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역사물을 좋아하고 즐겨읽는 편이지만 상당수의 대체역사 소설을 읽다가 손을 놓은 적이 많습니다.
몇가지 설정이나 개연성에 치명적인 오류가 있더라도 소설의 설정이니..하고 넘어가면 되는데
가장 이해가 안가는 건... 구조 자체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대체역사 소설(특히 회귀물)의 주인공들은 회귀전, 그러니까 현대에 있어서
주요 강대국의 핍박에 시들어가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보며 분노를 하게되고
과거에서 이러한 사실을 다시금 되새기며 한국(혹은 조선, 고려 등)을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강국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네. 뭐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저도 이러한 맛에 대체역사 소설을 보기도 하니까요.
주인공(혹은 회귀한 집단)에 의해 한국은 기술, 문화, 정치, 사회, 경제 등이 제도적으로 비제도적으로도 강력해집니다. 그리고 이 강력해진 힘을 외부로 투사하죠.
제가 의아함을 느끼고, 결국 읽다가 손을 떼게 되는 이유는 여기 있습니다.
회귀전, 주인공은 강대국의 제국주의, 신식민주의 등 약소국을 핍박하는 것을 보며 분노하고 힘에 의해(그것이 군사력이던, 경제력이던) 모든 것이 지배되는 세상에 진저리를 칩니다. 하지만 회귀를 하면 주인공들의 모습은 이들이 혐오했던 강대국의 모습과 다를게 없습니다. ‘힘’을 위해 전쟁과 핍박을 정당화하며 자신이 강해지기 위해 어쩔수 없다..는 식의 논리를 펴놓게 됩니다. 정복하고, 지배하고, (경우에따라)탄압을 하죠. 여기에 더이상 정의는 없어집니다.
독자는 여기서 무엇을 느껴야할까요? 한국이라는 국가가 가상으로나마 강대국이 되어 세계를 휩쓸고 다닌다는 데에 대한 짜릿함? 중국과 일본이 철저히 짓밟히고 미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이 한국의 위세에 눌려 쩔쩔매는 모습에서 오는 희열? 그것도 아니면 역사적으로 반성하고 뉘어쳐야할 제국주의, 식민주의론도 우리가 저지를 수 있으니 조심해야된다?
저는 철저히 이러한 모습으로 흘러가는 대체역사소설이 잘못되었다고 봄니다.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은 무조건 정의를 지향해야된다! 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힘을 원칙없이 사용하고 남이 하면 악, 내가 하면 선 이라는 식의 논리를 자연스럽게 소설속에 내재하고 그것을 당연시 여기는 것이 문제라고 봅니다.
하지만 대체역사소설의 방향이 어디로 흘러가야할지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같은꿈을꾸다-삼국지편’과 ‘개벽(3~4년전에 문피아에서 연재했던걸로 기억하는데 제목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두 편입니다. 같은꿈을꾸다에선 주인공 역시 무서운 속도로 자신의 세를 확장해나가기는 하나 이것이 폭력으로 점철되지 않았고 끊임없이 자신의 길이 맞는지 묻는 모습을 보였죠. 개벽은 기억하시는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일제 말기 한반도에 대한민국 군대가 등장하여 새로운 나라 건설을 준비한다...라는 내용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 너무 오래되서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만, 마찬가지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확실한 무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만이 옳다라는 식의 전개가 아니었고 당시의 명사들과 끊임없이 토론하고 조언을 구하며 앞으로 만들어갈 새나라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던걸로 기억합니다.
이러한 두 작품의 방향만이 옳다고 전제하는 건 아니지만 앞서 언급된 폭력으로 점철된 내용들 보다는 훨씬 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요새들어 대체역사물을 읽다 이런 회의감이 많이 드네요. 다른 분들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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