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만일 기업을 경영하고 있다면,
원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 인적자원이 충분하고 넘치도록 많다는 전제 하에
직원을 뽑을 때 가능하다면 몽창 글을 쓰는 이를 뽑고 싶습니다.
실무 능력이 1,2점 부족해도 저라면 글 잘 쓰는 이를 뽑겠습니다.
에세이든 소설이든 글을 잘 쓴다는 건,
잘하면 쓸모가 좀 있고, 없어도 상관없는 그런 정도가 아니라 아주 강력한 이점들을 갖습니다. 대체로 박식하고, 지적 호기심이 많고, 배움에 두려움이 없고 등등 몇 가지 장점들을 넘어서는 아주 강력한 경쟁력을 갖고 있는데 그건 바로 설득력을 얻기 위한 장치를 할 줄 안다는 점입니다.
직원이 100~200명 있는 작은 회사를 하나 가정해 보자구요.
개발이든 뭐든 어떤 비지니스가 있는데 이게 3억짜리입니다.
"예산이 없어서 그러는데, 이거 한 2억에 안해볼래? 나중에 다른 건으로 빚은 갚아 줄게."
이런 제안을 받았다고 치자구요. 워낙 흔한 일이잖아요.
임원이나 영업 쪽에서는 굴러들어온 호박덩어리, 어떻게든 진행해야 합니다.
매출 쿼타, 성과급 등 강행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칩니다.
그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이런식으로 행운이 올 리가 없습니다.
과업을 수행할 실무부서의 팀장들을 부릅니다.
A팀장은 단호합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쇼. 그거, 우리가 못해요!" 하고는 나가 버립니다.
A팀장은 해서는 안되거나 하기 어려운 일들을 단호하게 차단하기 때문에
실무부서에서는 늘 영웅대접을 받습니다. 카리스마도 있고, 조직원들이 절대적으로 신뢰합니다.
영업부서에서는 저놈 때문에 못해먹겠다며 늘 아우성입니다.
A팀장은 회사를 위해서는 사라져야 할 존재입니다. 그가 하려는 일은 늘 무난하게 할 수 있는 일,
즉 레드오션 시장입니다. 부가가치가 거의 없습니다. 때로는 핵심역량을 투입해 새로운 사업영역에
진출해야 하는데 실무팀이 저런 분위기라면 회사는 점점 힘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B팀장은 무릅니다. "아유, 그걸 우리가 어떻게 해요. 어떻게든 되는 방향으로 하기는 해야 하는데...."
입장이 불분명하고, '어떻게든 되겠지. 언제나 그래왔으니까.
해 보다가 어려워지면 영업쪽에서 전문가를 투입시켜주겠지' 이런 생각에 젖어 있습니다.
이런 사람 역시 회사를 위해서는 사라져야 할 존재입니다. 영업쪽에서 실무팀을 신뢰하지 못하게 합니다.
실무쪽에서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 팀 내에 없는데, 일을 맡았습니다.
엄청난 스트레스와 노동부하가 주어지고 나중에는 성취감도 없이 패잔병이 되고 죄인이 됩니다.
능력 있는 사람이 떠나고 그 조직에는 더욱 무능한 사람들만 남게 됩니다.
C팀장은 A팀장이 그랬던 것처럼 이 사업이 폭탄임을 압니다. 자신까지 못해! 하고 나가버리면 그 폭탄이 터지기 전에 사내에서 먼저 폭탄이 터지겠다는 생각까지 합니다. 그래서 장치를 만들고 운을 띄웁니다.
"그 일 제대로 하는 전문가들은 연봉이 1억이 넘어요. 우리 회사엔 그거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잖아요."
사업이 진행되게 하는 그림을 보여줍니다.
"한 사람 스카웃하고 우리팀이 달라붙으면 별 무리 없이 되겠네요."
임원과 영업 대표의 얼굴이 밝아집니다. '그렇지, 이렇게 되는 방향으로 생각을 해야지.'
"그런데, 그 일 끝나고 스카웃한 사람 계속 써먹을 후속 비지니스를 지속적으로 만들 수 있나요? 그게 아니라면 그런 고연봉자를 무턱대고 데려올 수는 없잖아요. 그 친구 커리어를 위해서도 한 건 바라보며 데리고 오면 욕먹죠. 그렇다고 소싱해서 쓰려면 6개월만 써도 1억5천은 줘야 할 것 같은데."
임원과 영업대표의 표정이 찌그러집니다.
"그 기술 배우려면 한 2년은 걸려요. 사전 기술을 갖고 있는 사람도 1년은 배워야 하는데. 우리팀에 똑똑한 친구들이 있으니까 나하고 이대리나 박과장하고 둘이서 6개월만 배우면 어떻게든 해 볼 수는 있겠는데."
다시 임원과 영업대표의 얼굴이 조금 펴집니다.
"두 사람이 실무에서 6개월간 빠지면 사실상 팀이 6개월간 놀게 되는 것이나 다름 없는데. 하여간 그렇다고 치고, 그 사업 마치고 그 기술을 쓰는 후속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여전히 남습니다. 그 쪽 비지니스를 전문으로 하는 영업사원도 하나 정도는 확충해야 하고. 회사가 정책적으로 그 쪽 사업영역에 진출하겠다고 하겠다면 몰라도."
임원과 영업대표의 표정이 제자리를 찾습니다.
"나랑 이대리나 박과장이 내년에 그 일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로 가서 연봉 1억 받고 싶지, 확실한 수행경력이 하나 있어도 커리어가 신통치 않아서 8,9천 밖에 못받으려나, 하여간 여기서 계속 4,5천 받자고 하지는 않을 거 아뇨. 영업조직 내에서 후속 비지니스를 어찌할 것인지부터 결정하고 사장님이랑 결론부터 내야 할 것 같은데."
회사는 사업 진행을 포기합니다. 처음부터 안되는 사업이었고, 역시 그렇게 됐습니다.
C팀장이 없었다면 그 회사가 어찌되었을지 암울합니다. 어차피 안되는 사업이었고, 결국 그렇게 되었는데 A팀장은 사장한테 호출당하고 영업부서는 A팀과는 일을 안하려고 작정을 합니다. B팀장이 결국 일을 가져갔다면, 욕은 욕대로 먹고 회사 이미지는 사방에 먹칠하고, 마감 2개월 남겨두고 외부에서 전문가 2명 소싱해서 끝내고 사업은 적자로 결론납니다. 3년간 유지보수로 소싱했던 업체에 지불해야 하는 금액까지 감안하면 얻어맞고 합의금 주는 꼴입니다.
단편적이고 과장된 예를 들었습니다만, 글을 잘쓰는 사람들 특히 장편소설을 완결해 본 사람들이라면 정말로 큰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글을 쓰지 않아도 그런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요. 다만 그걸 미리 알아볼 재주가 없을 뿐.
또한 바둑 두는 사람들의 포석이라는 것도 비슷하기는 합니다만 그건 앞을 내다보고 선점효과를 얻는 것인데, 그런 재주는 일반적인 곳에서 쓰이지는 않지요. 그런 재주가 쓰이는 분야는 따로 있을 것 같습니다.
C팀장 같은 사람은 부부싸움을 해도 무언가 장치를 만들면서 할 것 같지 않나요?
재미있으라고, 자부심 가지라고 해 본 소리인데... 혹 불편한 분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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