길 수가 없다. 왜냐하면 신세계는 항상 미지를 향해 열려 있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의 재료도 노트 안에 담길 수가 없다. 추리 소설의 초점은 추리의 내용이 아니라, 논리의 한없는 공방이기 때문이다).

중세의 '기사도 로망'이 그러했듯이, '이미 있는' - '한정된' - '이상적' 세계에 대한 의지는 현실에서 패배한 자('기사도 로망'의 경우에는 12세기 말엽 왕권의 강화와 부르주아의 진출에 직면안 기사계급의 몰락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가 과거의 영화를 되살리려는 노력 속에서 태어난다. 이 패배자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과거의 영광에 대한 고유한 체험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와서 우리는 독자층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대관절 누가 판타지 소설을 읽는가?

그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한가지 사실을 더 지적하자. 오늘의 판타지 바람의 편향은 판타지 독주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판타지 내부에도 편향이 있다.

한국의 판타지는 오직 한가지이다. 에픽 판타지라고 부르는 것 말이다. 판타지 소설 바람의 첫 머리에 공포물 『퇴마록』이 있었음을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후 전개된 일방적인 흐름에 비추어 보면 예외적이고 일회적인 사건에 지나지 않았다. 거의 대부분의 판타지는 어떤 거대한 혹은 비의적 목표를 쟁취하기 위해 벌이는 장구한 서사 로망들 일색이다(이화여대 심포지엄에서도 판타지 작가들은 의도적으로 공포물을 자신들의 영역으로 밀어내었다.)

이 에픽 판타지는 저 옛날 기사도 로망이 그러했듯이, 그리고 오늘날 음지의 무협 소설이 그러하듯이, 제한된 유형화된 구조들의 되풀이된 조합,변이이다.

한국의 판타지는 양성화된 무협소설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위협에 처한 세계에서 출발하여, 재앙을 가져오는 자와 구원을 가져오는 자로 얽히고, 시련과 활극을 전개하고, 그리고 마침내 평화의 재귀로 완결된다는 점에서 그것은 무협소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러니까, 이 편벽된 판타지는 판타지의 과거 지향, 이미 있는 이상 세계에 대한 동경을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그것은 가령 이 판타지들이 전범이 되어 있는 톨킨의 작품과 비교해봐도 그러하다. 톨킨의 『반지 전쟁』 밑바닥에 흐르는 의식은 죽음의 편재함 혹은 삶의 도저한 불가해함이다.

그것이 환상과 현실 사이의 긴장을 유지시키는 심줄이다. 그러나 한국의 판타지 소설에는 신나는 활극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누가 이 상투적 세계를 집요히 들락거리는가?

한국의 청소년들이 가장 큰 독자층이다. 이 청소년들은 널리 알려진 대로 '대학 입학' 에 목줄이 매인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그것뿐만이 아니다.

한국의 청소년은 아주 특이한 유년 시대를 경험한다. 조성면도 『환멸의 시학, 환상의 정치학』에서 지적하고 있지만, 산업화와 근대적 인구 정책 속에서 발생한 것이 어린이 신화화이다. 어린이는 "가족과 사회의 새로운 미래로, 아낌없는 투자의 대상으로 곧 소중한 '어린이'로 빠르게 진화"하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어린이는 산업화 시대를 휩쓸고 있는 각박한 현실관계에서 인간이 돌아가 기댈 수 있는 마음의 고향으로서 개발되었따.

어린이는 치열한 경쟁 관계로 뒤얽힌 삭막한 현실이 가 닿을 최후의 보금자리를 비추는 기능을 하였다. 그러니까 어린이 신화화는 아이가 투자의 대상이기보다는 차라리 정처와 안식의 상징적 표지가 됨으로써 완성된다. 게다가 근대이래 한국의 계속된 고난(일제 강점과 분단)은 부재하는(혹은 힘을 상실한) 아버지를 아이로 하여금 잠재적으로 대리하게 하였다. 조상에 대한 이상李箱의 히스테리칼한 진술, 김원일의 작품을 위시해 많은 한국 소설들에서 "빨리 늙었으면 좋겠다"는 어린 인물의 욕구가 튀어나오는 것은 그런 사정 하에서이다.

이 배경 위에서 근대화를 등에 업고 한국의 아이들은 큰 기대와 극진한 보살핌과 무한한 자유를 한꺼번에 입게 된다. 그리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아이는 돌연 입시의 감옥 안에 유폐된다.

중,고교 입시의 폐지는 학생들에게 자유를 부여해준 게 아니라 학부모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이미 아이는 잠재적 일류대학생으로 장기간의 지옥훈련에 들어간다. 유년과 청소년을 겪으면서 한국의 미성년자들은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경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천국과 지옥은 거렇게 날카롭게 갈라지지 않는다. 유년 시절의 자유는 입시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부문에서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청소년은 방기되었고(부모에게서든 학교에서든), 특히 문명의 급격한 변젼과 더불어 청소년 세대가 오히려 부모 세대의 '선생'이 될 수 있는 곳들은 청소년에게 강압적으로 부과된 '공부'의 압력을 해소할 수 있는 맞춤한 장소로 발전하였다. 판타지 소설이 급격하게 성장한 원인이 여기에 있다.

그것이 무협소설과 달리 양성적으로 발달한 것도 그 때문이다, 판타지는 현실의 억압을 해소할 수 있는 장소이자 동시에 유년의 천국을 되찾아주는 장소였던 것이다.

이 해소와 귀환의 장소는 그러나 그 자체로서 삶에 대한 성창릐 장소가 될 수 있을까? "어른들은 몰라요"라든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내 인생은 나의 것" 등의 항의와 절규는 단순히 부모의 왜곡된 욕망에 희생된 아이들의 처지를 직접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왜 부모 세대가 집단적으로 왜곡된 욕망에 사로잡히게 되었는지, 성적순이 아닌 실제의 행복은 무엇인지, 어른들과 아이들 사이에 어떤 통로를 놓아야 서로를 허심탄회하게 알게 되는지를 질문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항의와 절규들은 부모 세대와 청소년 세대에 급격한 단절의 빗금을 그어놓을 뿐이다.

그렇게 빗장이 질러진 곳에서 청소년의 공간은 거리낌없이 발달하게 되었따. 그러나 이 폐쇄된 유기체적 공간은 동시에 문화자본이 쉽게 침입에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TV를 비롯한 온갖 문명의 기기들이 세계에 유례가 없게 어린 세대의 수중에 장악되게 된 기이한 현상은 이로부터 비롯되었다.

문화산업이 노래하는 것도 "어른들은 몰라요"이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이다. 그러나 이제 그 항의와 절규들은 청소년들만의 유람도시를 건설하는 데 기여한다. 그것은 부모로부터 나와 자식의 주머니를 거쳐 마침대 문화 자본의 자루 속으로 흘러 들어갈 화폐의 고속도로에 세워진 비석이다. 통신망도, 통신망 속의 자유 문학 공간도, 그곳에 범람하는 판타지 소설도, 그리하여 마침대 종이책으로 출간된 그것들도 모두 그 고속도로의 일부이다. 그것들은 그냥 휴게소가 아니다. 휴게소이면서 동시에 물관이고 도로이고 모두 자본의 아가리로 모여드는 길들이다.

판타지는 통신망을 거점으로 피어났다고 했다. 통신망은 자유로운 글쓰기가 허용되는 지대이다. 그곳은 검열이 없는 곳이다. 그곳이 마냥 좋기만 할까?

비틀어 보면, 그 지대는 타인에 대한 의식이 부재하는 장소이다. 오직 자의식만이 과잉되어 있을 뿐이다. 객관은 없다. 그것은 주관화됨으로써만 존재한다.

거기에 있는 타자는 타자가 아니라, 작은 타자들, 자아의 이미지들이다. 정말 검열이 없다. 검열이 없다는 것은, 억압이 없다는 것을 뜻하기보다는,

퇴고가, 반성이, 다시-글쓰기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곳에서 소설이 정말 제대로 피어날 수 있을까? 아쉽게도 그곳의 글쓰기는 문장의 기본부터 다시 가르쳐야 할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이영도의 예는 적절한 참조가 될 것이다. 『드래곤 라자』는 미숙한 글쓰기와 문체에 대한 문학적 관심이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는 작품이다.

게다가 『드래곤 라자』는 환상의 세계를 일상의 세계와 연결시키려고 애를 썼다. 판타지의 줄거리 그 자체로서는 얼핏 무의미한 듯이 보이는 일상적 감정들에 대한 묘사가 자주 등장한 것은 그것을 증거한다. 『퓨처 워커』는 문장이 썩 안정된 반면, 외국어와 한자를 불필요하게 남용하고 있다.

그가 멋을 부리고 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설익은 채로 이미 판타지 세계에서 대가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영도를 제외한다면, 이상균의 『하얀 로냐프강』이 문장이 안정되어 있고 서사적 줄거리로서도 잘 짜여진 무협소설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 외의 상당수의 작품들은 한글 문장이 우선 안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인물들의 행동이 서로 간에 균형을 이루고 있지 못하다.

기초적인 수준에서 그러하다. 가령, 한 기사가 마을을 위협하는 괴물을 처치하고 마을을 구했다. 그렇다면, 마을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대할까?

괴물을 처치한 그는 괴물보다 더 두려운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 감사할 수 있을지언정 당장 무람없이 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사에게 한 마을 사람이 "어깨를 툭 치면서" 인사를 청한다. 그러면서 "나이도 별로 들어 보이지 않는데...... 나도 엄두를 못내던 그 괴물을 말야. 이름이...... 랜스랬지? 난 이안이야. 오늘 내가 한턱 낼......"라고 말한다. 아직 잔치도 벌이지 않았고 술 한잔 나누지도 않았는데, 벌써 마을 주민은 이 검객을 친구처럼 대하고 있다(아마도 작가는 엉터리 서부 영화를 너무 많이 본 듯하다).

이 예는 판타지 소설들이 일상적 감정의 결들을 표현하는데에 얼마나 미숙한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판타지에 동원되는 고유한 용어들을 제외하고는 어휘의 심각한 부족에 시달려 흉칙한 괴물에 대한 묘사가 몇 차례 반복되면 거꾸로 코믹한 효과를 자아내기도 한다.

대부분의 판타지 소설들은 아직 글쓰기 이전에 있다. 그것은 한국의 청소년 교육이 바른 문장을 배우는 기회를 청소년들에게 전혀 열어주고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좋은 책들을 읽고 온당하게 사유하고 적절하게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을 배양하는 훈련을 한국의 초,중등 교육은 방기해왔다.

입시 아니면 방임이다. 한국의 중등 교육이 완전히 무너졌다고 중등교사들이 스스로 말하낟. 입시는 사교육이 전담하게 되었고,

그 나머지에 대해서는 일방적으로 방임만 하고 있다. 그것이 자유라고 한국의 국가 정책 담당자들은 생각하는 듯하다. 자꾸 자유를 주라고 한다.

학생들이 하고 시픈 대로 하게 해주라고 한다. 그러나, 아니다. 청소년들이 자유의 의미를 배우지 않은 상태에서, 자유를 실천하는

어려움을 체득지 못한 상태에서 마구 주어진 자유가 어디에 쓰일 것인가?

미숙함이 그 자체로서 개성적인 가치로서 인정받는 상태, 인정받을 뿐만 아니라 요란하게 선전되는 사태, 그것이 오늘의 지배적인

청소년 문화이다('지배적인' 이란 형용사는 묻혀 있는 청소년 문화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아니 차라리 그것이 지배적 문화 그 자체이다.

한국의 문화는 청소년적인 형식으로 재편되었기 때문이다. 판타지 소설 바람도 이 기이한 향연의 주 레파토리 중의 하나이다.

이 사회적 현상을 주도하는 것은 실제 청소년들 그 자신이 아니라, 심지어 판타지 작가들도 아니라(대부분은 청소년 세대로부터 갓 탈출한 대학생 세대이다),

관료와 상인이다. 그리고 선생과 부모들이 본의 아닌 후원자들로서 그 연극에 가담하고 있다. 교육 제도와 문화 산업이, 그리고 교육 환경과 문화 산업의 천민성이 그 연극의 공간을 통제하고, 수준을 강제하고 있으며, 그 내부를 화려한, 그러나, 획일적인 버라이어티 쇼로 들끓게 하고 있다.

이 현상의 부정성을 극복하려면 우리는 교육제도와 사회제도, 정치제도 전체를 문제삼지 않으면 안 된다.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판타지를 넘어 모든 문학 현상, 문화 현상 전체를 두고 벌여야 할 싸움이다.

한데, 문학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무엇보다도 이것이 문학적 현상일 수 있기를 바라야 하지 않을까?

앞에서 S/F, 추리소설과 더불어 판타지의 장르적 주변부성이 갖는 의의에 대해 말했었다. 그것들은 낡은 문학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훨씬 자유로운 사유의 평원을 열어놓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판타지 옹호가들은 종종 이 가능성을 오늘의 판타지 소설의 실제에 그대로 적용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관념과 실제는 너무나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념은 실제를 외면할 수 없다.

지금 판타지는 물량적 차원에서 한국 문학의 중요한 부문이 되었다. 이 자원을 개발하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유도할 책임이 한국의 문학인들에게는 있다.

그 작업을 앞에서 말했던 한국 판타지의 세 가지 문제점(두 가지 편향과 미숙함)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을 통해서 일워져야 할 것이다.

글쓰기의 기본으로부터 시작해 판타지의 경계를 자유의 원리에 따라 열고, 더 나아가 그 자신에 대한 반성을 새겨놓고 있는 판타지 문학의 실존을 꾀해야 한다.

실로, 판타지 문학의 '실존'은 거기에만 있을 수 있다. 실존이란 꿈과 현실, 환상과 현실의 부단한 긴장속에서 튀어오르는 생의 활기이기 때문이다.

(1999.9) 정과리 『들어라 청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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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 알겠지만 판갤러들을 위해 책 보고 존나 타이핑한거라 오타가 젖절하게 있습니다. 양해죰☆

이걸로 3번째 우려먹는건데 더이상은 안올릴께요'ㅅ^)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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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

        

quintett  우와 타이핑이라니.. 수고 많았어여. 감사히 보겠스빈다. 물론 지금은 일단 적분 좀 하고 (...)   125.248.158.156 2009/04/13  

quintett  근데 혹시 판타지 말고, 하이틴 소설 같은 여타 비주류에 대한 칼럼같은건 업나여?   125.248.158.156 2009/04/13  

절망선생  그런데 저렇게 쿨한 주민이 있을 수도 있는거 아닌가? 뭐 실 그 주민도 괴물을 처치할수 있는 실력이 있을수도 있다던가..   2009/04/13  

열시  10년전 글인데...아직까지도 이글이 유효화한다는건 참...후우...그나저나 잉여도 적나라하게 까이네   119.148.121.232 2009/04/13  

quintett  절망선생/ 사실 그건 걍 까기 위해서 갖고 온 부분 아니려나   125.248.158.156 2009/04/13  

열시  그리고 저런 관점에서 보면 귀여니 이후 붐을 이뤘던 하이틴도 거의 비슷한 이유로 나왔다고 볼수 있겠네영   119.148.121.232 2009/04/13  

라그  사실 잉여도랑 전혀 상관없는 책입니다. 까려고 긁어온건 아니고 흥미로워서요   2009/04/13  

quintett  라그횽이 까려고 갖고왔단게 아니라 저거 쓴 사람이 판타지 까려고 발췌한 부분아닐까, 하는 소리여뜸.   125.248.158.156 2009/04/13  

달걀폭풍  99년도에도 영도는 까였구나   2009/04/13  

라그  ㄴ ㅋㅋ   2009/04/13  

댓글돌이  댓글 10개 돌파!!  

    

열시  사실 잉여도는 드라 ~ 폴랩까지 이야기가 너무 재미없어서 눈마새부터 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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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도 작가님을 비방(?)하는 판갤 리플들은 일단 접어두고(...)

10년전까지만해도 저명한 비평가 정과리씨가 비평할정도로 한참 자라던 장르였고, 비평 받을만한 퀄러티나마 있었지만 요즘 양판소들은 저기서 비평한대로 소재나 줄거리나 무협소설과 차이가 뭔지...ㅠㅠ


Comment ' 7

  • 작성자
    Lv.38 黑月舞
    작성일
    12.02.27 15:29
    No. 1

    그보다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서도 저 비판에서 지적한 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게 더 의미심장하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 콤니노스
    작성일
    12.02.27 16:11
    No. 2

    저기서 말하는 '감히 문학성을 주장하지 못하는 무협지' 수준이 되었지요. 아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뽀오오옹
    작성일
    12.02.27 16:17
    No. 3

    한국 무협지는 애초에 태생이 중국 대륙을 기반으로 하는지라... 외국에서 보면 요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고. 문학성을 주장하기에는 좀 그렇죠. 누군가 그럼 판타지는 서양을 기반으로 하는게 아닌가 하는데... 그건 특정 국가를 기반으로 하진 않으니까요. 차라리 광할한 영토의 동양 환상물을 하려면 십이국기 같은 작품이 좋을텐데.. 이런 쪽은 팔리지도 않고 다들 쓰지도 않으니...
    이쪽에서는 종교화된 한국 문단을 까지만 저쪽에서는 여기를 근본없는 작품이라고 욕해도 이쪽에서는 뭐라 대꾸할 꺼리가 없는 현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3 지나가는2
    작성일
    12.02.27 16:29
    No. 4

    지금은 저런 비평을 할 가치도 못 느끼는 수준에 도달한 것 같으니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2.02.27 16:36
    No. 5

    그때만해도 기대가 참 많았죠 세월이 무상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7 아자씨
    작성일
    12.02.27 17:34
    No. 6

    장르에서 굳이 문학을 넘봐야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장르가 왜 나왔느지를 생각하고 그것을 즐기다 보면 문학적인 면이 언젠가 저절로 따라 올날도 있겠죠. 하지만 굳이 그길을 넘볼 필요는 없지않을까요. 일단 자기 길에 충실해야겠죠. 열질이 출간되면 두질정도 빼고는 영 재미없는 현재 무판 소설들을 보면 문학성 이전에 재미부터 챙겨야할듯 ㅎ바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2.02.27 18:36
    No. 7

    장르문학인데 문학을 빼면
    옛날 3권짜리 무협지가
    판타지라는 이름으로 돌아온거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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