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계신 어머님께서 햇밤을 몇 알 보내오셨다.
꼼꼼하게 포장한 검은 비닐봉지가 초라하게 늙어 가시는 어머니의 모습인 듯 느껴져 마음이 싸해진다.
검은 봉지 안에는 몇 알 되지 않는 검붉게 윤기가 흐르는 굵은 조생밤이 있었다.
굵은 밤알을 손에 쥐어본다.
콧속으로 왈칵 몰려드는 가을의 향기가 밤 내음인지 추억의 내음인지 모호하다.
콧속이 찡해지며 시골 뒷산에서 밤을 찾아 헤매던 어린 나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강원도 감자바우..내가 태어난 곳이 바로 강원도 두메산골이었다.
마을 앞을 흐르는 널찍한 시내 건너편에 남산이라고 불리던 꽤나 높은 산과 야트막한 뒷산자락에 지어진 정겨운 오십호 가량의 가구가 모여 살던 곳..
봄이면 참꽃가지를 꺾어 꽃잎을 뜯어먹으며 온산을 헤집고 다니며 나무를 타고 놀던 죽마고우들의 허름한 집이 있던 곳이었다.
여름이 되어 날이 뜨거워지면 양동이를 하나들고 쇠스랑과 족대를 챙겨 벌거숭이 친구들과 집을 나서곤 했다.
얕은 시냇물 속을 첨벙거리며 은어를 쫓고, 커다란 바위를 뒤집어 밑에 숨은 돌쭉저귀를 찾아낸다.
시냇물 건너편 모래 숲에 메어둔 누런 황소가 싸놓은 커다란 똥 속에 살던 쇠똥구리를 찾아 서로 싸움을 붙이고 내기를 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가을이 되면 뒷산의 밤나무에서 밤이 익어간다.
하늘 높이 치솟은 밤나무의 무성한 가지에 열린 밤송이들이 노란 빛으로 물들면 새벽마다 밤나무 밑을 헤매곤 했다.
어스름하게 밝아오는 새벽 여명 속에서 떨어진 밤을 줍는다.
후득 후드득~
밤을 줍는 와중에도 밤송이와 알밤들이 떨어지며 가지에 부딪치는 소리가 연신 들려온다.
입으로 밤 껍질을 까다 보면 씁쓸하면서도 들큰한 밤 냄새가 콧속으로 한가득 몰려 들어오곤 했다.
희끄무레 밝아오는 새벽을 헤치며 밤나무아래에서 풀숲의 밤을 찾는다.
“밥 먹고 학교 가라아~”
산 아래에서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네!”
힘차게 뛰어 내려가는 바짓가랑이 사이로 풀잎에 묻은 이슬이 옮겨온다.
마을의 집들 사이 각각의 굴뚝에서 흰 연기가 솟아오르는 평화로운 정경이 눈앞에 스쳐지나간다.
손가락으로 찌르면 금방이라도 푸른 물이 주르륵 흘러 내릴 것 같은 파란 하늘이 새삼스런 감상을 불러 일으킨다.
아! 가을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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