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똑같이 불쌍한 군번이 되어서 고생하는 후배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흔하게 생각하는 오류가 있습니다.
"군대에선 계급이 깡패니까 병장되면 편해질 것이다."라는 오류죠.
사실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대체적으로 맞는 얘깁니다. 다만 이게 항상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이 특수한 상황때문에 엄청나게 편한 보직을 받고도 지옥같은 군생활을 할 수도 있고, 엄청나게 힘든 보직을 받고도 편한 군생활을 할 수도 있습니다.
뭔가 말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실 분들 많을 겁니다.
쉽게 예를 들어드리죠.
회사가 있습니다. 이 회사엔 사장, 전무밖에 없습니다. 네, 달랑 2명의 회사입니다. 이 회사에 신입사원이 입사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그 신입사원이 꾸준히 진급해 부장이 되었습니다.
부장이 된 그 사원은 부장이 되었다고 기뻐할까요? 참고로 월급은 평사원일때나 부장이 된 이후나 거의 차이 없습니다. 하는 일도 차이 없습니다. 여전히 회사의 막내죠.
별로 기쁘지 않겠죠?
군대도 마찬가집니다.
군대엔 꼬인 군번이라는 것과 핀 군번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꼬인 군번의 경우 위에 예를 들었던 회사의 신입사원과 같은 처지입니다. 병장을 달고도 선임병이 후임병보다 훨씬 많습니다. 병장을 달아봤자 여전히 아래쪽에 위치한 상태라서 온갖 잡일을 다 맡습니다. 더 짜증나는 것은 병장이 되었기 때문에 병장으로서 해야할 업무까지 봐야하는 거죠. 일을 배워놓지 않으면 후임병들을 가르칠수가 없거든요.
제가 그랬습니다. 전 병장달고 총원 40명의 소대에서 제 위로 24명이 있었습니다. 제 동기가 5명이었고...제 아래로 10명이 있었습니다. 병장을 달았는데도 위로 24명 아래로 10명이 있었던 거죠.
반대로 핀 군번이 있습니다. 상병을 채 달기 전에 선임병들이 줄줄이 제대해 버리고 후임병들이 뭉텅이로 막 들어오는 군번입니다. 짧은 시간동안 많은 일을 배워야해서 초반에 고생이 심하지만 일만 배우고 나면 군생활 반절 이상을 고참으로서 편하게 지낼 수 있죠.
계산해보니까 제 후임병 중에 한 녀석은 동기없이 들어와서 이등병때 고생은 좀 했지만 그 대신 상병달기 한달전부터 위에 10명도 안 남게 되더군요...상병 꺾이기도 전에 최고참이 되구요.
어떻게 이렇게 인력관리가 엉망이 될 수 있나?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사실입니다.
그러니 병장 달았다고 무조건 이젠 군생활 편하게 하겠다고 말하지 마세요. 꼬인 군번들은 그 말 듣고 속으로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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