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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작성자
Personacon 윈드윙
작성
12.10.13 07:13
조회
1,265

한 살 한 살 먹어감에 따라 세상을 둥글게 살고, 좀 더 여러 가지 각도에서 타인의 입장을 배려해 보려 노력하는 나이지만 스포츠에 관해서 만큼은 이게 잘되지 않는다.  

본래가 특정 선수 팬으로서 야구-농구-격투기 등 해당 스포츠에 꽂히게 된 케이스인지라 한 번 좋아하게 되면 좀처럼 변하지 않는 '일편단심(?)' 골수팬 성향이 강하다.  

얼마전 은퇴한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의 '야구천재' 이종범은 젊은 시절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4할-200안타-100도루를 동시에 노려볼 만한 괴물중의 괴물이었다. 더욱이 1번 타자임에도 '라이언 킹' 이승엽과 홈런 경쟁을 벌였던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무시무시하다. 더욱이 그는 수비 부담이 가장 큰 포지션 중 하나인 유격수를 맡고 있었다.  

일단 최고라 평가 받으려면 자신의 맹활약으로 팀 우승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규시즌에서 펄펄 날아도 정작 플레이오프 등 큰 경기에서는 맥을 못 추는 선수들이 허다했던 상황에서 이종범은 신인 시절부터 빅매치에 더욱 강한 승부사적 기질을 보이며 팬들을 열광시켰다. 한국시리즈-국가대표 등 비중이 클수록 이종범은 펄펄 날아다니며 상대를 경악케 했던 선수다.  

이전까지의 야구를 그리 썩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타자 중에서는 홈런을 많이 치는 선수가 최고인줄만 알았다. 물론 야구에서 홈런 타자의 비중은 엄청나게 크다. 그러나 어지간한 홈런타자 못지 않게 장타를 뿜어내면서 정교함과 주루플레이 거기에 화려한 수비까지 겸비한 이종범의 플레이는 '이것이 야구다'라고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선동렬을 보고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당시의 나, 하지만 이종범의 플레이를 보고난 후에는 야구에 푹 빠지게 됐고 더불어 그의 팀인 KIA 타이거즈의 광팬이 되었다.  

다만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전성기 시절의 이종범에 눈이 맞춰진지라 그 어떤 타자를 봐도 놀라움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유격수 포지션을 맡으면서 김현수보다 더 정교하게 타격하고, 이대형보다 주루 플레이에 능하고, 김동주 이상으로 홈런을 때려내는, 거기에 궁극적으로 팀을 승리로 이끄는 타자를 다시 내 평생 볼 수 있을지, 천재라는 단어는 이종범 한 사람에게만 같다 붙일 수 있는 별명 같다.

야구판의 천재가 이종범이라면 '농구천재'는 단연 허재다. 이종범이 그랬듯 그는 득점-패싱능력-수비 모든 부분에 걸쳐 최고의 실력을 자랑했고 위기 상황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진정한 승부사였다.

학창시절 이노우에 다케히코 원작 인기 농구만화 '슬램덩크(SLAM DUNK)'에 푹 빠져있던 나는 윤대협 이상으로 다재다능한 능력에 서태웅만큼 자존심 강하고 이정환 이상으로 강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던 허재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 전성기가 지나 들어선 프로농구에서 부상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당시 최강이던 현대를 상대로 역대 최고의 퍼포먼스를 뿜어내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전성기가 들어선 이상민을 간단하게 유린하고 추승균-맥도웰의 더블팀을 박살내버리던 허재의 플레이를 보면 당시의 난 그를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뿌듯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난 허재가 은퇴한 이후에도 여전히 그의 팬으로 남아있다. 그가 선수 시절을 보냈던 기아와 나래(현 원주 동부) 시절 그가 가는 팀을 응원했으며 전주 KCC의 감독으로 부임하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팀을 바꿔(?)탔다. 다혈질이기는 했지만 농구에 있어서 만큼은 항상 정정당당하고 깨끗했던 남자 허재. 그의 순수한 열정은 인생을 살아가는 나에게도 큰 가르침이 되고 있다.

'불꽃 하이킥' 미르코 크로캅은 정말이지 아주 우연하게 나의 눈에 들어왔다. 야구와 농구에 빠져 다른 스포츠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지만 어린 시절 격투기에 잠시 동안 깊이 매료된 적이 있었다.  

WWF가 큰 인기를 끌던 그 시절, 헐크 호건, 얼티밋 워리어, 마초킹 랜디 새비지, 안드레 더 자이언트, 빅보스맨, 캐리 본 에릭, 티토 산타나, 밀리언 달러맨, 릭 마텔, 어스퀘이커, 히트맨, 스네이커 등 스타급 프로레슬러들의 일거수일투족은 필자를 포함해 주변 친구들의 큰 관심사 중 하나였고, 책자·비디오·게임 등을 통해 수없이 정보와 취미를 공감하고는 했었다.  

인터넷이 거의 없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 인기와 관심을 모았다는 것은 지금와서 생각하면 정말 대단했다. 그러나 이후 프로레슬링은 이른바 스토리에 중점을 둔 일종의 엔터테인먼트이고 각본까지 존재한다는 사실을 듣고 큰 실망과 함께 관심 자체를 끊어버렸다.

성인이 된 후 케이블채널을 통해 K-1과 프라이드 등을 접하게 되었고, 프로레슬링과 달리 실전이 중심이 되어 돌아간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쉬이 호감을 느끼지 못했다.

주요 경기를 할 때는 멍하니 시청도 했었지만 타 종목 스포츠가 다른 곳에서 방영되면 아무런 미련 없이 채널을 돌리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나이의 경기를 보았다. 크로아티아의 특수경찰 출신이라고 소개된 다부진 인상의 그를 자막에서는 '미르코 크로캅'이라고 소개했다. 그냥 '다부지게 생겼네' 그 정도가 첫인상의 전부였다. 잘생겼네 너무 멋지다 그런 생각은 처음에는 하지 않았다.  

밥 샙이라는 엄청난 거구의 거친 파이팅 장면을 하이라이트로 보여준 뒤 크로캅과의 경기 장면이 방영되었는데, 무심코 경기를 지켜보다 잠깐 다른 곳을 보는 순간 어느새 경기가 끝나버렸다. 아마 둘 사이에 경기가 펼쳐졌었나 보다.  

경기를 보기 전까지는 머리를 빡빡 밀어 제친 험악한 인상의 흑인 덩치 밥 샙이 경기를 이겼을 것이라 짐작했다. 덩치 차이를 비롯 외모에서 풍기는 포스에서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 버렸다.  

리플레이 화면을 통해 지켜본 크로캅의 플레이는 말 그대로 경이(驚異) 그 자체였다. 덩치에 걸맞지 않게 빠른 밥 샙의 돌진을 놀라운 사이드 스탭으로 이리저리 피하더니 짧지만 강력한 펀치를 그의 얼굴에 꽂아버렸고 그 한방에 승부는 끝이 났다. 마치 거대한 흑곰을 날렵한 표범 한마리가 정확한 일격으로 무너뜨려 버린 느낌이었다.  

바닥에 쓰러진 채 고통스러워하는 밥 샙과 주먹을 불끈 쥐며 승리의 감동을 표현하는 크로캅, 그날의 경기에 묘한 느낌을 받은 나는 이후 크로캅의 지난 K-1 경기 등을 일부러 찾아보며 이 선수가 굉장히 화려한 발차기까지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저기 채널을 돌리던 중 프라이드 경기를 보게 되었고 언제나처럼 관심 없이 다른 곳을 시청하려던 순간이었다. 낯익은 얼굴이 화면에 비치는 것이 아닌가. 다른 아닌 크로캅이었다.

'잉? 왜 저 선수가 저기 있지…?' 아무리 격투기에 관심이 작았다지만 종합격투무대인 프라이드와 입식타격이 주가 되는 K-1은 구별할 수 있었다.  

어쨌든 아는 얼굴을 보게 되었다는 반가움(?)에 경기를 시청하게 되었고, 이왕이면 구면이라고 나에게 익숙한 크로캅을 무조건 응원하기 시작했다. 워낙 멋지게 경기를 잡아내는지라 응원하면 할수록 기분이 좋아졌다. 대부분의 상대선수들이 인상과 체구에서 더욱 강해 보였지만 크로캅은 이에 아랑곳없었다. 그의 무시무시한 하이킥이 머리에 적중되는 순간 엄청난 전율과 함께 경기는 거기서 마무리되기 일쑤였다.

더욱더 나를 기쁘게 한 것은 내가 낯익어하고 좋아했던 크로캅이라는 선수가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팬이 엄청났다는 사실이다. 성적으로서 1인자는 아니었지만 '60억분의 1'로 불리던 '얼음황제' 에밀리아넨코 표도르보다도 인기가 좋았던 것이 바로 크로캅이었다. 역시 사람들 눈은 은근히 비슷(?)했던 것일까.

물론 안타깝게도 현재의 크로캅은 그 위상이 바닥까지 추락한 상태다. 큰 기대를 모으고 UFC로 스카웃되었지만 나이로 인한 운동 능력의 상실로 인해 예전의 초인같은 움직임을 완전히 잃어버렸고 그로 인해 명예롭지않게 은퇴까지 하고 말았다.

선수생활의 대부분을 링과 함께 하다보니 선수 말년에 들어온 옥타곤 철장 역시 적응이 안됐다는 평가다.  

이로 인해 국내에서는 안티 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찢어발기고 있다. 대부분이 같은 조건이면 국내나 동양선수보다는 서양파이터를 응원하는 취향의 이들에게는 '푸른 눈의 무사'로 동경 받는 크로캅이 곱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팬들은 크로캅을 사랑하고 아낀다. 그가 단순히 강해서만이 아닌 그의 인생 역정과 사람 자체까지도 같이 좋아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나도 마찬가지다. 크로캅은 격투에의 열정을 잊지못해 K-1 입식무대로 복귀했다. 예전처럼 잘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를 너무도 좋아했기에 응원할 수 밖에 없다.  

골수팬이 된다는 것은 참 어렵다. 해당 선수가 잘 나갈 때는 감정이입으로 인해 나까지 뿌듯하고 자랑스럽지만 반대의 경우가 된다면 괜스레 마음이 축 처지고 같이 힘이 빠진다. 하지만 그맛에 스포츠를 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도 그렇고 다른 이들도 그렇고…. 그것이 바로 스포츠가 주는 최고의 마력이 아닐까 싶다.

- 윈드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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