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에 취미로 괴담같은 것들을 작성했는데 그 중 하나 살짝 손 봐서 올려 봅니다..
실은 하나도 무섭지 않을 수 있다는게 함은정...
-맹인-
나는 맹인이다. 그래서 나는 세상을 볼 일이 없다. 하지만 나는 딱 한번 이 세상을 본 일이 있다. 그러나 그건 좋은 기억이 아니었고 그 이후로 나는 세상을 본다는 것에서 흥미를 잃어버렸다.
비록 태어날 때부터 시력을 잃었고 살아가는데 보통 사람들보다는 배의 고통을 가질 수 밖에 없었지만 복은 있었는지 부모님이 잘나가는 중소기업의 경영진이어서 큰 부족함은 없이 살 수 있었다.
3년 전의 일이었다. 그 날 늦은 시간이었지만 파출부 아주머니도 돌아가서 나는 군것질 거리를 사기 위해 밤길을 나섰다.
편의점까지는 그렇게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집에 만 있을 수는 없었다. 집안의 답답한 공기보다는 그래도 바깥공기가 나으니까. 더구나 막 3월 달에 들어선지라 선선한 공기가 더욱 맘에 들었었다. 어느 정도 걸었을까 나를 인도해주고 있던 맹인견이 멈춰서더니 그르릉거리기 시작했다. 뭔가 안 좋은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었다. 보통은 술 취한 취객을 보면 이렇게 그르릉거리곤 했다.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걸 보니 개천 옆의 인도 인 듯 했다. 동네에 떠도는 이야기 중에 개천의 주위가 예전엔 뻘이었는데 거기에 빠져서 죽은 아이들이 가끔씩 보인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뭐.. 그래 봤자 나 같은 맹인에게 있어서는 두려움이 될 수 없었다. 애초에 보이지를 않으니까. 어쨌든 개를 어슬러 다시 앞으로 걷고 있는데 무언가와 어깨를 부딫쳐 뒤로 자빠졌다.
“엇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보이지는 않지만 부딪친 곳을 향해 눈길을 돌리며 말했다. 상대방에게서 답은 없었다. 손을 뻗어 더듬어보니 무언가가 잡혔다. 옷자락 같은 거였는데 축축했다. 다시 괜찮으냐고 물으며 일어서는데 이번엔 맹인견이 크게 짖기 시작했다. 귀를 울리는 개 짖는 소리에 정신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나는 다시 손을 더듬어 보았다. 어깨인 듯한 옷자락이 만져졌다. 여전히 축축한 느낌. 느리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더 위를 더듬으니 물컹하고 살의 느낌이 손가락에 전해져 왔다. 축축하면서 끈적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이상했다. 목덜미.. 턱..턱선.. 함부로 이렇게 손으로 남의 얼굴을 더듬는 건 상대방에게 상당히 불쾌한 일일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에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아마도 감 이었을 것이다. 뭔가 정상적인 것이 아니다란.. 그리고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분명 귀가 만져져야 할 부분인 듯 한 대 귀는 만져지지 않았고 그건 입, 코, 눈 모두 마찬가지였다. 순간 온 몸이 싸늘해졌다. 뻘에 빠져 죽은 아이의 이야기, 사람들의 구설.. 그런 것들이 머릿속을 지나갔고 그 순간 아주 잠깐 이었지만 눈 앞이 보였다. 어슴푸레한 달빛이 물 위로 반사되고 있었고 잡초로 우거진 개천 주변.. 그리고 콘크리트 바닥.. 모든 것이 시야 안에 들어왔다. 그리고 엎어져서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얼굴 없는 사람. 민둥한 얼굴은 물기로 빛났고 꺾인 목은 부적절한 각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내가 기절하기에는 말이다.
그 후 일어 났을 때에는 병실이었다. 부모님의 얘기로는 내가 바닥에 쓰러져있었는데 물에서 건진듯한 마네킹도 같이 엎어져있었다고 한다. 내가 본 것이 귀신은 아니라는 것이다만... 나는 알고 싶다. 왜 그때 나는 볼 수 있었는지. 그것의 얼굴이 왜 나를 향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왜 내가 만진 마네킹의 얼굴은 살과 같은 촉각이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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