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설은 잘 보내셨나요?
저는 이번에 세뱃돈으로 무려 11만원이나 받았어요!
하지만 어쩌다보니 친오빠 자취방 계약대금으로 다 들어가서 제 수중에 남은 돈은 없네요.
이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자면 글이 또 엄청나게 길어질 것 같아서 생략할게요.
사실 이 말고도 할 이야기가 엄청 많거든요!
*
집들마다 차례지내는 법이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큰 틀은 비슷하지요?
대부분이 그렇듯이 저희도 여자들이 음식장만을 한답니다.
그리고 차례 상에 음식을 나르는 건 항상 저와 제일 어린 사촌동생이 도맡아서 해왔어요.
설에 할머니 댁에 가면, 제 위로 오빠 둘과 언니 하나가 있어요.
그리고 제 밑으로는 남동생 두 명이 있지요.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는데, 제가 조금 철이 들고 나서부터는 차례 음식은 항상 제가 날랐어요. 그리고 사촌동생들이 조금 큰 이후로는 그 둘도 함께 날랐고요.
그 위에 사촌오빠나, 언니, 그리고 우리오빠는 아주 가끔을 빼고는 음식을 나른 적이 거의 없어요.
아무래도 유교 영향 덕에 집안에서 서열이 낮은 축에 들고, 게다가 여자인 제가 그런 잔심부름을 많이 하게 된 것 같아요.
차례나 제사를 지낸 후 밥을 먹을 때도 자리가 부족한 탓에 할머니, 아버님들, 그리고 사촌 언니와 오빠들이 밥을 먼저 다 먹은 뒤에야 밥을 먹었어요. 엄마, 큰엄마, 작은엄마와 함께요.
제가 양보한다고 생각하고, 또 위에 사촌언니를 보면 그렇게 고분고분하게 심부름을 할 성격이 아닌 것이 어린 제가 보기에도 턱- 하니 보여서, 만날 나만 지고 들어가는 것이 조금 서러울 때도 있었지만 그러려니 했어요.
더 나이가 먹은 후에는 엄마와 큰엄마, 그리고 작은엄마는 항상 묵묵히 양보해오셨는데 무슨 사치야 라고 위안했고요.
그런데 이번 설날은 조금 서러웠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희 집은 차례를 지낼 때 사촌형제들이 여자든, 남자든 가리지 않고 절을 한답니다.
어렸을 때는 다들 몸집이 작아서 다함께 절을 할 공간이 넉넉했기에 별 문제가 없었어요.
그리고 조금 큰 뒤에도 남자들은 차례로 군대를 가지, 언니는 유학 가서 명절에도 보기 힘든 탓에 절을 하는데 자리가 부족하거나 그러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번 설날에는 오랜만에 모두 한 자리에 모인 거예요.
오랜만에 다들 모이니 좋다고 생각하며 이번에도 어김없이 차례 음식을 저와 가장 어린 사촌동생이 함께 날랐어요.
제가 차례 음식을 나르는 동안 다른 사촌들끼리는 멀찍이 앉아서 이야기꽃이 폈는데, 아마 이때부터 심사가 조금 뒤틀렸나 봐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차례를 지낼 때 절을 하려고 보니까 자리가 마땅치 않은 거예요.
제일 앞줄에 아버지들이 서시고, 그 뒤에 사촌형제들이 일렬로 쭉 서고 나니 제가 옆에 설 자리가 없었어요.
아버지들이랑 어머니들이 그걸 보시곤 제일 어린 동생을 뒤로, 그러니까 제 옆에 끌어다 놓으려고 했는데, 아직 어린 사촌동생은 눈치 없이 뒤로 가기 싫다는 기색을 띠었어요.
그걸 보고 얼굴이 붉어져서 저는 절을 하지 않겠다고 했지요.
원래 여자는 보통 절하지 않고, 차례지내는 중간에도 음식을 나르고 하니, 그걸 제가 한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어른들이 굳이 계속 절을 하라며 그러는 거예요.
아, 이 때 분위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마치 깜박하고 챙겨주지 못했던 사람을 뒤늦게야 어떻게든 무리에 끼어주려는 것처럼 느껴져서 너무 서러웠어요. 눈물이 핑 돌 만큼요.
물론 어른들이야 그럴 생각이 아니었겠지만, 그냥 제가 서러웠어요.
그 후로 한 번 더 권하는 걸 끝내 됐다고 하고 차례 지내는 동안 눈을 꼭 감고 서있었어요.
마음속으로 조상님들 음식 맛있게 드시라고 하면서요.
차례가 다 끝나고 아침을 먹을 땐 마침 작은아빠가 잠시 자리를 비우신 덕에 자리가 남아서 아빠가 저를 끌어다 앉히려고 하셨어요.
하지만 보아하니 그나마 남은 자리도 모서리라 됐다며, 모서리서 밥 먹기 싫다고 거절을 하니 다들 조금씩 자리를 붙어 앉아서 자리를 하나 만들더라고요.
못이기는 척 자리에 앉아 수저를 들었는데 작은아빠의 아들, 그러니까 제 사촌동생은 밥을 먹지 않고 소파에 앉아있었어요.
조금 있다가 아빠가 그걸 발견하시고 후야(사촌동생 애칭)는 왜 밥을 먹지 않느냐며 얼른 와서 먹으라고 하셨어요. 그 땐 사촌오빠가 이미 다 먹고 자리를 비운 터라 한 자리가 남아있었거든요.
그걸 보고 저도 모르게 툭 던지듯이 대답해버렸어요.
작은아빠 아직 오지도 않으셨는데, 제 아버지 먼저 드시라고 자리에 앉지 않는 게 아니냐고. 어른들 다 드신 후에 먹으려고 저리 있는 거 아니냐고.
이렇게요.
제 말하는 투나 분위기가 그리 좋지는 않았는지 오랜만에 사촌언니가 빈 접시들을 부엌으로 날랐답니다. 물론 저도 거들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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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적고 나니까 뭔가 제가 굉장히 꽁- 한 성격 같네요 ㅋㅋㅋ
참, 철은 언제 들는지 이런 일에도 아직 마음이 상하고 그래요.
얼굴도 붉어지기는 또 굉장히 잘 붉어지고, 눈물도 굉장히 자주 나와요.
제 속마음을 얼굴에 나타내기 싫은데, 그게 굉장히 어렵네요.
얼굴에 감정을 잘 내비치지 않는 방법 잘 아는 사람 누구 없나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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