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띠님의 이야기는 문제가 좀 있군요. 물론 작가는 자신이 원하는 글을 쓸 자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독자 역시 소설을 마음대로 읽을 자유가 있지요. 이영도씨가 드래곤라자를 통해서 ‘나’의 존재론적 가치를 이야기해도 독자가 후치의 여행담에 만족하고 끝낸다면 그걸로 좋은 거죠. 소설은 교과서가 아니잖아요? 굳이 작가의 모든 의도를 파악해야할 의무는 없습니다. 작가를 좋아하고 작가의 글이 좋다면 좀 더 심층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할 따름이지요.
그리고 장르문학 뿐만 아니라 거의 대다수의 모든 소설은 본디 대리만족을 추구하게 됩니다. 현학적인 주제가 있다고 대리만족을 포기 하는게 아닙니다. 순문학도 마찬가지죠. 주제는 저마다 따로있지만 방법론적으로 볼 땐 항시 주인공의 행적에 독자가 몰입하게하고 그로인해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이 가장 많지요. 독자가 몰입한다는 것은 단순히 논리를 따져가며 독자가 행간의 앞뒤를 파악하는 행위에서 일어나지 않고 소설 속 상황에 ‘나라면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주인공과 나를 대체하는 현상 속에서 일어납니다. 말 그대로 주인공을 대리해서, 소설의 내용과 나의 생각을 비교하고 동질감을 느끼고 주제에 접근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이 바로 대리만족입니다.
실제로 문피아 비평란에 올라오는 수많은 부정적 글의 요체는 단 한줄입니다. ‘내용이 이러이러해서 도저히 몰입이 안된다.’ 물론 부적절한 단어 사용이나 오타 때문에 올라오는 감상이야 소설의 기본도 안되는 것에 대한 비판이니 거론할 가치도 없는 것이고, 결국 독자가 소설에 대해 부정적인 감상을 내놓는 이유는 몰입이 안되거나 몰입 도중 납득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몰입이 깨지는 경우란 것이죠.
장르문학의 경우 작가가 말하는 주제에 다다르는 행위 보다는 주인공과의 동질감 형성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춥니다. 추리소설의 경우 일종의 논리적 퍼즐을 도입해서 주인공과 같은 단서로 추리하게 만드는 대리만족을 선사하고 공포소설같은 경우는 위험에 닥친 주인공의 상황에 자신을 몰입하여 극한의 공포를 느끼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지요. 판타지와 무협은 주인공의 희노애락과 갈등을 기반으로 삼아 호쾌함 내지는 일상을 타파하는데서 재미를 추구합니다. 물론 어떤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쓰거나 본인 만족을 목적으로 하는 장르소설들도 더러 있지만 일차 목적은 재미추구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순문학과 장르문학을 나누는 특정한 기준선이 되지요.
흔히 말하는 ‘장르문학 보지말고 순문학이나 보세요’ 하는 말은 이런 연장선상에 있는 말입니다만 능력있는 작가라면 일차목적 이외에 자신이 생각하는 주제의 전달도 가능합니다. 예컨데 드래곤라자가 일차적으로 재미가 없었다면 ‘나는 단수다’ 라고 이야기하기 전에 이미 연재가 중단 되었겠죠. 혹은 그냥 이영도만의 자기만족을 달성한 글로 끝이 났을 겁니다. 소설이 ‘재미’를 최우선으로 추구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엔띠님이 홍보하는 이유 자체에 대한 비판을 하고 싶어서 글을 쓰게 되었는데요. 홍보는 단순히 물리적으로 자신의 글을 광고하는데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독자가 재밌다고 느끼고 소설 내용에 충분히 공감하게 된다면 소설은 성공하게 되어있습니다. ‘나는 내 만족을 위해 글을 쓰지만 사람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홍보를 하지만 독자의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 따로 노력하지 않는다’ 는 이야기는 모순입니다. 아니 모순이라기 보다 작가의 철없는 투정이죠. 그런 이유라면 그냥 작가 본인의 일기를 연재하시고 열심히 홍보하세요. 장르문학 사이트인 문피아에 연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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